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창작자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온
음울하며 매혹적인 북유럽 신화 세계관
흔히 그리스 로마 신화와 북유럽 신화를 서양 신화의 양대 산맥이라고 부르곤 하지만, 두 신화 세계를 뜯어보면 사뭇 다른 점이 보인다. 가장 큰 차이점은 북유럽 신화 속 신들에게는 필연적인 죽음이 예언되어 있다는 점이다. 관념상 계속 존재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들과 달리 북유럽 신화 속 신들은 ‘필멸’하는 존재다. 최고신 오딘의 아들 발드르는 어린 겨우살이의 가지에 가슴이 꿰뚫려 사망하고, 예언에 따르면 그의 죽음은 ‘아홉 세계’ 멸망의 신호탄이다. 아홉 세계의 종말, 즉 ‘라그나로크’가 닥치면 해와 달은 잡아먹히고, 오딘을 비롯해 모든 신이 전투 끝에 죽음을 맞이하며 신화 세계의 끝을 고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하면 언뜻 파격적이고 음울하기까지 한 결말이다. 이외에도 잔혹한 죽음을 맞이한 전사가 가는 전당 발할라, 변덕스러운 속성을 띄는 혼란스러운 신격 등 북유럽 신화만이 주는 서늘한 매력을 이야기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詩)의 형태로 기록된 『구 에다』와 아이슬란드의 역사가 스노리 스툴루손이 산문의 형태로 집대성한 『신 에다』, 그리고 덴마크의 역사가 삭소 그라마티쿠스가 갈무리한 『데인인의 사적』을 보통 대표적인 북유럽 신화 문헌으로 꼽는다. 그런 이들 문헌은 시기상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을 확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13세기 이후라는 다소 늦은 시기에 11세기 이전부터 구전되어 오던 설화를 기록한 기록물이라는 점, 구전 설화인 만큼 묘사되는 인물이 확실치 않다는 점 등의 이유로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다소 개연성이 부족하거나 모순되는 묘사나 설정이 종종 등장한다. 이렇듯 신화 전반에 서린 음울하고 염세적인 분위기와 성긴 이야기의 구멍은 괴팍하고 개성 있는 신격들과 함께 북유럽 신화를 더욱 모호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로 만든다. 무수한 창작자들에게 북유럽 신화가 상상과 영감의 원천이 되어온 이유다.
원전 『에다』를 비롯한 고전 문헌을 바탕으로
독특한 세계관의 매력을 만화로 펼쳐보이는
‘동굴트롤표’ 북유럽 신화
『본격 북유럽 신화 만화』는『구 에다』와 스노리 스툴루손의 『신 에다』를 기반으로 북유럽 신화 세계의 창조부터 라그나로크까지의 이야기를 ‘동굴트롤’식 유머로 펼쳐보인다. 가능한 원전에 충실하되, 상상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작가만의 해석과 보충 설명을 덧붙이며 재미와 고증을 동시에 잡는 데 성공했다. 책 끝에 수록한 ‘장별 참고문헌’에서는 각 장에서 참고한 원전의 챕터를 확인할 수 있다. 신화 자체의 인지도에 비해 원전인『에다』의 인지도가 미미한 편인 국내에서, 선뜻 원전을 펼쳐보기 망설여지는 독자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무엇보다 재미있다는 점이다. 매 페이지에서 서브컬처에 익숙한 독자라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패러디와 개그 컷이 쏟아진다. 몰라도 재미있고, 알면 아는 만큼 더 재미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고픈 독자, 북유럽 신화가 궁금한 독자 누구나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완벽한 북유럽 신화 입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