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김소월의 섬세하고도 애잔한 정서를 담은 향기시집
김소월 시인의『진달래꽃』시집 출간 100주년이자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향기시집《저만치 봄, 걸음걸음 진달래》에는 시인의 대표작 「진달래꽃」을 비롯하여 백여 편의 시들이 담겼다. 특히 「진달래꽃」의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시구에서 이번 시집의 제목이 비롯되었다.
이 시집은 시인의 많은 작품에서 대할 수 있는 섬세하고도 애잔한 내면 정서가 스파이시 머스크 우드 향으로 강조되었다. 《저만치 봄, 걸음걸음 진달래》는 김소월 시인을 깊이 깃든 사랑과 슬픔이라는 개인적 정서에 시대적 애환을 절절히 반영하여 더욱 보편적 감정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시인으로 조명했다.
시인의 많은 작품에서 드러나는 여성 화자와 대상에 대한 절절한 애정과 동경을 ‘화사하고도 애잔한 봄’의 이미지로 시각화한 것이 이번 시집의 콘셉트다. "1부 샛보얀 그리움, 2부 거뭇한 설움, 3부 송글한 아림, 4부 나릿한 머묾"까지 각각 ‘그리움, 설움, 고향을 떠올리며 느끼는 아리는 정서, 대상을 갈구하며 대상에 머물고자 하는 정서’라는 주제를 아로새긴 시인의 작품들로 사랑이라는 보편적이고도 섬세한 감정과 그 감정을 가장 잘 담아내는 화사하고도 처연한 계절, 봄의 정서를 독자에게 전한다.
나태주 시인과 전욱진 시인이 전하는 김소월 시인의 향기(추천사)
매캐한 황혼의 냄새
윤동주 선생의 시집은 샘물처럼 깨끗하고 새벽처럼 푸르른 향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김소월 선생의 향기시집은 어떤 향기가 나면 좋을까요?
언뜻 진달래꽃 향기. 은은하고 부드럽고 사랑스런 향기. 하지만 김소월 선생에게서 나는 향기는 그렇게 단일의 향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출판사의 스스로 평가와 설명은 그렇습니다. ‘봄의 싱그러움과 달콤함을 은은하게 표현했습니다.’ 글쎄요. 김소월 선생의 향기는 그렇게 단순하기만 할까요?
시인 자신이 짧은 생애를 살기는 했지만 복잡다난한 삶을 사셨기에 향기 또한 종합적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나는 혼곤한 저녁노을, 그 뒤를 따라오는 매캐한 황혼의 냄새가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좋습니다. 출판사의 의도나 조향사는 비록 그런 의도로 향기를 제공했다지만 시집을 펼쳐 향기를 맡는 독자들은 한 가지의 향기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향기를 더불어 맡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며 나의 숨겨진 은근한 소감입니다.
윤동주 선생의 향기시집에 이어 김소월 선생의 향기시집까지 만날 수 있게 되어 내 일처럼 기쁘고 반갑습니다.
향기시집 안에서 우리 만나서 서로 웃고 느끼고 행복했으면 합니다.
당신의 그리움이 뭘 만들었는지 좀 봐요
시詩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한다. 그러나 말해야만 하는 것을 전부 ‘말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소월의 시가 꼭 그렇다. 백 년 전에 나타난 이 시인은 종이 위에 가감 없이 그리고 아름답게 토로했다. 만남과 헤어짐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삶의 방식을 이해했으며 그 과정에서 “도적같이 달려드는 슬픔”(「바닷가의 밤」)을 응시했고, 자신의 “깊이 믿던 심성”(「깊이 믿던 심성」)을 탓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백 년이 지난 오늘날 보아도 갓 지어진 세계를, 소월은 완성했다.
시집을 덮고 나면 어느덧 나는 그의 세계 어느 높은 절벽 위에 선 채 이렇게 말하게 된다. 당신의 그리움이 뭘 만들었는지 좀 봐요……. 파릇한 봄 별빛, 보르르 떠는 나뭇잎, 기러기의 노래, 서리 찬 새벽 공기 냄새까지. 그가 지은 세상 속 널리 퍼진 그리움은 보이는 것이고 만져지는 것이며 들리는 것이자 이다지도 풍기는 것이다.
나는 소월의 세계 앞에서 나 홀로 지녔다고 여긴 희부연 그리움이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이 나의 맘에 속에 속 모를 곳에/ 늘 있는”(「맘에 속의 사람」) 무연한 정서가 실은 백 년 전의 시인이 개여울에 던지던 꽃부리였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이 세계가 언제나 내가 다시 돌아올 세계임을 느끼면서, 그러니까 온몸으로 감각하면서 “석양 손에/ 고요히 조으는 한때”(「추회追悔」)가 마치 일곱 번째 날처럼 먼 옛날 그에게 주어졌기를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나에게도 주어지기를 기대한다.
지금은 다른 세상이 된 이들과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던 모든 순간을 “맘이 물이라/ 저절로 차츰 잊고”(「흘러가는 물이라 맘이 물이면」). 그렇게 흘러오는 백 년 전의 꽃잎을 주워 보면 문득 내 손안에 조약돌로 쥐어져 있다. 나는 우리가 언어라고 일컫는 이 예쁜 돌들을 가지고 탑을 쌓는 중이다. 이것이 백 년 후 누군가에게 새 눈이 새 빛이 새 바람이 새 꿈이 그리고 새 시가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