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사랑에 의한, 사랑을 위한 철학적 언어
-이종성의 시 세계
권온(문학평론가)
1.
이종성의 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자연’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의 시에는 ‘산’, ‘숲’, ‘바람’ 등 자연을 향한 남다른 관심과 지향이 가득하다. 1993년 이후 시인으로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이종성은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인정을 받았고, 중학교 교사로서 학생들과 소통한 바도 있다.
이번 시집은 이종성의 시 세계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집 「별들도 카톡을 한다」는 그가 기존부터 전개해 온 자연을 향한 지향성의 계승인 동시에 새로운 전환점으로서의 ‘사랑’의 탄생이기도 하다.
이종성이 이번 시집에서 펼치는 사랑의 향연은 ‘아버지’, ‘엄마’, ‘어머님’, ‘부모’, ‘자식’ 등 다양한 인물들을 포괄한다. 그가 생산한 소중한 사랑 시편의 구체적인 세목을 확인함으로써, 우리는 새롭게 시작하는 통합의 시대와 공존의 사회를 벅찬 감동 속에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2.
꽃이 그냥 피고
나비가 저절로 오나요?
보고 싶어야 보고 싶은 것들이 옵니다
꽃도 보고 싶어 피고
나비도 보고 싶어 오는 것이랍니다
서로 보고 싶어 할 때
보고 싶은 것들이 옵니다
이 세상 보고 싶어
그대도 왔고 나도 왔습니다
하늘도 땅도 서로 보고 싶어서
보고 싶어서 마주보고 삽니다
-「꽃과 나비」 전문
시적 화자 ‘나’가 이 시에서 강조하는 메시지는 2연 1행의 “보고 싶어야 보고 싶은 것들이 옵니다”라는 진술에 담겨있다. 여기에는 이종성 시인의 생각, 사유, 철학이 풍성하게 담겨있다. ‘나’에 의하면 ‘보고 싶다’라는 마음의 물결이 출렁일 때, “이 세상”의 모든 기적은 비로소 시작이 가능하다. ‘보고 싶다’라는 정서 또는 감정이, 간절한 마음의 움직임이 일어날 때, 우리를 둘러싼 사물은 피어나고, 다가오며,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이 피기 위해서도, “나비”가 오기 위해서도, “그대”가 오거나 “나”가 오기 위해서도, ‘보고 싶다’라는 마음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특히 ‘보고 싶다’라는 마음은 “서로”라는 각별한 조건 속에서 더욱 크고 넓게 확장될 수 있다. 곧 ‘그대’와 ‘나’가 ‘서로’ 보고 싶을 때, ‘하늘’과 ‘땅’도 ‘서로’ 보고 싶을 때, 마음의 교류와 세상의 공존이 가능할 것이다.
누구나 바닥을 갖고 산다
마룻바닥에 묻은 얼룩
닦으려고 다시 찾으려는데
잘 보이지가 않는다
엇비슷한 널마루 무늬들
속에 교묘히 숨은 것일까?
아니면, 다른 마루판들이 몰래
가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만 단념하고 발을 떼니
발아래서 슬그머니
계면쩍게 나타난다
하, 그동안 나는 내 발아래 티는 못 보고
다른 사람의 티만 보고 살았구나
바닥을 다 보이기 전에
얼른 닦는 바닥
누구나 바닥에 얼룩을 묻히고 산다
바닥의 얼룩을 밟고 산다
-「얼룩」 전문
이종성은 앞의 시 「꽃과 나비」에서 ‘그대’와 ‘나’와 ‘서로’를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이번 시 「얼룩」에서 “나”와 “다른 사람”과 “누구나”를 제시한다. 시인은 시적 화자 ‘나’를 홀로 세우는 대신 ‘그대’나 ‘다른 사람’ 등 ‘나’와 교류하고 협력하며 시너지(synergy)를 낼 수 있는 누군가를 함께 배치한다. ‘서로’와 ‘누구나’는 통합과 공존을 지향하는 이종성의 시 세계에서 긴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셈이다.
