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에서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라 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이 꿈이요, 환상이요, 물거품이요, 그림자라 하고, 특히 아상我相을 버리라고 했다. 이는 곧 라캉의 이론과도 상통하는데, 그는 ‘자아라는 것은 없다. 자아란 환상이고 주체는 금이 가고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분열된 주체, 환상적 자아를 지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시를 ‘기표적 형성물’로 규정하고 심리적인 증상과 환상의 종합인 시를 쓴다는 것은 이성, 지식, 이데올로기를 억압하고 잉여 향락에 빠짐으로써 자아를 해방하고자 하는 행위로 간주하는 이승훈은 ‘증상을 즐기라’라고 하였다. 김수원의 시는 삶의 현실에서 억압되거나 부정된 욕구들을 시적 상상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자아해방의 길을 탐구하고 있다. 동시에 인간의 숙명적 한계와 존재의 실상을 자각하고 그 현실을 견디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도 시라는 미적 형식이 주는 쾌감과 더불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적 고뇌를 대신 표현해 줌으로써 공감과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 고명수(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