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몸에서 시작해 거대한 우주를 담아내는 앤솔러지 프로젝트
양국의 가장 뜨거운 여성 작가들이 선보이는 최신의 SF
다른 나라에 살며 다른 언어를 쓰는 한국과 중국의 여성 SF작가 여섯 명. 이들이 한자리에서 각자의 우주를 펼쳐내길 바라며 심은 작은 교류의 씨앗이 거대한 우주를 품은 열매로 자라났다._김이삭 ‘추천의 말’에서
이 책은 2023년 11월 김초엽, 김청귤, 청징보가 참여한 한중 여성 작가 대담에서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김이삭이 최초 제안하여, 지난 1년간 출판사 래빗홀과 중국의 미래사무국, 상하이번역문학출판사가 함께 기획해온 ‘몸’에 관한 앤솔러지다. 몸은 사회적 억압이자 성애적 대상, 정상성과 이분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적 한계처럼 여겨지곤 했지만, 자신을 본능적으로 감각하게 하는 정체성의 근원인 동시에 훼손될 수 없는 존엄의 공간이기도 하다. 인간이 데이터로 변환되거나 가상현실에 접속하고 신체를 기계로 대체하는 등 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 자체에 목표를 둔 그간의 SF소설들과는 차별화되어, 이번 소설집에서는 ‘다시, 몸’으로 돌아와 ‘그다음의 세계’를 질문하는 여정으로 나아간다. 세계 독자의 각별한 사랑에도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해온 작가들의 행보에 꼭 들어맞는 “최신의 SF”라 불릴 만한 작품들이라 더욱 특별하다. 총 세 개의 챕터로 구성해 한국과 중국 작가의 작품이 각 한 편씩 묶여 있는 총 여섯 편의 단편소설은 인지, 생물, 정동, 시간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풀어내 보인다.
1부 기억하는 몸
김초엽, 〈달고 미지근한 슬픔〉: “혹시, 벌에 좀 쏘여봐도 될까요?”
데이터 세계로 이주한 인류. 이들은 물리적 현실을 모방한 것에 불과한 세계의 허무를 잊기 위한 ‘몰두’ 그 자체에 골몰한다. 그중에서도 벌을 키우고 꿀을 채집하는 일에 집중해온 단하에게 어느 날 곤충 연구자라는 규은이 찾아온다.
저우원, 〈내일의 환영, 어제의 휘광〉: “언니, 언니는 충분히 강한 사람이에요.”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 언어가 섞여버리는 전염병이 퍼진다. 외국에 간 사람들은 사흘 만에 자신의 모어를 잃어버리며,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기상천외한 언어가 탄생한다. 비행기는커녕 호텔 회의실마저 빠져나갈 수 없는 샹잉은 서둘러 만나야 할 소중한 사람 생각에 애가 탄다.
2부 연결하는 몸
김청귤, 〈예, 죽고 싶어요〉: “은방울꽃의 꽃말은 반드시 행복해진다래!”
무너지는 싱크홀로 속수무책 빠져들던 아이를 구하려고 몸을 던졌던 ‘나’는 반투명한 상태의 몸으로 어느 공원에서 눈을 뜬다. 배회하던 끝에 백중날에만 열리는 다방에 이르고, 꽃으로 가득한 정원에서 다양하게 신체를 편집한 이들과 만나며 자신이 잊고 있던 과제를 떠올린다.
청징보, 〈난꽃의 역사〉: “할머니가 몰래 아줌마를 냥나이라고 불렀어요.”
샤오즈의 할머니 천메이란은 종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괴짜라 통했다. 갓난아이일 때 샤오즈를 길에서 주운 뒤로 입양시킬 부모를 찾아왔지만 번번 까다롭게 퇴짜를 놓던 할머니. 자신이 1996년 8월에 죽게 된다고 예언하고는 급하게 양부모를 찾는다.
3부 불가능한 몸
천선란, 〈철의 기록〉: “고통이 없다면 쾌락도 없겠지.”
합리적인 의사결정으로 세계를 통치하기 위해 개발된 옴니아는 인간 신체와 사회 구조를 새롭게 개조한다. 뇌에 칩을 박아 모든 감각에서 해방되고 통제된 채 살아가는 ‘신시민’ 속에 그녀가 있다. 과거의 다양했던 음식과 감각, 개성, 그리고 사랑하는 진짜의 삶을 갈망하는 그녀가.
왕칸위, 〈옥 다듬기〉: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뇌에 직접 심어 인공지능 비서 역할을 하며 다수와 감각을 공유할 수 있도록 개발된 ‘위(鈺)’. 혁신적인 시도에 사람들은 열광하지만, ‘위’를 이식받은 이들에게 각종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이를 통해 위가 개발된 진짜 목적이 점차 수면으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