시인은 “다른 사람의 티만 보고 살았”던 ‘나’를 내세움으로써 독자들에게 반성과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이종성은 “누구나 바닥에 얼룩을 묻히고” 살고, 누구나 “바닥의 얼룩을 밟고” 살아가고 있음을 일깨운다. 그의 제안처럼 우리는 “내 발아래 티”를 놓치지 말아야 하고, 자신에게 속한 ‘바닥’과 ‘얼룩’을 인식하고 인정하며 긍정해야 할 테다.
적막한 별밤
누군가의 이름이 떠올라
하늘을 바라보면 유난히 반짝이는
별들이 보인다
가물가물하던 별들이 저렇게
일등성의 눈동자로 빛나는 걸 보니
지금 분명 누군가
저 별들의 이름을 불렀나 보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를 부활시켜 주는 일
누구일까? 저 아득한 하늘까지
목소리를 전하는 그는
어떤 별일까?
제 존재를 호명하는 목소리에 반짝이는 별은,
반짝인다는 것은
온 힘으로 화답하는 일
이제 나도 가만히
한 이름을 불러볼 때
광막한 하늘을 가로지르는 저음으로
너를 불러볼 때
-「너를 부른다」 전문
이종성이 이번 시집에서 집중하는 대상 중 하나는 ‘별(들)’이다. 그가 이 시에서 제시하는 “별” 또는 “별들”은 “하늘”, “별밤”, “일등성” 등의 어휘와 연결되면서 하나의 유의미한 계열을 형성한다.
‘별(들)’과 함께 이번 시에서 주목되는 단어는 “이름”이다. ‘이름’은 “부른다”, “호명”, “목소리”, “저음” 등의 어휘와 관련되면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계열을 구성한다. 이 시에는 시적 화자 ‘나’와 ‘너’, ‘그’ 등의 인물들이 ‘존재’의 영역에 위치한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를 부활시켜 주는 일”이라는 3연 1행~2행의 진술을 읽으며, 독자들은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생각하거나, 시와 언어와 존재의 관련성을 이야기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철학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늦으면 안 돼
아니, 이미 늦은 건 아닐까?
삼십이고 사십이고 오십이고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야
제때 못 간 사랑엔 과태료가 붙어
오늘따라 방지 턱도 신호등도 참 많네
빨리 가야 하는데, 자꾸만 늦네
어떡하나 어떡하나 그래도 기다려줄까?
네게 갈 때면 생기는 이 조바심
이렇게 또 맹렬해지네
괜찮아 사랑에는 제한속도가 없어
밟아
나 오늘 과속이다
-「사랑의 과태료」 전문
이번 시에서도 이종성의 “사랑” 탐구는 지속된다. 시적 화자 ‘나’에게는 ‘사랑’을 향한 “조바심”이 있다. “삼십이고 사십이고 오십이고”, ‘사랑’이 찾아오는 시기는 다양하지만, “빨리 가야 하는데, 자꾸만 늦네/ 어떡하나 어떡하나 그래도 기다려줄까?”, “아니, 이미 늦은 건 아닐까?”라는 식의 불안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늦게 찾아오는 ‘사랑’에 대한 염려를, “과태료”, “방지턱”, “신호등” 등 운전 관련 어휘를 사용하여 형상화한다. ‘과태료’나 ‘방지 턱’ 또는 ‘신호등’은 차량의 속도를 제한하고 ‘사랑’의 이동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종성의 ‘사랑’을 향한 지향성은 쉬이 그치지 않는다. 그가 추구하는 ‘사랑’은 “맹렬”하다. “사랑에는 제한속도가 없어”, “나 오늘 과속이다” 등의 발언은 이를 입증하는 사례가 된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의 다음 언급을 생각해야겠다. “사랑을 붙드세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들어봤니?
