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왕신이 학교 급식실에 왔다!
새롭게 차려 낸 든든하고 배부른 이야기 한상
조왕신은 전통 설화에 등장하는 집을 지키는 신 중 하나로, 부엌을 관장하며 부뚜막과 불씨를 지킨다고 알려져 있다. 시대가 바뀌며 부엌의 모습 또한 변화한 데 따라 싱크대나 전기밥솥, 가스레인지에 머문다고 믿기도 한다. 『급식실 그려, 그려! 할머니』 속의 조왕신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초등학교 급식실로 공간을 넓힌다. 물론 조왕신의 힘은 여전히 따뜻하고 정갈한 식사로 식구의 안녕을 돌보는 데 있다. 끼니를 같이한다는 의미 그대로, 산입구초등학교 아이들 모두가 조왕할머니의 ‘식구’가 된 것이다. 게다가 젓가락질 한 번에 식재료와 조리 도구들이 저절로 몸을 들썩여 차려 내는 맛있는 밥상이라니! 암만 편식을 하는 아이여도 슬그머니 식탁 앞에 앉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 분명하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식당을 나가고 늦게 온 예찬이만 혼자 남았어요. 조왕할머니와 단둘이 있게 되었지요. 어쩔 수 없이 한 숟가락 떠먹었는데 밥알이 고슬고슬 씹히는 게 무척 맛있었어요.
조왕할머니는 예찬이가 밥 먹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요.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려는 것도, 트집을 잡으려고 라보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빙긋이 웃으며 밥 먹는 예찬이를 바라보았어요.
본문 중에서
급식실 영양사 선생님으로 새로운 옷을 입은 조왕할머니는 아이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누룽지를 긁어 손에 쥐여 주는 다정한 어른이다. 신적인 면모보다는 때로는 진짜 할머니 같고 때로는 친구 같은,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커다란 손으로 툭툭 등을 쓸며 놀란 마음을 말없이 달래 주기도 하고 안전에 관한 것을 빼고는 뭐든지 “그려, 그려.” 하며 편이 되어 준다. 가정의 무고과 풍요를 빌던 조왕신이 학교로 와서는 어린이의 세계를 수호하는 신이 된 셈이다.
■ 요즘 애들이 어때서?
세대의 벽을 허물고 본질을 꿰뚫는 조왕할머니의 눈
조왕할머니가 급식을 부탁받을 때, 곁에 있던 직박구리는 “요즘 애들 좀 그런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산속에서 지내며 아궁이와 불씨만 지키던 조왕할머니에게, 요즘 애들은 대하기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속뜻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직박구리의 말을 넘겨짚거나 과장해 듣지 않는다. 실제로 만만치 않은 ‘요즘 아이’ 예찬이를 만나고 나서도 할머니의 시선에는 결코 왜곡이 없다.
예찬이는 멀찌감치 뛰어가서 조왕할머니를 기다렸어요. 조왕할머니가 몇 걸음 걸어가면 그만큼 달아나고 또 몇 걸음 쫓아가면 다시 멀어지며 좀처럼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복도를 걷다가 급식실 앞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어디론가 또 훌쩍 뛰어가 버렸지요.
“잉? 어디로 가는 겨? 요즘 애들은 참 알 수가 없다니께. 아니지, 아니지. 쑥스러움이 많으면 그럴 수 있지. 그래도 찬찬히 가지. 넘어지면 안 되는디.”
조왕할머니는 급식실 앞에 서서 더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예찬이의 뒷모습을 지켜보았어요.
_본문 중에서
예찬이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내 편이 없다는 생각에 소외감을 느끼고 심통을 부리는 아이이다. 학교에서는 늘 한편인 동만이와 동해가 거슬리고, 집에서는 할머니와 엄마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동생이 귀찮기만 하다. 처음에는 조왕할머니에게도 적대감을 품지만, 예찬이의 의도를 곡해하지 않고 ‘난 네 편’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할머니에게 마음을 열며 한층 성숙하게 된다.
이집트 벽화에도 요즘 애들 버릇없다고 쓰여 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요즘 애들에 관한 편견은 오래되고도 공고하다. 몇백 년 동안 인간을 굽어본 신의 시각이라면 어떨까? 초등학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 ‘요즘 애들’일 것이다. 편견 없이 본질을 꿰뚫는 조왕할머니의 눈앞에 공정하지 못했던 시각이 수그러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할머니의 든든한 지지를 받아 변화하고 성장하는 예찬이의 모습에 어린이 독자들 또한 자신을 이입하며 공감과 응원을 보내게 될 것이다.
■ 광주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
김효진 작가가 그리는 부드럽고도 단단한 연대
2021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작 『8구역 배추자 여사』의 김효진 작가가 첫 장편 동화를 선보인다. 『8구역 배추자 여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린이와 노인의 관계에 주목한 이야기이다. 전작에서는 조손 간의 갈등과 화합을 그렸다면 이번 작품 『급식실 그려, 그려! 할머니』에서는 부엌을 지키는 신, 조왕할머니가 천방지축 어린이를 만나 성장하고 변화하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모두 어린이와 노인이 주체가 되는 이야기이다.
어린이와 노인은 언뜻 보아서는 양극에 있는 집단 같지만 사회적 약자라는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어린이는 아직 세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노인은 그 경험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이유로 흔히 세상에서 소외당하곤 한다. 하지만 그 둘이 함께 손을 잡는다면 어떨까? 어린이의 명랑한 기상과 노인의 우직한 지혜가 만나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약하지만은 않은 공동체가 되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김효진 작가는 어린이와 노인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손을 잡아 새롭게 만드는 에너지를 작품 안에 풀어 냈다. 연약해 보이는 이들이 함께할 때 단단해지는 연대의 메시지를 느낀 독자라면, 틀림없이 조왕할머니와 예찬이의 손을 이어 잡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