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태주, 요조 강력 추천 ★★★
“사람들이 절망하는 건 마지막 한 통의 전화를 할 수 없는 순간이다.”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의심하는 당신에게,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 이어지는 구원의 선에 관하여
국내 최초 전화상담 기관인 생명의전화 하상훈 원장이 37년 동안 품은 목소리에 대한 응답, 《목소리 너머 사람》이 김영사에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단 한 명도 자살해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자살예방 전문가로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을 삶으로 이끄는 마음을 이 책에 풀어놓았다.
벼랑 끝에 몰린 것 같다고 생각하고 생명의전화에 메일을 보내온 청년이 있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저축할 수 없고, 직장에서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기 힘들며 일에서도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많이 지치고 절망한 그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선뜻 입을 열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사실상 그에게 도움을 주기란 불가능한 일인 것 같고, “힘내”“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상투적 말들도 무책임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을 외면할 수도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도 없는 모두에게, 《목소리 너머 사람》은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바라는 건 자신의 문제가 당장 해결되는 마법이 아닌 들어주는 한 사람의 존재다. 실제로 그 청년은 말한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대충이라도 좋으니 딱 한 명만 나에 대해 조금만 공감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나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듣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길 리 없다. 저자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비판적 경청, 건성으로 듣고 대답하는 수동적 경청과 달리 상대가 좋든 싫든, 잘했든 잘못했든 마음으로 듣고 이해하는 ‘적극적 경청’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짜 변화를 만들어내는 주문을 제안한다.
“자, 이제 친구가 나에게 말한다. 나는 조용히 해야 한다. 시간은 무한정 있다. 그저 듣는 것이 나의 임무니까 조용히 듣자.”
“어제 잘 잤어?”“밥 맛있게 먹었어?”
일상에서 상대의 마음을 보살피는 ‘생명 지킴이’에게 보내는 찬사이자
50년 가까이 목소리에 응답한 자원봉사 상담자에게 보내는 헌사
생명의전화에서 365일 24시간 전화에 응답하는 자원봉사 상담자가 되려면 50시간 이상의 상담자 양성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소정의 수강료까지 내야 한다. 어떠한 보상도 없는 이 일을 위해 많은 이가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지급한다.
《목소리 너머 사람》은 50년 가까이 ‘도움을 찾는 울음’에 응답한 모든 자원봉사 상담자들에 대한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담고 있다. 더불어 일상에서 기꺼이 자살예방 책임자로서 활동하는 모든 이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다. 생명을 살리는 것은 대단한 사람들의 일일 뿐, 우리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제 잘 잤어?” “밥 맛있게 먹었어?”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면, 당신은 누군가의 생명을 지킨 것이다. 별것 아닌 인사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잠을 못 자고 밥도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살피고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는 결정적 한마디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에 더해 일상의 ‘생명 지킴이’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학교 친구나 직장 동료, 자주 가는 가게의 직원까지 매일 만나는 이들이 침울해 보이면 그냥 넘어가기보다 물어보자. “표정이 안돼 보이네요. 걱정이 되어서 그런데 혹시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세 단계의 심리 공식을 적용한다면 더 좋다. 1단계로 자살을 생각해보았는지 질문하여 자살의도를 파악한다. 2단계로 그 사람이 죽고 싶은 이유를 경청하고 공감해준다. 이때 주의할 점은 비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것이다. 3단계로 자살충동이 물러간 자리에 살고 싶은 작은 희망이 싹틀 때, 그 마음을 지지하고 격려해준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생명의전화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따뜻하고도 묵직한 메시지다. 누군가를 구한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한 명이 자살하면 최소 여섯 명이 심각한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
매년 8만 명씩 생기는‘남은 자’들을 위하여,
단 한 사람도 자살해서는 안 되는 이유
“왜 자살을 막아야 하나요?” 이와 같은 질문에 저자는 “자살 유가족들이 너무나 힘들어하기 때문이지요”라고 대답한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터널 비전’에 갇혀, 자신이 죽어버리면 꼬일 대로 꼬인 자기 인생의 복잡한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자살로 인한 고통과 슬픔은 자살자를 넘어선다는 사실이다. 한 명이 자살하면 최소 여섯 명이 심리적 충격을 받고 자살위험이 전염된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 죽음에 대해, 《목소리 너머 사람》은 총 세 가지 층위에서 살펴본다.
1부 “발신자: 사람들은 언제 벼랑 끝에 내몰리는가”는 시대상에 따라 구체적 내용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살고 싶은 마음만은 같았던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벼랑 끝의 절망보다는 벼랑 끝에서 발견한 희망을 제시한다. 2부 “수신자: 우리가 서로의 생명의전화가 될 수 있다면”은 생명의전화에서 전화를 받는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는 자원봉사 상담자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감동을 주고, 우리 모두 일상에서 서로의 생명의전화가 될 수 있는 법을 고민하게 한다. 3부 “남은 자: 단 한 명도 자살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자살 유가족들에게 슬퍼할 권리를 되찾아줄 것을 촉구한다. 더 나아가 ‘자살공화국’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도록, 사회의 책임과 의무를 묻는다.
2023년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자 수는 1만 3,978명이었다. 그러므로 한 해 자살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충격과 외상을 경험하는 사람의 숫자는 8만 명에 이른다. 이것이 저자가 자살예방에 힘쓰는, 또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자살예방에 힘써야 할 이유다. 한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며, 도움은 전화처럼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