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시대를 응시하는 12명의 작가, 16편의 작품!
한국단편소설선, 한국 근대 문학의 진수를 담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내음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_〈동백꽃〉 중에서
한국 근현대소설의 문을 연 작가와 작품들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걸작들을 모은 문예출판사의 《한국단편소설선》은 한국 근대 문학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작품들을 선별하여 실었다. 책에 실린 단편소설들에서는 20세기 초 사회 변동과 변모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았으며 당시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반영하는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고뇌와 갈등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다. 김동인, 현진건, 나도향, 전영택, 최서해, 채만식, 김유정, 이효석, 계용묵, 이상, 최명익, 이태준 등 12명의 작가는 한국 근대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들로 한국 근대 문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이들이며, 이 책에 실린 16편은 한국 문학의 뿌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작품들이다. 소설은 가장 현실성이 강한 문학의 갈래다. 특히 한국의 근현대소설은 식민지 시대의 중앙을 관통하면서 성장하고 발전했다. 《한국단편소설선》에 수록된 단편들은 그런 시대의 제일 앞자리에 서 있던 작가와 그들의 작품이다. 그래서 한 시대의 인간과 역사가 압축되어 있으며 동시에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삶을 통찰하고 형상화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들은 한국의 독자를 넘어 세계의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주는 고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시대를 응시하는 12명의 작가, 16편의 작품
한 여인을 가운데 놓고 형제가 벌이는 애정 갈등이 중심을 이루는 〈배따라기〉, 여성의 내면 심리를 희화한 〈B 사감과 러브레터〉, 이제는 강원도 평창군의 문화 브랜드가 된 〈메밀꽃 필 무렵〉, 성북동이며 동대문 근처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달밤〉, 만주로 북지로 떠도는 식민지인의 삶이 예각화한 〈장삼이사〉 등 모두가 손꼽히는 작품들이다. 작품 속에는 일제강점기의 현실과 불안하고 불안정한 사회상, 서구문물과 사상의 유입 등을 다루고 있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개인과 집단의 갈등, 전통과 현대의 충돌, 부조리하고 폭압적인 사회 속에서 고통받는 개인의 삶 등을 다루며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할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겪던 고민과 고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한국단편소설선》에 실림 12명의 작가와 16편의 작품은 인간과 시대를 응시하며 한국 문학의 근대적 기초를 다졌고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사회적, 문화적 과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준다.
저명한 국문학자 오양호 교수의 까다로운 선정 작업
많은 작품 가운데서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일은 쉬운 작업이 아니며, 어떤 기준으로 대표 작가와 작품을 정할지는 상당히 난감한 문제다. 《한국단편소설선》은 저명한 국문학자인 오양호 교수가 이미 출판된 이 방면의 선집을 자료로 하여 출현 빈도수를 조사하고, 여러 종류의 한국 문학사를 통하여 문학적 평가를 참고하여 선별했다. 출간 빈도가 곧 독자 반응이라면 문학사의 출현 빈도는 작품의 가치 평가를 나타내는 의미로 간주할 수 있고, 이런 점이 이 책 나름의 기준이 되었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겠지만 몇몇 납월북 작가의 작품이 제외된 것은 이런 사정에 기인한다.
최초 텍스트에 바탕을 둔 적절한 현대식 맞춤법과 띄어쓰기
《한국단편소설선》과 같은 작업을 수행할 때 작품 선정에 버금갈 만큼 까다로운 일이 표기법의 문제다. 1920년대에 발표된 작품들에 자주 나타나는 고어투의 어구들, 1930년대 작품에 간혹 보이는 외국어, 이런 부분은 엮은이가 오늘날의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손을 댔다. 그러나 그간 한국 단편소설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이루어지긴 했지만 표기법을 정리한 결정본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그렇기에 최초의 텍스트에 바탕을 두고 현대식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적절하게 적용하여 오늘의 독자들이 오래전의 소설을 동시대의 작품처럼 읽을 수 있도록 했으나, 최초 텍스트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자 노력했다. 특히 해석이 난감하고 표준말로 쉽게 바꿀 수 없는 대목은 그대로 두었다. 표기법을 어떻게 확정하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