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너 자선 단편집』은 전체 6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포크너는 작품의 선별과 각 부의 제목과 작품의 배치에까지 스스로 편집자가 되어 개입했다. 포크너의 대표작이자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에밀리를 위한 장미 한 송이」, 인간의 양심과 계급 충돌을 날카롭게 파고든 「불타오른 헛간」, 인종 차별의 폭력을 응시한 「메마른 9월」, 그리고 기억과 죽음을 교차 편집하듯 구성한 「그 저녁의 태양」 등은 모두 그의 미학과 윤리, 그리고 언어 실험이 극단에 다다른 지점에서 쓰인 작품들이다. 이 단편들의 중심 무대는 그의 장편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남부 미국 가상의 지역인 요크나파토파 카운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요크나파토파는 남북전쟁과 인종차별, 경제적 몰락과 종교적 죄의식이 뒤엉킨, 미국 문학사상 가장 정교하게 구축된 신화적 공간이다. 포크너는 이 공간을 통해 미국이라는 국가의 가장 어두운 과거, 그 비극의 진흙탕 위에서도 인간이 여전히 사랑하고 싸우고, 증오하고 용서받기를 원하는 존재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포크너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축적되고 병렬적으로 뒤섞이는 실존적 구조를 보여주고 우리는 그를 통해 존재의 미끄러짐과 반복을 배운다.” 포크너의 단편들은 종종 시간과 인과의 법칙을 벗어난다. 이야기의 결말은 이미 시작에서 드러나기도 하고, 대화의 화자가 누구인지 중반 이후에 제시되기도 한다. 과거는 현재와 병렬적으로 뒤섞이며, 인물들의 기억과 목소리는 중첩되어 과거와 현재를 유령처럼 헤맨다. 이 모든 기법은 독자에게 단순한 줄거리 파악 이상의 체험을 선사한다. 독자는 이야기의 구조 속을 지나가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머무르는 존재가 된다. 포크너는 철학적 개념 없이 혼란스러운 일상의 언어로 인간의 운명과 죄, 사랑과 증오, 패배와 자존을 이야기했고, 그 문장은 성서의 리듬처럼 무겁고 아름다우며, 때로는 증인의 말처럼 단호하고 망설임 없이 던져진다.
포크너는 요크나파토파가 상징하는 ‘미국 남부’를 단순히 패배하고 과거의 인습에 얽매인 지역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론적 장소로 변모시켰다. 그곳은 패배자들의 공간이자, 문명과 야만의 경계선이며, 인간 조건의 실험실이다. 우리에게도 시각적으로 익숙한 미국의 화려한 도시와 산업 지대, 압도적인 자연의 풍광이 아니라 미디어가 잘 보여주지 않는 그 퇴락한 남부의 풍경 안에 자리한 인간들은 미국이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듯한 낯설음을 보여준다. 그 세계를 그린 포크너의 이야기들이 보편적인 인간 실존의 서사로 승화된 것은 맬컴 카울리의 말대로 포크너의 작품들이 아메리카의 신화와 상처의 핵심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전쟁과 인종 갈등을 주축으로 한 그 세계는 진보의 대열에서 탈락한 변방의 특이한 이야기들이 결코 아니라 21세기 미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저류에 강하게 흐르고 있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깊은 상처다. 그 상처는 흑인들의 힘이 강해진 지금 더 강력한 형태의 투쟁으로 그 사회 내에서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포크너는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고 남부의 풍경을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의 중첩 속에서 인간은 어리석음과 회한의 경연을 펼치지만, 그것이 향하는 끝은 늘 보편적인 인간 존재의 내면이다.
포크너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문학은 삶의 비탄과 인간 정신의 노력을 다루어야 한다고 했다.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부심과 연민과 희생 같은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것이 진정한 문학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목소리가 들리는 한 인간은 불멸할 것이라고 했다. 단순히 분비샘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영혼과 정신에서 나온 소설들을 그는 써왔다. 『포크너 자선 단편집』은 소설이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의 끝에서 쓰인 단편들이다. 이 책은 단지 과거의 문학적 유산을 돌아보는 책이 아니다. 이 단편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을 던진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죄란 무엇이고 용서란 가능한가, 말하지 않는 것들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존재는 무엇으로 이어지는가. 그리고 포크너는 이 질문들을 철학의 언어가 아니라 이야기의 구조, 시점의 흔들림, 음성과 침묵의 간극을 통해 묻는다.
이 책은 포크너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가장 적절한 입문서이자, 그의 작품을 사랑해온 이들에게는 요크나파토파 신화를 다시 체험하게 하는 고전이다. 잔혹하면서도 아름답고, 고요하면서도 무너질 듯 긴장된 언어로 씌어진 이 단편들은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어둠과 가장 고요한 빛의 순간들을 담아낸다. 그 빛과 어둠은 비탄의 침묵 속에서, 혹은 사라진 목소리의 여운 속에서, 지금도 여전히 읽는 이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