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변해도 뜻은 변하지 않는다
만법이 오직 한마음[一心]일 뿐이다!
세상에 불교만큼 다채로운 종교가 있을까. 흔히 부처님 가르침을 팔만사천법문이라고 한다. 끝없는 번뇌에서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설한 가르침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시작해 중국을 거쳐 한국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지역별로 불교는 다양한 불전과 어록, 수행관 등을 만들어 냈다. 그 덕에 오늘날 불자들은 각자 자신에게 적합한 방식을 찾아 불법(佛法)을 익히고 삶에서 이를 실천하고 있다.
그런데 간혹 불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무엇이 더 부처님 뜻에 가까운 교설인지, 어떤 수행법이 해탈에 이르는 바른길인지를 두고 서로 자신의 방식이 옳다며 왈가왈부하는 것이다. 약 1천 년 전, 당말송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러 불교 종파들 사이에 갈등과 혼란이 극에 달해 있었다. 이러한 대립을 단숨에 종결한 인물이 바로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 선사이다.
영명연수 선사는 모든 불교 전통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공존할 수 있다고 갈파했다. 불경과 조사어록에 근거해 배우고 수행한다면, 또 불교의 요지가 오직 ‘한마음’에 있음을 잊지 않는다면, 결국 깨달음과 열반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창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그 타당함을 증명한 책이 바로 『주심부(註心賦)』이다. 이른바 회통불교의 진수를 선보인 이 책은 1500년 선종사에서 가장 해박한 선사로 손꼽히는 영명연수 선사의 수많은 저술 중 최고의 역작이다.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라
‘마음’을 잊지 않으면 모든 길이 정도(正道)이다
‘손가락을 가지고 다투지 말고 달은 보라.’ 영명연수 선사가 『주심부』 쓴 목적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선사는 경전의 가르침에 의지해 심성을 깨닫는 달마선 정신을 망각한 채 이치에 맞지 않는 가르침을 펴는 당대 불교의 폐단을 바로잡고자 100권에 이르는 『종경록』을 지었는데, 이를 대중화하고자 축약하여 다시 펴낸 책이 『주심부』이다.
영명연수 선사는 먼저 마음의 노래 335수를 짓고[心賦], 517개의 해설을 덧붙여[註] 『주심부』를 완성했다. 선사는 『화엄경』ㆍ『법화경』ㆍ『유마경』ㆍ『능엄경』ㆍ『대승기신론』ㆍ『섭론』 등 방대한 경론을 인용하여, 부처님과 조사의 가르침이 모두 일심(一心)을 가리키고 있으며 제교의 종지 역시 오직 한마음뿐임을 입증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관(止觀), 연기관, 사념처관, 삼십칠조도 등의 초기불교 수행관을 비롯해 화엄, 천태, 중관, 여래장, 유식, 정토, 선불교 등 대승불교의 수행법이 결국엔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마음의 노래 주심부』는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대중의 눈높이로 『주심부』를 풀이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는 마음의 노래 원문과 한글 번역을 함께 실었고, 2부에는 노래에 달린 영명연수 스님의 해설을 우리말로 옮겼다. 마지막 3부에는 해설 원문을 실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불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고, 각자 근기에 따라 어떤 방편으로 나아가든 앞으로의 공부와 수행에서 길을 잃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括古搜今 고금을 샅샅이 뒤져 살피고
深含獨占 깊이 담긴 뜻을 홀로 골똘히 점검해 보니
五乘道鍊出於沖襟 오승(五乘)의 도가 깊은 마음을 단련하여 출생하고
十法界孕成於初念 십법계가 첫 생각에서 잉태되어 자라나네.
스님들의 스승,
선교일치의 삶을 살다 간 수행자의 표상
연관 스님의 유작
평생 독거 수행자로서 선교일치(禪敎一致)의 삶을 살다 간 연관 스님은 진정한 수행자의 표상이다. 스님의 삶은 선 수행, 교학 연찬, 역경으로 점철되어 있다. 1980년대 말 관응 대강백으로부터 경율론 삼장을 연찬한 연관 스님은 경학에 매진했다. 직지사와 김용사 승가대학에서 강사를 역임했고, 특히 대한불교조계종 최초 승가전문교육기관인 남원 실상사 화엄학림의 학장을 맡아 여러 후학을 양성했다. 이후 2002년부터는 전국 선원(禪院)을 돌며 정진했으며 연중 8개월가량을 오로지 수행에 몰두했다. 또 역경에도 진력하여 『죽창수필』, 『불설아미타경소초』, 『선관책진』, 『선문단련설』 등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불서들을 다수 번역ㆍ출간했다.
말년에 병을 얻은 연관 스님은 치료에 매달리기보다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작별을 준비했다. 입적하기 열흘 전에 스스로 곡기를 끊고, 나흘 전부터는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마음의 노래 주심부』는 이렇듯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림 없는 자세로 살다간 연관 스님의 유작이다. 2022년 6월 세상을 떠난 연관 스님의 뜻을 이어받아 화엄학림 수학제자 오경 스님, 오성 스님, 법인 스님 등이 2년여에 걸쳐 함께 원고를 읽고 공부하면서 글을 가다듬고 각주를 달아 책을 매조지었다. 출가수행자로서 묵묵히 자기 수행과 전법교화에 헌신했던 연관 스님의 원융한 태도는 그 자체로 『마음의 노래 주심부』의 구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