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는 병마와 싸우는 노년의 작가가 ‘삶의 기록’을 통해 자기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는 수필집이다. 책의 제목처럼, 이 글들은 처음부터 거창한 문학적 야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프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주어진 시간 속에서 쓰기 시작한 낙서 같은 문장들이다. 그러나 이 낙서들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가볍지 않다. 그것들은 그가 지나온 세월과 시련, 사랑과 회한의 결정체로서, 독자에게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거울을 내민다.
김성회 작가는 말한다. “나는 문학에 관해 아는 바가 없다. 배운 적도 없고, 누구에게 들은 적도 없다.” 그러나 그 무지의 고백은 곧 글쓰기의 겸허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는 문장력보다 정직함을 믿고, 기교보다 진심을 택한다. 그렇게 엮인 글들은 그 어떤 세련된 문장보다 따뜻하고 생생하게 독자에게 닿는다. ‘낙서’라는 표현은 어쩌면 이 책이 품고 있는 진실의 은유일지도 모른다. 벽에 쓰인 낙서처럼 외면당하고 잊히기 쉬운 이야기들, 그러나 그 안에 녹아 있는 인간의 고백과 갈망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낙서』는 단지 회고적인 글 모음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 삶의 의미를 붙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천 기록이다. 간암 판정을 받고 수차례 시술과 투병을 겪으며, 저자는 삶의 한복판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무력함을 절망이 아닌 사유의 자산으로 전환시켰고,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새롭게 일으켜 세웠다. 그는 “병은 흥겨움과 즐거움을 무서워한다”며 자신의 치유법을 말하고, 삶이 고단할지라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조용히 다짐한다. 이 책은 그런 다짐들의 집합이며, 동시에 하나의 철학이다.
특히, 이 책에는 우리가 외면하거나 잊고 살아가는 소외된 존재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흐른다. ‘엄마, 나는 쓰레기가 아니에요’ 편에서 저자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기의 뉴스를 보며 인간성과 생명의 존엄을 절절하게 호소하고, ‘뜻밖의 인연’에서는 고양이 한 마리를 통해 사랑과 책임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리고 ‘모정의 탑’ 이야기에서는, 자식을 위해 깊은 산속에서 26년간 3천 개의 돌탑을 쌓은 이름 없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모성이라는 이름 아래 숨어 있는 희생과 기도의 힘을 복원해 낸다. 그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단지 감상에 젖지 않는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조용히 독자에게 건넨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삶이란 무엇인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내 곁의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오래 머문다. 『낙서』는 정답을 주는 책이 아니다. 다만 함께 고민해보자고, 자신도 아직 길 위에 있다고, 조금 부족한 글이라도 독자와 나누고 싶다고 손 내미는 책이다. 어쩌면 김성회 작가는 평생 한 번도 글을 써본 적 없던 이들에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당신의 삶에도 쓸 가치가 있다”고. 그리고 그 삶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이 책을 출간하며 출판사로서 우리는 문학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그것은 유명세나 수상 경력이 아닌, ‘살아온 시간’으로 쓴 문학이다. 꾸밈 없는 진정성, 글을 통해 나누고자 하는 선한 의지, 그리고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저자의 소박한 글 안에서 자신의 삶과 감정을 다시 바라보고, 더 나아가 누군가의 삶에도 더 따뜻한 시선을 건네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