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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베스트셀러
부커상 최종 후보
● 명확하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소설. -《뉴요커》
● 개인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이슈가 결합된 완성도 높은 이야기.
견고하고, 침착하고, 아름답다. -《북리스트》
● 현대 파키스탄을 엿볼 수 있는 드문 창이다.
V. S. 나이폴과 살만 루슈디를 떠올리게 한다. -《시카고 트리뷴》
■ 누가 진짜 근본주의자인가? 그는 왜 주저하는가?
-제목에 담긴 중의적인 의미
찬게즈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9.11 테러’ 이후, 인종과 피부색 때문에 어딜 가든 ‘이슬람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라고 의심받는다. 테러 이전에는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섞이는 기분을 느꼈지만 이제는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이유 없이 욕설을 듣기 일쑤고 심각한 수준의 위협을 받기도 한다. 뉴욕 한복판에 있는 그의 회사에서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찬게즈는 자신에게 대놓고 질문하는 사람은 없지만 동료들과의 관계가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직감한다. 이때 ‘주저한다(reluctant)’는 의미는 찬게즈 스스로 내키지 않음에도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취급되고 어쩔 수 없이 떠밀리는 상황을 보여 준다.
한편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이 회사의 사훈은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라’. 이때 ‘근본’은 자본주의 원칙을 의미한다. 이들은 오로지 수익성만을 추구하면서 세계 여러 지역의 사업들을 ‘효율성’이라는 기준 아래 재편해 간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는 일들이 반복되지만 이것은 이 회사의 관심사가 아니다. 찬게즈는 미국의 자본주의의 핵심을 본뜬 듯한 회사의 철학에 동조하고, 성공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시스템이 비윤리적이고 파괴적이라는 의심을 품게 된다. 그러니까 윤리적인 고민 없는 자본주의 역시 하나의 근본주의인 셈이다. 이때 그가 ‘주저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근본주의에 물들어 있으면서도 과연 이것이 옳은가, 하고 의심하는 순간의 ‘위화감’을 드러낸다.
■ 위태롭고 안타까운 러브 스토리, 혹은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혹은 알레고리 소설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었을 민감한 정치 주제를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거기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찬게즈의 사랑 이야기다. 모신 하미드는 정치적 주제와 사랑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자연스럽게 녹여 냈다. 프린스턴에 진학해 이제 막 새로운 삶에 대한 꿈에 부푼 찬게즈에게 있어, 미국 여성 에리카는 아메리칸드림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찬게즈와 에리카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다. 에리카에게는 잊지 못하는 첫사랑이 있고, 그 첫사랑은 에리카를 고립 속으로 몰고 간다.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는 연인에게 9.11은 위기로 다가온다. 위태롭고도 은밀한 사랑 이야기는 때로는 안타깝게, 때로는 아찔하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러브 스토리에 더해 이 소설은 또 하나, ‘스릴러’의 외피를 입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라호르의 옛 시가지, 한 파키스탄 청년과 미국인 남자가 식당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이 미국인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며, 그의 목소리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웨이터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태도, 안주머니 속에서 불룩 솟은, 마치 권총과도 흡사한 실루엣과 함께 하늘을 날아다니는 “스키피”한 박쥐 무리까지, 어딘지 음울하고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작품 전반을 휘감는다.
찬게즈의 이야기가 언제 어떻게 끝날지 독자들은 알 수 없고, 찬게즈와 이 미국인이 결국 어떤 선택을 할지는 더욱 알 수 없다. 다만 숨죽이며 찬게즈의 목소리를 따라갈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필연적으로” 알레고리 소설이다. 프레더릭 제임슨은 “제3세계의 텍스트는 필연적으로 알레고리적이며, 국가적인 알레고리로 읽”히는데 그 이유가 “사적이고 개인적인 운명에 관한 이야기가 늘 제3세계의 공적인 문화 및 사회의 절박한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 기능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리카(Erika)라는 이름은 ‘아메리카(America)’를 연상시키고 찬게즈(Changez)라는 이름 또한 숨은 뜻이 있다. 하미드는 인터뷰를 통해 주인공의 이름을 ‘칭기즈 칸(Chingiz Khan)’에서 따 왔다고 했다. 그는 그 이름을 통해 주인공의 ‘전사’ 이미지를 부각하고 싶었다고 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찬게즈’라고 표기하게 되었지만 그의 이름은 챙기즈, 챈기즈, 칭기스로도 발음될 수 있으며 또한 그의 이름 철자는 ‘변화’를 의미하는 ‘체인지(change)’도 연상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 소설로 읽든, 스릴러 소설로 읽든, 혹은 러브 스토리로 읽든,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재미있으며, 읽을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모신 하미드는 이 작품을 통해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리며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발돋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