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깔깔대는 그늘들
『우아한 유령』의 인물들은 안전장치 하나 없이 현실의 위협에 고스란히 내몰려 있다. 「임하는 마음」의 아이들은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위태롭게 거리를 헤매고, 「첼로와 칠면조」의 아이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어른의 불순한 의도를 알면서도 그 애정을 갈구한다. 여성은 「허수 입력」에서처럼 생애 내내 성폭력의 불안에 시달리고, 그 불안은 때때로 「아란」에서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에 의해 현실의 공포가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위협은 가난이다. 「입술을 다물고 부르는 노래」처럼 가난은 미래를 상상할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현재의 시간을 모조리 빼앗으며 삶을 지배하고, 「도청자」와 「우아한 유령」에서처럼 사랑조차 손쉽게 착취와 배신의 수단으로 뒤바꾼다.
그 삶의 한가운데서 이들은 끝없이 실없는 농담을 던진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나쁜 쪽으로 쓸려가고, 안간힘을 써서 지키던 것은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속절없이 최악으로 내몰리며 더 나쁜 쪽으로, 더 많은 것을 철저히 무너뜨리는 방식을 스스로 택하는 순간에도. 이들은 끊임없는 수다로 공백을 채운다. 마치 농담과 웃음만이 이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이자 생존 방식이라는 듯.
■ 기억의 공백
장진영은 기억의 양가적 속성을 누구보다 깊이 꿰뚫어 보고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작가다. 장진영의 소설에서 ‘기억’은 가장 친밀한 타인 같다. 기억은 자기만의 세계를 완성하는 중요한 재료인 동시에, 그렇게 완성된 세계를 한순간 부술 수 있는 강력한 위협이 된다. 『우아한 유령』의 인물들에게 기억은 자유롭게 실존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처럼 보인다. 이들은 서슴없이 진짜와 가짜를 이어 붙이고, 원치 않는 기억은 지운다. 「허수 입력」의 화자는 과거를 공유한 이가 말해 줘도 성추행당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고, 「아란」의 화자는 자신이 성폭행당한 피해자로서의 기억도, 친구를 악의적으로 해친 가해자로서의 기억도 모두 모호한 채로 살아간다. 과거 앞에서 이들이 지어 보이는 무표정은 얼핏 태평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기억의 공백은 불안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우아한 유령』에서 불안은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거나 주먹을 꽉 쥐는 기이한 습관으로, 이런 습관은 불안을 키워 이해할 수 없는 소음 같은 착란과 망상으로 이어진다. 그 착란과 망상 너머에 거대한 구멍, 기억의 공백이 있다. 그 앞에서 이들은 굳게 침묵한다. 그 구멍 아래 숨겨졌던 진실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도.
■ 소리 없는 말
장진영의 소설에서 말은 진심을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데 쓰인다. 그렇게 쏟아내듯 말하고 깔깔대며 웃던 『우아한 유령』의 인물들이 돌연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말하는 순간들이 있다. 진심으로 사과할 때다. 「용서」의 ‘엄마’는 자기 아이를 죽인 가해자를 용서해 준 그날 밤 남몰래 입 모양으로만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전하고, 「임하는 마음」의 ‘나’는 보육원을 무단이탈했다 돌아온 뒤, 나를 걱정한 보육원 언니에게 입 모양으로 ‘다녀왔어요.’ 하고 반갑고 미안한 마음을 대신한다. 말보다 소리 없는 시선이 마음을 끌어올 때도 있다. 「입술을 다물고 부르는 노래」에서 청각장애인인 ‘미조’와 그의 학습 보조 일을 하며 장학금을 받는 대학생 ‘나’의 대화는 모두 입 모양과 금세 쓰고 지우는 타이핑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의 주된 대화는 서로의 표정과 몸짓을 주시하는 시선이다. 이 시선을 통해 의무로 시작한 이들의 대화가 점차 우정으로 흐른다. 내내 무덤덤하고 냉랭한 ‘나’의 말과 달리, 이들 사이에 생겨난 선의와 호감은 어떠한 말도 없이 소설을 가득 채운다.
입 모양으로 말하기는 서로를 마주하는 동안에만 가능한 소통이다.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오직 그 입술을 주시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우아한 유령』의 인물들을 따라 우리는 이 소리 없는 움직임들을 골똘히 바라본다. 이들이 주고받는 진심은 아주 작고 미약하지만, 가장 믿고 싶고 절박하게 붙들고 싶은 단 한 순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결코 미약하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 순간이야말로 구원일 것이다. 절대 잊히지 않음으로써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을 구할 기억이 될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