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의 저자이자, 좋은여름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람이다. 이 직업을 갖기 전 나는 베이커였고, 봉사자였고, 초보 여행자였다. 이 책에는 내가 스스로 비행기 표를 끊고, 숙소를 고르고, 기차를 놓치고, 길을 헤매며 ‘어찌어찌’ 해낸 첫 번째 긴 여행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이드도 없고, 정확한 좌표 없이, 실수와 혼란 속에서 느리게 단단해진 그 시간은 책을 만들고 삶을 꾸리는 지금의 시작이 되주었다.
나는 ‘여행 작가’도 아니고, ‘활동가’도 아니다. 거창한 메시지를 들려줄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경험한 일을 기록했고, 그 안에서 생긴 감각들을 말의 속도로 되짚어가며 독자에게 조심스레 건넬 뿐이다. 자기고백적 에세이지만 감정의 강도를 높이지 않고 적당한 거리에서 담아냈다. 독자가 해석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 속의 나는 빠르게 적응하거나 화려하게 변모하지 않는다. 요즘 ‘저속 노화’가 핫하다면, 이 책은 ‘저속 성장’의 기록이다. 내가 머문 캠프힐이라는 장애인 공동체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휠체어의 속도로 굴러가는 세계에서, 누구나 교과서보다 경험으로, 가르침보다 몸으로 부딪히며 익어간다. 미숙한 언어로 오해를 사고, 익숙하지 않은 정서 속에서 자꾸 체면을 구기면서도, 결국 나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아주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자라난다.
그 느림 속에서 오히려 오래가는 감정과 관계를 배웠다. 느리게 성장하니, 느리게 늙을 것 같다는 농담 같은 다짐도 곁들인다. 그렇게 기록한 문장들이, 부디 천천히 퍼지고 오래 남기를 바란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분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1. 새로운 일을 두려움 없이 시작하고 싶은 이에게
좋은여름 출판사에서 벌이는 다양한 시도들에 대해 “그 시작은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에는 그 질문의 실마리들이 담겨 있다. 어떤 것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고, 어떤 것은 슬며시 숨어 있다. 잘 찾아보시길 바란다.
2. 낯선 환경에 놓인 모든 이에게
타지에서, 혹은 새로운 조직에서, 혹은 낯선 공동체 속에서 자신을 작게 느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시간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는 따뜻한 승인과 안심을 얻기를 바란다.
3. 정체성과 관계에서 갈피를 못 잡는 이에게
자기계발서처럼 요령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나’와 관계 맺는 법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한 시기에도 타인과 나 사이에 연결이 생기고 서로를 돌보는 순간을 따라가다 보면, 서툼조차 귀여워진다.
4. 빠르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인상적인 추억을 만들고 싶은 중장년층에게
중장년 독자에게도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음 한다. 속도가 아닌 관계로 하루를 채우는 공동체의 풍경은, 익숙한 리듬을 잠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든다. 바삐 사느라 미처 알지 못했던 먼 나라의 삶을 간접 체험하며, 지금이라도 나의 속도를 조절해보고 싶다는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자녀의 삶에 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면, 먼저 읽고 함께 대화를 시작해보자. 부모와 자녀가 함께 떠나는 특별한 여정의 씨앗이 될 지 누가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