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9월 3일, 영국은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하지만
이듬해 봄까지 개전 휴전 상태, 이른바 ‘가짜 전쟁’이 이어진다.
오싹하리만치 고요한 폭풍 전야.
등화관제가 시행되고 런던 상공에는 방공 기구가 떠다니지만
사회생활에 목말라 있던 여성들은 그 안에서 해방의 돌파구를 찾는다.
“요리사한테 중형 방독면이 맞을까?
특대형은 아니더라도 대형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한 달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낯선 일상이 이제 너무도 익숙해졌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낳은 전쟁의 포문이 열렸다. 그로부터 이틀 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하지만, 사실상 준비 부족과 여타 사정으로 폴란드를 적극 지원하지 못했다. 그사이 독일은 폴란드 공격에 집중하면서 취약했던 서부전선 병력을 보강했고, 영국도 항공전에 대비한 방어 체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듬해 5월 본격적인 런던 공습이 시작되기 전까지 영국에는 개전 휴전 상태가 이어진다. 이 폭풍 전야 같은 시기를 ‘가짜 전쟁(Phoney war)’이라고 부른다.
얼핏 평화로워 보이는 이 시기 동안 영국의 시민들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카더라’ 통신이 판을 치면서 하루하루 불안에 떨면서도 히틀러의 폭주를 막는 일에 너도나도 발 벗고 나섰다.
“친구의 조카가 민병대인데 그가 제 어머니에게 전한 뒤 그 어머니가 그의 이모에게 전하고 그 이모가 목사님 아내에게 전한 소식에 따르면, 현재 베를린에는 불만이 들끓고 있으며 11월 첫 번째 월요일에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시기에 쓰이고 출간된 이 작품은 기록이나 매체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그때 그곳에서’ 들려주는 생생한 전쟁 초기의 이야기!
2차 세계 대전을 재현한 문학이나 영화는 수없이 많지만 대개는 전선을 따라가거나 홀로코스트를 조명한다. 런던 대공습 이전의 영국 상황은 다루지 않거나 아주 짤막하게 요약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 시기 런던과 지방 소도시 시민들의 삶을 이토록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한 기록이나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2차 세계 대전은 여러 면에서 엄청난 재앙이었지만, 1차 대전에서 활약한 뒤 가정으로 돌아간 수많은 여성에게는 억눌러 온 사회 진출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기회였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20대였던 E. M. 델라필드는 데번주의 간호 봉사대에서 일했고, 2차 세계 대전에서는 정보부에서 선전 관련 일을 맡아 프랑스로 파견되었다. 그 보직을 맡기 전까지의 과정이 이 자전적 소설에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가짜 전쟁’이 길어지면서 구국의 열정으로 달려 나온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졌고 취업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기 시작한다. 우리의 주인공 역시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서둘러 런던으로 달려가지만, 도심의 지하에 마련된 방공 기지는 이미 발 빠르게 달려온 시민들로 가득 차 있다. 결국 그녀는 이곳의 매점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좀 더 ‘중요한’ 보직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공습의 위협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그 안에서 소소한 농담의 소재와 오락 거리를 찾으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주인공과 시민들의 이야기는 불안하고 혼란한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색다른 재미와 통찰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