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이윤의 대상으로만 여겨온 지난 시절이 만들어낸 결과물,
강을 파헤쳐 골재를 채취하고 준설하여 우리에 남은 건
인위적으로 변형된 강물, 사람과 단절된 강, 가까이 갈 수 없는 강변,
그리고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책 제목의 숫자 ‘1968’은 어떤 의미인가. 1968년 2월 10일 밤섬 폭파의 불꽃은 한강 상실의 신호탄이었다. 그때로부터 한강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급속히 원형을 상실했다. 모래를 준설하고, 준설한 모래로 강을 매립하고 택지를 만들어 아파트를 지었다. 이 모든 것의 목적과 결과는 결국 돈이었다.
강을 개발해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다시 강을 팠다. 그렇게 한강은 권력을 쥔 이들에 의해 황금을 낳는 거위처럼, 환금의 대상이 되어 철저하게 땅장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렇게 변형되어 원형을 상실한 한강은 섬이 폭파되고, 모래가 파헤쳐지고, 강의 흐름을 교란하는 보를 떠안은 채로, 수많은 아파트에 둘러싸여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강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강의 변화는, 모호하고 관념적인 설명에서 한걸음 더 들어가 구체적인 사실로 들어가면 참혹할 지경이다. 1969년 당시 여의도는 현재보다 세 배 이상 더 넓었다. 약 9.6평방킬로미터(290만 평)이었다. 가로 세로 길이는 3~4킬로미터였다. 반면 수면폭은 불과 200~300미터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2020년 여의도 면적은 2.9평방킬로미터다. 수면 폭은 1,100~1,200미터다. 1969년과는 완전히 다르다.
잠실은 또 어떤가. 1969년 잠실섬 면적은 8.52제곱킬로미터였다. 섬 주위의 수면 폭은 100미터 남짓이었다. 긴 쪽은 5킬로미터, 짧은 쪽은 3킬로미터였다. 2020년 잠실은 섬의 흔적도 없다. 송파강은 매립되어 아파트가 되었고, 석촌호수만 남았다. 수면 폭이 100미터에 불과하던 신천강은 1,000미터가 넘는 한강 본류가 되었다. 이렇듯 엄청난 변화를 자행했음에도 오늘날 한강은 마치 지금의 모습이 원래의 모습이었던 듯 누구도 옛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 채로 말없이 흐르고 있다.
한강의 상실 앞에서 물음표를 던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 물음표는 어디로, 누구에게 향하여 어떤 답을 기대하고 있는가!
한 사람의 전문가가 슬픔과 분노, 무기력과 책임감으로 일군 국내 최초 한강 복원의 단초!
한 권의 책을 통해 물음표를 받아든 우리는, 우리 사회는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하는가!
30년 넘게 강을 연구해온 전문가인 저자로 하여금 이 깊고 진지한 물음표를 던지게 한 것은 한 장의 사진이다.(6쪽) 우연히 1975년 4월 3일 오후 12시 26분에 찍은 여의도 인근 한강 항공사진을 마주한 그는 사진 속 난장판이 되어버린 시범아파트 앞 한강의 모습을 보며 슬픔을 느낀다. 그 슬픔은 슬픔으로 그치지 않고 그로 하여금 한강 상실의 역사를 파헤쳐보게 하는 강력한 동기로 작동한다.
이후 그는 한강의 원형을 파악할 수 있는 오래된 자료에서부터 이름하여 개발이라는 허울로 한강에서 일어난 일들을 말없이 증언하는 수많은 문헌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이미 존재하는 자료를 통한 ‘사실의 확인’에서 나아가 ‘사실의 정체’를 파헤치는 데까지로 이어졌다. 저자는 전문성을 발휘해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기반으로 한강에서 일어난 일의 정체와 그것이 초래한 현상에 대해 분명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산적해 있는 자료를 보는 것도 일이었으며, 존재와 근거조차 남아 있지 않은 비어 있는 영역을 마주하는 것도 일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의사 결정의 과정을 목도하며 권력자들의 어리석음과 탐욕의 실체를 마주하는 것도, 그런 허술한 결정 과정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 앞에 주어진 훼손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도 이 여정의 피할 수 없는 동반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분노와 슬픔과 무기력함에 주저앉지 않고, 약 2년여에 걸친 한강 상실의 역사를 국내 최초로 완전하게 기록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의 전문가가 자신의 영역에서 마주한 슬픔과 분노, 무기력함과 책임감이 만들어낸 한 권의 책을 통해 잃어버린 한강을 되찾을 수 있는 단초를 획득했다.