별톡, 별톡, 별톡……
사랑하는 것들은 저리 빛을 낸다
어둠마저 청정한 심야의 하늘
잠을 잊은 별들이 사랑에 빠져
밤새 톡을 하는 소리
별빛이 톡톡 튀면서
반딧불이처럼 반짝반짝 빛나
이 하늘 저 하늘가
구석 없는 별들의 보석 같은 사랑
사랑만이 아름답게 빛난다는 걸
정작 저희들만 모른 채세상을 온통 천국의 빛으로 채우는
별들의 아우성,
어느 집 아기별이 깨어나는 새벽에 이르도록
속닥속닥 아무도 모르게 나누는
찬란한 별들의 속말
별톡, 별톡, 별톡
저 광막한 하늘에 빛 방울
톡톡 터지며 은하를 밝히는
눈부신 별들의 사랑
-「별들도 카톡을 한다」 전문
이 시는 시집의 제목과 동일한 제목을 지닌 표제시이다. 이 작품을 구성하는 2개의 핵심어는 “별들”과 “카톡”일 수 있다. ‘별들’은 ‘자연(自然)’을 대표하는 단어이고, ‘카톡’은 ‘인공(人工)’을 대표하는 단어인데, 이종성은 ‘별들’과 ‘카톡’의 접점에 “별톡”이라는 개성적인 시어(詩語)를 내세운다.
‘별들’과 함께 자연을 구성하는 어휘에는 “심야”, “하늘”, “반딧불이”, “은하” 등이 있고, “빛”, “보석”, “천국” 등의 어휘도 ‘별들’과 연결된다. ‘카톡’은 글로벌 모바일 메시지 서비스 ‘카카오톡(Kakao Talk)’의 줄임말로서 현대인의 삶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테크놀로지(technology)에 해당한다. 시인이 제시하는 ‘별톡’은 ‘별’과 ‘카톡’의 조화, 통합, 공존을 의미한다. ‘카톡’과 ‘별톡’에서의 ‘톡’은 “소리”, “속말”, “아우성” 등으로 변주되면서 말, 언어, 표현의 내밀한 드라마를 인간과 자연 깊숙이 성공적으로 전송한다. 특히 이 시의 마지막 행에 해당하는 “눈부신 별들의 사랑”은 이종성의 이번 시집이 ‘사랑’의, ‘사랑’에 의한, ‘사랑’을 위한 시집임을 암시한다.
3.
이종성의 시집 「별들도 카톡을 한다」를 살피었다. 필자는 그의 시편(詩篇)을 정독하면서 맑고 부드러운 바람을 맞이하는 것과 같은 경험에 노출되었다. 시인의 시는 혼탁하고 어지러운, 불편하고 불안한 요소들이 잠식한 현대 사회를 순화하고 정화하는, 시적 공기청정기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종성의 이번 시집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핵심어는 ‘사랑’일 테다. 필자가 이 글에서 다룬 시인의 시들 중에서 ‘사랑’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작품으로는 「그 여자와 수저」, 「사랑의 과태료」, 「별들도 카톡을 한다」, 「나트랑 밤바다」 등이 있다.
그런데 ‘사랑’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시들에도 ‘사랑’의 분위기는 내재한다. 곧 ‘보고 싶다’라는 정서를 드러내는 시 「꽃과 나비」, ‘이름을 부르는’ 행위를 제시하는 시 「너를 부른다」, ‘두 짝’의 ‘슬리퍼’가 보여주는 ‘균형과 대칭’을 표현하는 시 「슬리퍼」, ‘어머님’이 등장하는 시 「솔의 뒤란」, ‘아버지’를 소환하는 시 「작별」, ‘부모’와 ‘자식’이 함께 등장하는 시 「산」 등 이종성이 생산한 다수의 시들은 간접적이거나 암시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소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밥 말리(Bob Marley)는 ‘사랑’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당신이 사는 삶을 사랑하라. 당신이 사랑하는 삶을 살아라.(Love the life you live. Live the life you love.)” 밥 말리의 언급에서 우리는 ‘사랑’과 ‘삶’이 동의어임을 깨닫는다. 이종성이 강조하는 ‘사랑’은 ‘삶’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사랑’과 ‘삶’을 철학적 언어로 표현하는 이종성 시인의 시 세계가 앞으로도 더욱 굳건하게 확장되고 심화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