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선생 노릇 하는 게 힘들다고 한다.
학교가 흔들리고, 학생은 학생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힘들어한다.
더 나은 제도와 정책으로 풀어 가야 할 일도 있겠으나 그것은 그것대로 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이 풀고 해결해야 한다. 교육은 제도와 정책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예술이니.
여기 평생 국어 교사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
아이들 마음을 부추겨 이야기판을 벌이는 것을 즐거워하고, 아이들은 제 이야기를 하며 시도 쓰고 자라온 이야기로 성장소설도 쓴다.
도대체 무슨 비결이 있는 걸까?
늘 지각하는 아이, 한여름 풀잎처럼 시든 아이, 특별 상담이 필요한 아이, 여느 교실처럼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순간의 연속이다. 그의 교실이라고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풀어가는 방법이 다르다.
아이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주고받는 교사의 “말”에 길이 있지 않나 싶다. 예의 없고 버릇없다며 나무라며 끝낼 수도 있고, 어른에 대한 태도를 문제 삼을 수도 있고, 그런 비속어를 쓰면 안 된다며 가르칠 수도 있을 순간에 어깨에 힘 빼고, 어른이라는 체면치레 빼고, 아이들 기분을 존중하며 같은 눈높이에서 말을 주고받아 분위기를 탁 푸는 힘이 있다.
공부 시간에 축 처져 있는 아이들에게 좋은 일 하나만 생각해 보자고 말해도 시큰둥하다. 은근슬쩍 “오늘 내 수업 한 시간 들었잖아” 해 보지만 아이들은 아니라고 고개를 흔든다. 그때 누군가 “오늘 점심에 닭꼬지 나와요” 하자 시든 풀처럼 고개 숙인 아이들이 한꺼번에 고개를 든다. 그 순간 선생이 “그래, 그렇구나. 내가 닭꼬지보다 못하구나” 하자 아이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참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힘 빼고 툭 던진 교사의 말 한마디가 아이들을 웃게 만들고 학생과 교사 사이의 벽을 허문다. 공부 시간에 나눠 준 원고지를 몇 번이나 다시 달라고 해도, 교실 청소를 하다 콘돔을 주워도 가르치기보다는 맞장구치며 다가간다. 이렇게 관계가 만들어지면 아이들이 조금씩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부모님이 이혼한 이야기도 털어놓고, 마음에 담았던 여학생에게 전화번호 물었다가 퇴짜맞은 이야기도 하고, 야밤에 아령 운동하다 코피 터진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웃는다.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은 친구들 사정도 알게 되고 서로 위로하기도 한다. 제대로 된 ‘말하기 교육’이다. 말을 하는 건 서로 통하기 위해서인데, 제대로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말이 통하게 되면 ‘글쓰기’는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자고 하면 말에서 글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하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가. 교사가 들려주는 말이 아니라 아이들이 하는 말에서 시작해 보면 어떨까.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저자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을 건네고, 어떤 상황에서 아이들과 맞장구치는지 잘 보여 준다. 가르쳐야 하는 무거운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글을 읽으며 웃다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을 주고 있던 팽팽하던 마음이 조금은 느슨해질 수도 있으니. 그렇게 힘 빼고 느슨해진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 보자. 그러면 그 틈 사이사이로 아이들이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