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한국 현대소설 특히 윤대녕 문학에 관심 가지게 된 것은 20여 년 전 학부 때 만난 잊지 못할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윤대녕 작가의 1997년작 ‘빛의 걸음걸이’. 1998년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이기도 하다. 현대소설 수업에서 만난 수많은 작가와 작품 속에서 세월이 흘러도 오래 뇌리에 남아 있던 ‘빛의 걸음걸이’는 매우 신선하고 기발한 발상의 작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공간의 시학을 처음 제대로 접할 만큼, 시적이고 제목처럼 매혹적이었다. 빛으로 생기는 그림자가 또 다른 사물이 되어, 사유의 의미를 만들 수 있음을 탁월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그러한 이유로 주저 없이 박사 논문 연구주제로, 윤대녕 작가의 작품을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책이 그 세월의 결과라고 생각하니 새삼 학문적 성과에 대한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먼저 앞선다. 학문의 숭고함 뒤에 나의 게으름과 부족한 능력을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990년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탄탄한 독자층과 현대문학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시적 언어의 선두자인 윤대녕 작가의 문학적 업적을, 얼마만큼 성실하고 충실하게 연구하였는지 매우 두려울 뿐이다. 처음 마주했던 그 설렘의 시작이 올곧은 연구가 되었는가.
그러한 이유가 있음에도 저자가 이 작업을 시작한 이유는 윤대녕 문학이 단편 몇몇 작품에 편중되어, 전체 작품의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윤대녕 단편소설의 서사구조와 주제의식을 중심으로 윤대녕 문학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이 연구는 그동안 윤대녕 문학이 리얼리티와 필연성의 부재, 현실 도피형 문학이 아니라, 시대 변화에 따른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개인과 사회의 갈등에 대응하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주목하였다. 섬세한 예술적 감성으로 시대 정서를 날카롭게 포착한 작가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였음을 밝힌다. 이러한 저자의 노력이 현대문학사에서 윤대녕 문학에 대한 새로운 재평가와 윤대녕 문학을 연구할 후학들에게 조금이라도 기여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1990년대 한국 소설계에서 윤대녕 문학은 새로운 문학적 대응방법을 보여주며, 최근까지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시대 정서를 날카롭게 포착한 문학 세계의 확장을 보여주는데, 무엇보다 2014년 4월 16일 뼈아픈 시대의 상처.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작가로서의 상징적 죽음’을 경험하며 무한한 책임을 통감한 그는 작가로서 남다른 행보를 보여주었다. 공감으로 이끄는 인간애와 투철한 작가 정신은 시대가 어려울수록 더 밝은 빛으로 존재하리라 본다.
나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길을 잃고 들었던 수 없는 생각. 오랜 시간 계획한 것들이 와르르 무너졌을 때, 절망 앞에서 ‘이리 오라’ 계속 손짓하시던 많은 스승의 은혜를 입었다. 이 책은 오롯이 그분들의 인내와 제자에 대한 애정으로 거둔, 작은 성과로나마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사는 동안 낯익은 길들이 생경해질 때가 있다. 이 길이 맞는지 계속 뒤를 돌아본다. 그런 내게 다시 앞을 향해 걸을 수 있도록, 3년 동안 인내하며 끊임없이 손을 내밀어 주신 나의 선생님, 장현숙 교수님으로 인해 내 삶의 새로운 좌표가 생겼다. 현대소설 박사과정을 통해 대학 강단에 서 길 바라셨던, 나의 지도교수님이시자 단 한 분뿐이신 은사님의 은혜는 평생을 해도 갚을 수 없다. 또한 박사학위 논문의 심사위원이셨던 최병우, 신재홍, 신승희, 이선이 교수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안양 연구실에서 아직도 아름다운 글과 그림을 만드시는 김삼주 교수님의 응원과 염려가 힘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울러 깊은 겨울날 은사님 연구실에서 함께 논문을 쓰던 나의 동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무엇보다 짐짓 나의 섣부른 다짐까지도 모두 응원으로 품어준, 내 곁에 있는 모든 이들, 내 좋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더불어 학술 저서가 이렇게 예뻐도 될까 싶을 정도로 표지 그림을 장식해 주신 장순경 선생님과 동양화로 속지 그림을 작업해 준 나의 어릴 적 오랜 친구 박지은 작가, 추천사로 뜻을 더해 주신 최병우 교수님과 박혜경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가장 어려운 순간 귀한 도움을 주신 문복희 교수님, 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 주신 도서출판 ‘등’과 유정숙 편집장님의 성의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내가 어느 자리에, 어느 순간을 선택해도 나를 믿고 묵묵히 기도해 주시는 부모님께 감사와, 무엇보다도 이 책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작은 나를 크게 쓰시는 나의 아버지의 능력과 사랑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제자를 향한 더할 나위 없던 사랑. 장현숙 교수님, 나의 선생님의 은혜가 아니면 지금은 없다. 그러나 2022년 5월 어느 날, 햇살처럼 눈부시게 하늘나라로 떠나, 이제는 다다를 수 없는 곳에 계신 은사님. 올해, 추모 3주기가 된다. 이제는 깊은 상실의 아픔과 애도를 뒤로하고, 내게 주고 가신 손때 묻은 수권의 책으로 앞으로도 정진할 것을 약속드린다. 제자를 향한 한없는 사랑과 헌신, 겸허를 보여주신 그대로, 내가 받은 사랑을 나의 제자들과 다른 이들에게 돌려주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선생님처럼 좋은 사람, 좋은 어른, 좋은 학자, 좋은 선생님이 되리라 다짐하며 이 책을 헌정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