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현대인에게 순례란 무엇인가?
이스라엘 성지 순례 8박 9일, 유럽 4개국 성모발현지 순례 12박 13일. 대부분 성지가 유럽과 서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어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일정이지만, 휴가를 길게 내기 힘든 게 현대 직장인의 현실이다. 그렇기에 성지 순례는 평생 한두 번 할 수 있는 일, 장기간 계획을 세워야 할 수 있는 특별한 일로 어렵게 여긴다. 그런 진중함이 오히려 순례에 대한 장벽을 높이는 것은 아닐까?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인의 순례는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서 자양분을 얻어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동시에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라고 말했다. 순례는 하느님을 만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어떤 성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일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는 시간도 순례이다.
요즘 출장이나 가족 여행으로 유럽을 많이 찾는다. 자투리 시간이나, 원래 일정보다 하루, 이틀 더 머물다 올 기회가 생길 때도 잦다. 다들 알려진 관광 명소만 찾기 마련이지만, 그런 시간에 하느님을 만나는 순례를 할 수 있다면? 낯선 환경이지만 그리스도교 문화권인 유럽이기에 가까운 곳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자기 삶과 신앙을 돌아볼 기회가 있다.
뜻밖의 순간, 뜻밖의 하느님
유럽은 일상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순례지가 곳곳에 있다. 대도시의 도심뿐 아니라 근교에 지역민의 신앙심이 수백 년 넘게 깊게 뿌리내린 성지와 신앙의 명소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고, 관광 명소로 알려졌을 뿐 그곳이 순례지임을 모르고 지나치는 곳도 있다. 저자는 그런 숨은 순례지를 소개하며 함께 가자고 권한다. 유럽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욱 뜻깊어질 것이며, 뜻밖의 순간이 순례가 되고, 뜻밖의 발걸음이 은총으로 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뮌헨을 중심으로 한 남부 독일, 특히 바이에른 지방은 독일에서 가톨릭 신앙을 고수한 지역으로, 아름다운 경치와 다채로운 건축과 예술뿐 아니라, 하늘과 땅이 맞닿는 영적인 장소로 가득하다. 그 중심에는 성모 신심의 도시 뮌헨과 검은 성모자상으로 유명한 알퇴팅, 유럽 초창기 복음의 선구자로서 각 지역 신앙의 보금자리였던 베네딕도회 수도원들이 있다.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바이에른 가톨릭의 시작이자 중세 초기부터 지금까지 종교적 중심지로서 기능했다. 초기 베네딕도회 수도원 등이 바이에른에 신앙의 씨앗을 뿌렸다면, 20세기부터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이 세계 곳곳에서 그 결실을 보고 있다.
바쁜 삶에 지친 현대인에게 이들 순례지는 좋은 쉼터다. 황금만능주의와 무한 경쟁에 매몰되어 남을 돌아볼 여유조차 잃어버린 우리 자신이 힐링되는 장소이자, 저마다 지고 가는 십자가를 온전히 하느님께 내맡기고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은총의 장소다.
순례가 친숙해지는 시리즈
“간 김에 순례” 시리즈는 유럽 수도원 순례와 성지 순례 프로그램 운영 경험이 많은 각국의 전문가와 함께 순례를 너무 어렵게만 여기지 말고, 누구나 유럽에서 시간이 날 때 혼자서라도 쉽게 하느님을 찾아 나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든 순례 가이드이다.
개인의 감상은 절제하고, 신비롭지만 낯선 유럽 성당과 수도원이란 공간에서 독자가 무엇을 보고 느껴야 할지를 보여 준다. 수백 장의 사진과 이미지를 곁들여 신앙심이 꽃피게 된 순례지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할 뿐 아니라, 지도, 숙식 등 순례에 필요한 실용 정보도 제공한다. 또 유럽의 자연과 문화를 만끽할 순례지 주변의 명소 소개도 더해 순례지에 가고픈 마음을 더욱 북돋고 있다.
지은이의 말에서처럼 이 시리즈는 삶이 순례인 우리가 잊고 지내던 하느님을 일상에서 다시 만나는 기쁨의 순간, ‘그분의 발이 서 있는 곳’에 다가가는 가교가 되고자 한다. 우리 마음이 하느님께 늘 향해 있다면, 일상에서 바치는 화살기도처럼 이 시리즈는 순례가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