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문학상 수상 작가 김영리가 그리는 좀비 아포칼립스
이기려는 인간, 먹으려는 좀비, 나가려는 기계
환장의 트리오가 폐쇄된 타워 안에서 각자의 욕망대로 휘몰아친다
장르를 넘나드는 스토리텔러로 활약 중인 김영리 작가가 좀비와 인공지능 기계가 인류를 위협하는 절망적인 세상에서의 소녀의 분투를 그린 장편 SF 〈둠스데이 프린세스〉로 다시 한번 독창적인 세계를 선보인다.
세상이 망하기만을 기다리는 프레퍼족 부모 밑에서 오직 생존하는 법만 익히며 외롭게 자란 소녀 김존자. 한자로 있을 존(存)에 놈 자(者)로 이루어진 이름 그대로 언제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치열하게 성장해야 했던 소녀는 어린 나이에 부모의 죽음과 맞닥뜨린다. 이후 홀로 살아남기 위해 조국 게르빌의 수상쩍은 부름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존자는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스포츠 스타로 거듭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것도 잠시뿐, 이내 도핑 의혹으로 다시금 홀로 고립되고 만다.
오랜 기간 강제로 갇혀 지내던 존자는 자신을 헌신짝 버리듯 내버린 조국 게르빌과 변덕스런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게르빌이 국가 도약 차원에서 기획한 ‘허큘리스 쇼’에 참가해 재기를 노린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인간과 기계의 서바이벌이 펼쳐지던 허큘리스 타워 안은 순식간에 좀비들로 넘쳐나며 아수라장이 된다. 존자는 가짜 할아버지 김덕배, 덩치만 큰 쫄보 구울, 옛 스승의 딸 이하나와 함께 타워에서 탈출하고자 분투하지만, 이내 타워는 폐쇄되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선 쇼를 끝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설상가상 타워의 최고 관리자마저 사망하면서 속을 알 수 없는 인공지능에게 전권이 위임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좀비들은 아득바득 세를 늘리고 있다.
친구 하나 없이 고독과 함께 자란 존자가 동료들과 함께 끝까지 나아가기로 마음먹으며 생존과 투쟁, 복수를 자양분 삼아 마침내 도약하는 〈둠스데이 프린세스〉는 한 인간이 ‘살아남는 것’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나아가는 성장기이기도 하다. 냉소와 불신, 이기심이 생존의 절대 요건으로 여겨지는 종말의 세계에서, 라켓과 빠루를 움켜쥔 ‘종말의 공주’ 김존자는 그렇게 내달린다. 나 혼자 죽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