한강의 과거로부터 미래까지를 씨줄로,
장항습지로부터 미사리까지를 날줄로 삼아 써내려간 한강 복원의 발판이자 신호탄!
세계적인 흐름이 된 복원에 동참할 우리 사회의 근거의 마련
기관이나 단체가 아닌 개인의 헌신의 결과물
전문가의 역할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직업적 소명의식의 산물!
이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19세기 말부터 1980년대까지 한강 개발의 과정을 추적하며, 강이 어떻게 ‘정복의 대상’으로 변해왔는지를 살핀다. 시작은 1894년 한강을 따라 여행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기록이다. 그가 한강을 거슬러 여행을 다니며 기록한 글과 그 시절의 한강을 촬영한 여러 사진을 통해 한강의 원형을 가늠하게 하고, 그로부터 문제의 1968년까지, 그리고 다시 1968년부터 한강이 본격적으로 상실해온 시간 전반을 소상히 다룸으로써 우리가 잃어버린 한강의 의미와 가치를 독자로 하여금 장착하고 이후의 전개에 적극적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씨줄의 출발이다.
이어지는 6개의 장에서는 한강의 왼쪽 장항습지로부터 난지도를 거쳐 여의도를 지나 한강대교와 반포, 잠실, 그리고 미사리까지 한강에 인접한 서울의 대표적 공간들을 구획별로 나누어 살핀다. 각 장마다 해당 장소들이 강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원형을 잃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 이루어진 여러 모양의 ‘개발 사업’의 내용과 주체, 매우 구체적인 숫자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문학적이고 사회적인 분석과 전문 영역에서만 파악 가능한 문제점까지를 넘나든다. 씨줄을 바탕으로 전방위적인 날줄로 책의 구성은 입체적이고 포괄적이며 구체적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강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진짜 복원’이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향후 한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 낭만적이고 이상적이며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당위를 앞세우기보다 강의 복원을 둘러싼 전 세계적인 흐름을 살피고, 그 맥락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바에 대해 현실 가능한 대안을 제시한다.
이미 세계는 개발의 시대에 훼손되어 상실한 강의 원형을 회복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훼손의 회복 기준은 다름아닌 ‘과거’로 돌아가는 것임을 전 세계 강의 복원 현장에서 증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구체적으로 사례와 함께 설명하며 이제 우리도 그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러한 메시지의 근거는 바로 스스로 옛 모습을 회복하고 있는 한강의 모습이다. 인간의 폭력적이며 무분별한 개발에도 불구하고 강은 스스로 복원을 지향하고 있다. 저자는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는 모습을 통해 강의 복원은 ‘가능성의 유무’가 아닌 ‘의지’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다. 나아가 그 모습을 이정표 삼아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다름아닌 한강의 복원이며, 그 복원의 기준은 바로 그 원형을 확인하고 그것을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이 책을 통해 힘주어 말하고 있다.
항공사진을 통해 저자가 밝혀 그린 국내 최초 ‘진짜 한강’의 풍경,
그동안 보지 못한 또는 잊고 있던 한강의 원형 그리고 그 상실의 전모….
잃어버린 강의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펼치는 한편의 다큐멘터리!
이 책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항공사진을 통해 한강의 본 모습과 훼손의 과정과 정도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국토지리정보원, 국가기록원, 서울기록원, 서울역사박물관, 건설기록 등 다양한 자료를 교차 분석함으로써 현재 한강의 모습과 과거의 모습을 시각화하는 데 공을 들였고, 이를 숫자화하여 한강이 원형으로부터 단계별로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했다. 과거 서울의 한강 백사장, 사라진 섬들, 자연 하천의 곡선 흐름 등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강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음을 말이 아닌 눈으로 직접 목도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말보다 복원의 당위에 동의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저자는 책을 통해 도시개발과 환경정책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강을 다시 ‘강’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 묻는다. “강에게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는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도, 환경보고서도 아닌, 잊힌 강의 기억을 복원하는 한편의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