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제노사이드문학과 작가들
20세기는 제노사이드의 시대였다. 정치학자들은 20세기에 정치·종교·인종 등의 이유로 발생한 제노사이드로 1억50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세계는 제노사이드를 막기 위한 국제법(제노사이드 방지협약)을 만들었으나 20세기 내내 제노사이드는 반복되었다. 그리고 1952년 제노사이드 방지협약에 가입한 대한민국 역시 끔찍한 제노사이드가 벌어지던 냉전의 주변부, 열전으로서의 냉전을 경험한 곳 중 하나였다.
김요섭의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는 제노사이드의 역사에서 잊힌 한국의 제노사이드가 어떻게 문학을 통해 기록되었는지 살핀다. 제주4·3과 여순사건부터 한국전쟁기의 국민보도연맹 학살 등으로 이어지는 20세기 중반 한국의 제노사이드 사건으로 최대 100만 명이 사망했지만, 해외 제노사이드 연구자 대부분은 한국의 사례를 알지 못한다. 제노사이드에 대한 무관심은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민주화 이후 긴 시간 이어진 과거사 청산의 과정을 통해 진상규명과 국가의 책임 인정이 이어졌지만, 그 피해의 규모에 비해 사회적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제노사이드 사건이 분단과 전쟁의 일부분으로만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문학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제노사이드는 한국문학에도 끔찍한 상처를 남겼다. 김승옥, 김원일, 박완서, 이청준, 임철우, 현기영 등 한국 문학사의 주요 작가들이 제노사이드로 가족을 잃거나, 고향을 초토화하는 끔찍한 사건을 목격했으며, 그 사건이 남긴 기억이 평생에 걸쳐 그들의 문학에서 되풀이되었기 때문이다. 오빠의 죽음을 끝없이 변주해서 소설로 써온 박완서, 사라진 아버지와 초토화된 고향의 이야기를 반복해온 김원일, 인민군으로 위장하고서 마을을 습격한 경찰부대와 광주의 죄의식 사이에서 이야기를 틈새를 필사적으로 찾았던 임철우. 그리고 제주의 산천과 공동체를 찢어버린 제노사이드의 광풍을 소리 높여 고발했던 현기영 같은 작가들은 한국문학사에서 수십 년간 제노사이드의 기억을 소설로 써왔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은 한국문학 연구에서는 분단과 전쟁의 문학적 재현으로만 설명되어왔다.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에서는 이들이 제노사이드 사건의 기억을 문학으로 재현하는 ‘제노사이드문학’의 계보로 새롭게 묶어 설명하고자 한다.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제노사이드는 그 개념이 처음으로 제기된 20세기 중반부터 기존의 전쟁과는 다른 폭력, 특정한 인구 집단을 파괴하려는 폭력을 고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였다. 또 다른 참사들을 막기 위한 국제법인 ‘제노사이드 방지협약’ 역시 전쟁과 구분되는 집단을 향한 폭력으로 제노사이드를 전쟁 중 잔악 행위와는 분리해서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집단적 죄의식으로 남은 ‘예외적 사건’이 된 홀로코스트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냉전기 강대국의 이해관계로 협약이 수십 년간 유명무실해짐에 따라 제노사이드는 다수의 인명을 죽은 참사 정도로 단순화되었다. 이는 대중적 인식뿐 아니라, 다수의 학자와 작가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는 제노사이드 개념의 창시자였던 법학자 라파엘 렘킨의 제노사이드 개념을 충실하게 활용하여 분단문학, 전쟁문학, 수용소문학 등과 구분되는 ‘제노사이드문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주장한다. 프리모 레비 등으로 대표되는 홀로코스트 문학은 서구 현대문학의 정전이 되었을 뿐 아니라, 참혹한 과거사를 재현하는 예술의 핵심 개념을 구성하고 있다. 홀로코스트는 역사와 문학 모두에서 인류가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국의 역사학자 티모시 스나이더가 비판하듯이 홀로코스트의 일부분, 전체 사망자의 절반 이하가 발생한 아우슈비츠와 같은 절멸수용소에 과잉된 대표성을 부여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절반은 전쟁 중에 점령된 마을과 마을 사이를 오가며 총살을 자행한 처형부대에 의해 발생했다. 이러한 처형은 한국의 사례를 비롯한 대부분의 제노사이드와 비슷한 방식이었다. 아우슈비츠보다 생존율이 낮았던 동유럽의 마을들이 잊혀졌으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서유럽 출신의 유대인들은 냉전기에 홀로코스트를 대표하는 증언자들로 기억될 수 있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은 증언자의 의도와 달리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문학과 문화적 격차라는 탈식민주의적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제노사이드 사건처럼 서구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연구자들로부터도 관심을 받지 못한 지역들은 재현의 주변으로 밀려났다.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은폐된 기억과 빼앗긴 권리를 위한 싸움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가 내세우는 제노사이드문학은 서유럽 생존자 중심의 홀로코스트 문학이 만든 기억의 위계를 넘어서, 20세기의 제노사이드에 대한 문학적 재현을 이해하기 위한 틀이다. 서경식은 홀로코스트가 가진 문학적 대표성이 다수의 작품을 남기고 전파할 수 있는 서구의 문화적 힘에서 비롯된 데 반해, 아시아 등 주변부의 제노사이드는 재현의 공간을 거의 확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가 보여주는 한국의 제노사이드문학사는 20세기의 제노사이드라는 근대적 폭력에 맞서는 문학적 작업이 홀로코스트 외부에도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는 제노사이드가 단순히 타자를 파괴하는 폭력을 넘어 새로운 사회를 설계하려는 행동, 즉 폭력적인 사회공학임을 설명한다. 제노사이드는 학살 이후에도 한국사회의 구조 안에 남아서 살아남은 자의 삶을 포획한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는 문학이라는 저항의 장에서 은폐된 기억을 말하고, 빼앗긴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싸움에 나설 기회를 찾는다. 이 책은 그동안 분단문학, 전쟁문학 등으로 이해되었던 한국의 소설들이 실은 제노사이드와 그 사건이 남긴 폭력적 사회에 맞서는 문학적 실천, 즉 제노사이드문학이었다고 주장한다. 가해자가 전쟁에서 패배한 홀로코스트와 달리, 대다수 제노사이드의 기억은 권력을 가진 가해자의 억압에 맞선 기억 투쟁을 통해 보존될 수 있었다. 독재정권 하에서 은폐된 기억을 말하고,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며 기억의 발굴을 넘어 주체의 권리를 회복하려고 한 한국의 제노사이드문학은 지역적 사례가 아니라 20세기 제노사이드의 시대를 견딘 세계인 대다수의 경험을 반영하는 또 다른 문학적 보편성으로 재인식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김원일, 박완서, 임철우, 현기영 등 제노사이드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한국의 작가들이 70년대 냉전의 데탕트 국면부터 과거사 청산의 노력이 지속되는 2010년대까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제노사이드문학을 써왔는지 분석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의 과거사를 재현하는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때, 한국 제노사이드문학사는 역사와 문학이 마주하는 순간의 역동성을 독자들에게 펼쳐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