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을 연장한 혼신의 강의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철학에 대한 열정과 『6시간 15분 철학 강의』가 그를 자살로부터 구한 것처럼 보인다.- 프란체스코 마테오 카탈루치오
폴란드 태생의 문학가 곰브로비치의 건강 상태는 1964년 봄부터 현저하게 악화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67년 5월, 그는 프리 인터내셔널(Prix International)의 수상자가 되었고 이듬해 12월 28일 현대 문학을 공부한 그의 비서 마리 리타 라브로스와 결혼했다. 그러나 곰브로비치는 1969년 프랑스 방스에서 친구인 콘스탄틴 젤렌스키와 도미니크 드 루에게 권총 한 자루든 독약이든 구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청소년 시절부터 그를 괴롭혔던 폐병 때문이었다. 그런 곰브로비치를 붙잡은 건 철학에 관한 열정이었다. 친구 도미니크 드 루의 격려로 곰브로비치는 철학에 관한 13개의 강의를 1969년 4월 27일부터 5월 25일까지 진행했으며(칸트로 시작해서 실존주의까지) 미완성 상태의 마지막 강의 이후 약 두 달 후인 7월 24일 영면에 들었다. 이 강의는 아내 리타가 청강했고 이 자리에 있던 드 루가 필사했으며 『6시간 15분의 철학 강의』라는 타이틀이 붙여졌다. 제목은 여섯 번의 강의 전체에 걸린 시간이 6시간 15분이라는 의미다. 첫 번째 강의부터 다섯 번째 강의까지는 각각 하루에 진행되었고, 여섯 번째 강의는 여드레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 철학에 관한 위대한 강의는 곰브로비치라는 거장의 생애 마지막 몇 달을 견디도록 도움을 주었다.
√ 추천글
“이것은 전설이 아니다.”
프란체스코 마테오 카탈루치오의 『6시간 15분 철학 강의』 의 서문을 여는 문장.
“Gombrowicz는 철학을 유머와 인간성으로 재해석하며,
철학의 경직된 틀을 유쾌하게 해체한다.”
-Le Monde Diplomatique
“철학을 놀이처럼 풀어내며, 사유와 대중성의 경계를 허무는 독창적인 시도.”
-France Culture
“철학적 깊이를 간결하고 대담한 방식으로 탐구하며, 독자들에게 지적이고
감성적인 자극을 준다.”
-La Croix
“기존 철학의 엄숙함을 유머와 반어로 넘어선, 인간 중심의 철학적 탐구.”
-Le Figaro
“철학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과 철학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탁월한 시도.”
-The Guardian
√ 필사와 청강자 소개
도미니크 드 루(Dominique de Roux, 1935-1977)
도미니크 드 루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비평가, 편집자, 출판인이며, 정치적·문학적 급진성과 도발적인 태도로 잘 알려져있다. 그는 1960년대와 70년대 프랑스 지성계에서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한 인물로, 당대의 지배적인 문학 사조나 정치적 분위기와 자주 대립했다.
드 루는 1960년에 문학 잡지 『에른 L"Herne』을 창간하여 보르헤스, 마르케스, 에즈라 파운드, 체스와프 미워시, 루이스 페르디낭 셀린 등 기존의 프랑스 문단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던 작가들을 소개하고 집중 조명함으로써, 프랑스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주류 문학과 철저히 거리를 두었고, 앙드레 말로, 드골주의, 또는 망명 문학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소설 L"Horus (1960), 정치적 성찰이 담긴 La mort de L.-F. Céline (1966), 드골 장군에 관한 De Gaulle devant l"histoire (1967), 그리고 아프리카에 대한 체험을 담은 Immédiatement (1971) 등이 있다.
드 루는 문학과 정치, 이념과 정체성 사이의 긴장을 탐구한 작가로, 짧은 생애 속에서도 강렬하고 이단적인 목소리를 남겼으며, 그의 유산은 이후 프랑스 문학계에 꾸준히 영향을 미쳤다.
리타 곰브로비츠(Rita Gombrowicz, 1934~ )
리타 곰브로비츠는 폴란드 출신 프랑스 작가 비톨트 곰브로비츠(Witold Gombrowicz, 1904-1969)의 아내로, 그의 문학적 유산을 보존하고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리타 곰브로비치는 곰브로비츠의 사후, 그의 작품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프랑스어권에 소개하는 데 헌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