늪처럼 사람을 주저앉히는 어린 시절의 결핍과 상처
춤이라는 동아줄을 잡고 거울 앞에 서다
소설의 주인공 샤톈은 어머니의 지독한 통제 속에 자랐다. 어머니는 딸이 남자와 건전하지 못한 관계를 가지리라 확신하여 수시로 미행했고, 빨래 바구니에서 샤톈의 속옷을 뒤져 검사하기도 했다. 샤톈에게 성(性)이란 늘 죄악의 별칭이었고, 샤톈은 이차성징을 갖춰가는 자신을 저주하며 거울을 피하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런 샤톈이 춤을 만나고 거울 앞에 바로 섰다. 내 몸을 마음대로 주도할 수 있다는 느낌, 다른 사람의 몸과 조화를 이루며 느끼는 쾌감에 댄스스포츠에 완전히 빠져든다. 이대로 정진하여 대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까지 품으며 샤톈은 생애 처음으로 삶에, 제 몸에 애착을 갖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또다른 나 자신을 인정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이런 나 자신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듯이_133쪽
춤을 만나 지복을 누리는 결말도 물론 좋겠지만 『인어의 발걸음』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아쉽지만 그 무엇도 한 사람의 매끈한 구원이 될 수 없다는 잔혹한 현실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말이다.
잔혹한 어른 동화이자 고통과 즐거움이 상존하는 우리의 삶을 그려낸 소설_장자위(작가)
동아줄인 줄만 알았던 춤, 나를 결박하는 포승줄이 되다
파도치듯 희망과 낙담을 오가는 삶
샤톈에게 해방감을 주던 춤은 규칙이라는 이름하에 어머니와는 다른 형태로 샤톈을 구속하려 든다. 댄스스포츠는 이성 파트너와 이인 일조로 구성되어야 출 수 있다. 파트너가 없다면 아무리 준비된 사람도 조명을 받을 수 없다. 둘 사이의 권력관계도 분명하다. 남자가 여자를 리드하고, 여자는 남자의 리드에 따라야 한다. 너무 불공평하지 않냐고 이의를 제기하는 샤톈에게 선생님을 말한다. “맞아, 그래도 규칙이 그런 걸 뭐.”
동아줄처럼 샤톈에게 다가왔던 춤은 어느새 포승줄을 닮아 있다. 샤톈은 혼란스럽다. 연습실을, 다시 거울을 뒤로해야 할까? 내가 사랑한 일 혹은 문화가 나를 배반하는 경험은 현대인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인어의 발걸음』은 인어라는 상징을 통해 속박과 해탈 속에서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깊이 고찰한다. _샹양(시인)
샤톈은 어떤 선택을 할까. 춤을 추며 많은 사람을 알게 됐다. 춤을 사랑하는 마음에 춤이 강요하는 규칙은 일단 모두 수용하기로 결정한 선생님을 따를 수도 있다. 선생님에게 행복을 위해 추던 춤이 아니냐며 쏘아붙이고 댄스화를 벗은 친구 광시를 따를 수도 있다. 아니면 고민 끝에 그들과 무관한, 자기만의 무게중심을 잡을 수도 있다. 『인어의 발걸음』의 책장을 넘기는 손길은 샤톈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좇는 눈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