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속에서 돌봄이 신화화되는 과정
1부 〈신화적 돌봄과 돌봄의 신화 너머〉의 첫 번째 글인 강성숙의 「SF 소설의 여성 신격 재현 양상」에서는 "설화 SF"를 표방한 단편소설 〈소셜무당지수〉, 〈흥진국대별상전〉, 〈거인 소녀〉 세 작품을 중심으로 신격이 과거와 다르게 제약받거나 변화하는 양상을 살핀다. 강성숙은 세 작품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SF가 신화적 돌봄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현실의 돌봄 구조를 성찰하는 장치가 됨을 발견한다.
이지현은 「일본 돌봄 소설의 정동적 불평등 문제」에서 소설 『욕지거리』를 중심으로 현대 일본 문학에서 돌봄이 재현되는 방식을 살핀다. 이를 통해 돌봄이 개인의 책임을 넘어 사회적 구조와 긴밀하게 연결된 문제임을 강조하고, 돌봄을 둘러싼 정동적 억압이 문학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 분석한다.
「스마트 기저귀와 인지증(치매) 돌봄」에서 정종민은 요양원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돌봄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탐구한다. 정종민은 치매 전문 요양원에서 스마트 기저귀, 로봇 등 스마트 돌봄 기술이 도입되고 실행되는 과정을 살피고, 그 속에서 돌봄이 인간 중심적 관계에서 벗어나 인간-기계-환경의 얽힘 속에서 새롭게 조직될 가능성을 발견한다.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정동은 어떻게 관계망을 형성하는가
2부 〈네트워크 어펙트와 매개적 신체〉에서는 기술 매개 환경에서 정동이 어떻게 순환되는지를 탐구한다. 첫 번째 글인 「라디오 공동체와 전파의 정동」에서 김나현은 라디오 〈김미숙의 가정음악〉의 오프닝 시를 분석한다. 그리고 라디오의 개별 청취자들을 연결하며 "음악", "가정음악", "오프닝 시" 사이를 넘나드는 정동적 수행 과정에서 가정음악의 젠더적 의미가 변화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권두현은 「렌더링과 에뮬레이팅의 생명정치와 정동지리」에서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형성한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흑인 신체가 어떤 정동적 흐름을 형성하는지 탐구한다. 미니시리즈 〈뿌리〉, 로드니 킹 사건, O. J. 심슨 사건을 통해 흑인 신체가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흐름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한국 텔레비전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지적한다.
「디지털 공간 내 공감적 연결의 조건」에서 최이숙은 기자 및 회사 온라인 담당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포털 뉴스와 댓글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 살핀다. 댓글의 반응은 이슈에 대한 언론의 접근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디지털 공간에서 공감과 연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법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정동은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서 재구성된다
3부 〈담론적 접속과 물질적 접촉의 장치〉의 첫 번째 글, 법적 개념이 풍속을 본질화하는 과정을 다룬 김대현의 「공서양속론의 법리를 통한 풍속의 본질화」에서는 법률가 장후영의 활동을 중심으로 해방 후 법행정의 주요 개념으로 자리 잡은 공서양속(公序良俗) 규정이 어떻게 특정한 사회적 가치와 윤리를 본질화했는지를 탐구한다.
이화진은 「세계화와 자막, 그리고 커브컷(curb-cut)」에서 성우 더빙 없이 자막으로 방영하면서 시작된 "자막 더빙" 논란을 다룬다. MBC 외화 시리즈 〈베벌리힐스 아이들〉과 〈주말의 명화〉를 중심으로, 자막 방송이 문해력, 연령, 장애 등 다양한 요소와 얽히면서 자막 방송에 대한 접근성이 사회적·정치적 맥락에서 조율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인공지능 정동에서 체현의 문제와 감정의 모빌리티」의 이지행은 로봇과 인공지능을 인간과 대비되는 존재로 설정하여 인간종중심주의에 기초한 이항대립적 구도를 구축해온 SF 영화의 과도기적 작품으로 영화 〈그녀 Her〉를 분석한다. 그리고 비인간 존재론과 신체의 체현을 둘러싼 윤리적·정치적 문제를 살핀다.
이동과 노동이 역사적, 공간적 질서를 만드는 방식
4부 〈이동, 노동, 정동의 지리적 역학관계〉에서는 탈식민 역사, 지방소멸, 젠더화된 노동이라는 서로 다른 맥락에서 정동을 탐구한다. 첫 글인 「탈식민지 마르크스주의와 어펙트」에서 요시다 유타카는 C.L.R 제임스, 조지 래밍, 멀 콜린스 등 세 작가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감정과 정동이 탈식민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탐구한다.
권명아의 「힐링 여행의 아포칼립스와 정착민 식민주의의 정동들」은 일본, 타이완,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를 비교 분석하여 지방소멸 서사의 국가적 차이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한국의 지방소멸 담론이 국가적 개입 없이 재생산되는 문제를 비판하고, 대안적 지방 이념을 구축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 책의 마지막 글인 첸페이전의 「산업화의 사이보그」는 타이완의 단편영화 〈가공공장〉(2003)과 한국의 다큐멘터리 〈위로공단〉(2015)을 함께 살핀다. 두 작품 모두 여공(女功)들의 "탈정동"된 신체와 주체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여성 노동자들이 스스로 주체화한 탈정동된 신체를 역사적 행동의 표상으로 보고 타이완과 한국의 노동사에서 젠더와 노동의 잊힌 역사를 재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