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깨닫게 될 거야.
모든 인간은 저마다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에
스스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단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주 가상의 소도시 이타카에 살고 있는 열네 살 소년 호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교에 다니면서 전신국에서 일한다. 전보 배달이라는 일은 단순한 일이지만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책임감이 강한 호머는 늘 배우는 자세로 성실히 일한다. 전쟁 중이라 많은 전보가 사망 통지였는데 호머는 마을 사람들에게 수많은 비보를 전하며 삶과 죽음, 인간사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도 점차 깊이 이해하게 된다.
호머의 어머니 매콜리 부인은 자애롭지만 강인한 인물로 남편의 부재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녀들을 돌보며 꿋꿋이 삶을 이어간다. 호머의 형 마커스는 군인으로 전쟁에 나가게 된다. 호머는 다정하고 든든한 형을 향한 그리움과 걱정을 늘 안고 지낸다. 호머는 천진난만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의 온갖 신비를 탐험하는 동생 율리시스를 돌보고, 어머니와 형 대신 집안의 가장 역할까지 해낸다.
스팽글러는 호머를 고용한 전신국장으로 원래는 냉소적인 인물이지만 순수한 호머의 성장을 지켜보며 자신도 내면적으로 변화를 겪는다. 호머와 함께 전신국에서 일하는 노인 그로간은 지난날을 마음속으로 추억하며 인생과 죽음에 관한 성찰과 지혜를 호머에게 들려주고 호머의 정신적 멘토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로간은 전신국 사무실에서 마커스와 호머의 어머니인 매콜리 부인에게 온 전보를 타자로 옮겨 적다가 숨을 거두고 만다. 그로간을 가장 먼저 발견한 호머는 전신국장과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그로간 노인이 옮겨 적던 “전쟁성은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며 당신의 아들 마커스가……”라는 미완의 전보를 읽으며 낙심한다.
스팽글러의 위로를 받으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호머는 현관 앞에 있는 낯선 남자를 발견한다. 그는 마커스와 함께 전쟁에 나갔다가 전쟁이 끝난 후 귀향한 병사로 마커스의 친구 토비였다. 그는 호머 가족에게 마커스의 전사 소식을 전한다. 매콜리 부인과 마커스의 누이들, 호머와 율리시스는 토비를 집 안으로 맞이하며 새로운 희망을 암시한다.
대공황과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직조한 삶의 모자이크
사로얀의 ‘인간 극장’
윌리엄 사로얀은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아르메니아계 미국 작가다. 그는 서정적인 문체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으며 신인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일상의 희로애락을 담아낸 작품들을 남겼다.
《인간 희극》은 단순한 성장소설을 넘어서 가족애와 인류애, 죽음과 삶, 전쟁과 평화라는 인간 보편적 주제를 섬세하게 다룬다. 특히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인간 본연의 선함과 희망을 강조하며, 사로얀 특유의 낙천주의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문학사적으로도 《인간 희극》은 미국 문학에서 휴머니즘 전통을 잇는 중요한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출간되었으나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감정을 중시하는 따뜻한 시선을 품고 있다. 이는 당시 냉소적이고 사실주의적인 흐름 속에서 독특한 미덕으로 평가받았다. 또한 이 소설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존 스타인벡과 같은 동시대 작가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사로얀은 《내 이름은 아람》, 《공중그네를 타는 용감한 사나이》 등 그의 전작들에서도 보여주었듯이 인간의 나약함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희망과 연대를 찾아내려 했다. 그중에서도 《인간 희극》은 이러한 그의 문학 세계가 정점에 이른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퓰리처상을 거부한 미국 문학계의 이단아,
윌리엄 사로얀의 생애와 작품 세계
사로얀에 관해 전해지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34년 출판인 베네트 서프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팰리스 호텔에 묵고 있었다. 호텔 프런트에서 그의 객실로 전화를 걸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하시는 분이 로비에 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라고 안내하자, 서프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사로얀 씨더러 그냥 올라오시라고 하세요”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다.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호기 있게 살아온 사로얀은 캘리포니아 프레즈노에서 사망하기 일주일 전,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인간은 죽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난 내 경우는 항상 예외라고 믿어왔어요.” 이처럼 호탕하고 순박한 그의 인간성은 그의 작품에도 잘 드러나 있다.
1934년 〈공중그네를 타는 용감한 사나이〉라는 단편으로 O. 헨리 문학상을 받은 그는 고생스럽고 다채로웠던 과거를 산뜻하게 작품으로 재생시키는 작가로 미국 문단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사로얀은 6년 동안 600편에 달하는 단편을 발표했는데 예리하고 맛깔스러운 문체는 사로얀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의 인상주의적인 작품 세계는 일상에서 흔히 발견하는 ‘피상적인 현실과 자그마한 진실’들을 예리하게 표출시켰다. 특히 초기 작품들은 전쟁 후 경제적 공황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훈훈한 정서를 그려내 많은 독자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초기의 낭만주의적 작품과는 달리 나중에는 그의 성격에서 거칠고 비타협적인 완고한 면도 드러났다. 1940년 브로드웨이에서 대성공을 거운 희곡 《삶의 전성기》에 퓰리처상이 수여되었을 때 사로얀은 상업적 자본이 예술을 심판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 대본을 쓰던 시절에도 그는 싸움과 충돌이 잦아 ‘시끄러운 인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인간 희극》은 1943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이 작품을 어머니에게 바친다는 헌사가 작품의 서두에 있듯이 작가의 어린 시절과 가족사 등 자전적인 요소가 담긴 사로얀의 대표작이다. 사로얀의 부모님은 터키인들의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아르메니아인으로 캘리포니아 포도원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그가 두 살 때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나갔다.
사로얀은 여덟 살 때부터 신문팔이로 돈을 벌어 생활비를 보탰다. 그 후 전보 배달원, 도서관 직원, 포도원 일꾼, 신문 기자 등으로 생계를 이으며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해 작가가 되었다. 《인간 희극》에는 아르메니아인의 2세로서 성장한 고립되고 가난한 그의 어린 시절의 삶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