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빙’을 넘어선 ‘내러티브’이기를
이 책은 단순히 오페라 공연 기록의 나열이 아니다. 그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어떤
이들이 어떤 고초를 겪었는가, 오페라 비단 휘장 앞뒤에선 어떤 희비극이 펼쳐졌는가, 그 공연이 당시 어떠한 세태의 흐름을 떠받치고 있었는가, 그러한 사실을 사이사이에 틈입했다. 사재를 털어 오페라 공연을 올리느라 무대 뒤 아내의 통곡까지 감내한 테너 이인선의 1950 년 〈카르멘〉 공연 스토리가 그 예다. 영하 15 도의 강추위에 무대 위에서 숯불로 몸을 녹이다 주역 김자경이 숯 냄새로 졸도한 1948 년의 〈춘희〉 에피소드도 매한가지다.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 한국 오페라의 개척자 이인선, 초창기 오페라 중흥을 이끈 작곡가 현제명, 전환기 민영 오페라단의 약진을 주도한 소프라노 김자경…. 이 책에는 한국 오페라 초기 역사를 떠받든 인물들의 스토리가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장엄한 예술 또한
미욱하고도 위대한 인간이 착안하고 활약하여, 또한 희생하여 만들어낸 창조물임을 알게 한다. 또한 그 연대기의 저변을 인간이 만든 당대의 정치·사회·경제·문화가 도저하게 떠받치고 있음도 알리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와 오페라 역사의 발자취를 자연스레 꿰는, 살아 있는 오페라 이야기라 하겠다. 그러한 이유로 이 책은 단지 ‘아카이빙’이라기보다 그를 뛰어넘은 ‘내러티브’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인에게 오페라는 무엇이었던가?’를 밝히려 애쓴 땀의 기록
이 책이 ‘내러티브’로 읽혀야 할 또다른 이유는 시종일관 ‘한국인에게 오페라는 과연
무엇이었던가?’라는 질문을 건넨다는 것이다. 해방 정국과 전쟁에 시달리며 보통 사람은 한 끼를 먹고, 운 좋은 날 두 끼를 먹던 나라에서, 게다가 피란지에서까지 오페라라는 “귀족 취미에 맞는” “결코 인민 대중적인 것은 못 된다”던 예술을 줄기차게 행한 이유를 묻고 있다. 그 답은 당대에 활동한 음악인의 증언, 당시를 연구하는 후대의 음악 관계자 등의 주장을 통해 독자 스스로 유추해보게 한다. “세계에서 다 하므로 하고 싶었던 것” “한 끼밖에 못 먹지만, 마음을 나눠서 음악이라는 언어로 시대를 순환해 보자라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오페라 제작 및 자국어 오페라를 보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여긴 것” “음악 공부를 한사람이 오페라라는 장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면 의당 해야 되는 걸로 생각한 것” 등등이 그 답을 찾아가기 위한 열쇠이다.
한국오페라역사박물관의 행보를 기록하다
이 책은 2024 년 10 월부터 2025 년 3 월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개최한
한국오페라역사박물관의 첫 기획 전시 〈한국 오페라 첫 15 년의 궤적 1948-1962〉의 기록도 담고 있다. 80 년에 이르는 한국 오페라 자료를 발굴하고 수집, 보존해온 한국오페라역사박물관의 발자취를 살피는 지상(紙上) 전시라 할 수 있다. 또 전시와 연계해 2024 년 11 월 28 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학술 세미나 ‘한국 오페라의 여명과 태동’의 자료도 수록했다. 일본 오페라 연구의 권위자인 아사코 이시다 쇼와음악대학교 교수의 학술 발제, 이경재 오페라 연출가ㆍ송현민 객석 편집장ㆍ손수연 교수의 주제 토론 등을 통해 초기 한국 오페라에 대한 논의를 확장한 귀중한 자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