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0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하천이 모여서 이루어진 큰 강, 바로 한강이다. 그 이름 자체가 큰 강이라는 뜻이다. 장대한 규모 때문인지, 한강은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그중에서도 할아버지의 강이라는 뜻의 조강(祖江)이라 불렸던 한강 하구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한다. 조강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파주 교하(交河)부터 김포와 강화 사이의 해협을 가리키는 염하(鹽河)까지, 여기에 예성강이 합류하는 큰 물길이다. 한성백제의 수도 위례성과 고려의 수도 개경, 조선의 수도 한성이 모두 연결되는,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물길인 것이다.
역사에세이 『교하와 염하 사이』는 이곳 조강의 역사성을 조명한다. 천 몇백 년 전 역사에 묻힌 한성백제 시절부터 활발한 물류의 거점이었고 전략적 요충지였던 조강은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는 천도론이 불거지기도 했던 교하, 고려 대몽항전기의 임시 수도였고 구한말에 이르러서는 외세의 침입에 시달렸으며 양명학으로 시대의 변화를 이끈 강화학파가 활동했고 마침내 일본과 체결한 강화도조약의 현장이 된 강화도, 수십 개의 포구로 둘러싸인 수운의 중심지였던 김포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풀어낸다. 현대에 이르러서 조강은 북한과의 접경지역이 되어 물길은 막혔고 남북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수역이라는 건 명목뿐이지만, 작가는 194킬로미터에 이르는 평화누리길을 답파하며 아득히 북녁이 바라보이는 통일전망대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본다.
‘프롤로그’ 중에서
“한강 하구 조강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교하와 염하 사이』는 김포를 중심으로 조강이 시작되는 파주 교하에서 강화 말도까지 우리 산하가 들려주는 역사지리 이야기이다. 남북이 분단되면서 접경지역이 되어버린 탓에 접근이 쉽지 않고 그나마 남아 있던 유적들도 군사적 목적에 의해 훼손되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지역은 우리 역사의 보고라 할 만큼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더욱이 조강은 분단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북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수역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곳이라서 ‘공유하고 공존하는 평화’의 산 교육장이 되기도 한다. 지금은 비록 군사분계선을 나타내는 부표만 강물 위에 떠다니고 있지만, 언젠가는 배를 띄워 조강을 건널 날이 꼭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포에서 25년을 살았지만 조강의 역사성을 잘 알지 못했다. 한강 하구라는 지명이 더 익숙했고 접경지역이라 금단의 땅으로만 알고 있었다. 파주 오두산 전망대에서 김포 문수산성에서 그리고 강화 연미정에서 그저 바라만 보았던 조강이었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에서 민용 선박의 자유 항행을 허용하였지만 지난 70년 동안 뱃길은 전혀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2,000년 역사의 포구가 제일 먼저 사라졌다.
그사이 김포는 서울과 인천에 많은 땅을 내어주고 팽창하는 도시의 변두리로 밀려났다. 개발은 제한되었고 출입은 통제되었다. 이러한 김포의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의 희망을 옛 포구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학술대회가 열렸고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통일한국이 도래하면 조강과 김포가 재차 한반도의 중심으로 부상할 것을 확신하는 듯했다. 담론의 확산이 필요했다. 졸렬한 필치나마 담론의 확대 재생산을 위해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