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여주인공을 하나 만들 거야.” -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의 절정기에 탄생한 작품
발랄한 독신주의자가 결혼을 통해 진정한 자기인식에 도달해 가는 과정을 그려 낸
로맨스 소설의 고전
『에마』가 출간된 1815년에 제인 오스틴은 런던 문단에도 알려져, 당시 궁정의 요청으로 이 작품을 섭정 왕자에게 헌정하게 된다. 오스틴은 생전에 소설 네 권, 사후에 『설득』과 『노생거 사원』 등 총 여섯 권의 작품을 남겼는데, 네 번째 소설인 『에마』는 그녀의 길지 않았던 작가 생활의 절정기에 나온 작품이다. 오스틴은 당대 영국 문단의 대가 월터 스콧이 진작 높이 평가한 것처럼 “일상생활의 일들과 감정들과 인물들을 묘사하는” 재능이 탁월하고 나아가 “묘사와 정서의 진실을 통해서 일상의 평범한 일과 인물 들을 흥미롭게 만드는 빼어난 솜씨”를 지니고 있는데, 『에마』에서도 이 같은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오스틴은 이 작품에서 작가 자신 빼고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주인공을 선택한 셈이라고까지 말했는데, 무척 흥미로운 발언이다. 물론 주인공 에마를 좋아하지 않는 독자도 있겠지만, 『이성과 감성』의 엘리너나 메리앤,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나 제인, 『맨스필드 파크』의 패니, 『설득』의 앤 등 다른 주인공들과 비교해 보면 에마가 독특한 성격과 매력을 지닌 주인공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실제로 주인공 에마 우드하우스는 많은 사랑을 받아 왔는데 그녀는 다른 주인공들과 한 가지 점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설득』, 『노생거 사원』 등 여타 작품의 주인공들은 성격이나 처지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하나같이 결혼 적령기 여성으로 당시의 결혼 풍습에서 보자면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들의 출신은 지주 계급이기는 하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유산이 거의 없어서 독립적인 생활이 어렵거나 결혼을 통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문제되는 절박한 지경에 처해 있다. 이들에 비하면 에마는 입장이 전혀 다르다. 마을 대지주의 상속녀로 자신의 지위에 만족하며 살고 있어서 결혼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고, 오히려 어디에 구속될 수도 있는 결혼 같은 것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작심까지 한 여성이다. 아무래도 중간계급 여성이 다수일 당대 독자들에게 에마가 공감을 얻기는 어려웠을 법하다. (…) 뛰어난 중매쟁이를 자처하고 해리엇을 주변 남자들과 맺어 주려 하다 엄청난 오해와 판단 착오로 오히려 힘들게만 하거나, 경제적으로 무척 약자이지만 교양 있고 현명한 동갑내기 제인 페어팩스를 경쟁의식 때문에 제대로 대접하지 않거나, 가문이 몰락하여 어렵게 생활하는 이웃 아주머니 베이츠 양에게 모욕을 준다거나 하는 에마의 행동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에마에게는 이 같은 잘못과 착오를 반성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인간성과 용기가 있다. 그렇게 잘나고 부족한 것 없는 젊은 여성이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하고 깨달음을 얻는 장면을 보면, 오스틴이 자신의 여주인공에게 속물적인 성향을 넘어서 변모하고자 하는 자기 성찰의 능력과 순수한 마음을 부여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에마』는 한 미숙한 젊은이가 세상 경험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성숙에 도달하는 서사를 지칭하는 교양 소설의 면모를 가진다. 이와 함께 에마가 지닌 젊은 여성다운 발랄함과 유쾌함, 낙관성과 생기는 작품에서 나이틀리 씨가 그랬듯 독자들을 즐겁게 하는 매력이 아닐까 한다. 실상 제인 오스틴도 에마 나이 무렵에 춤과 사교 모임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이야기하기를 즐겼다. 비록 자신은 나중에 이 모든 삶의 양상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관찰하는 리얼리스트가 되었지만, 그녀 작품 세계의 근원에는 젊음의 활력과 삶의 기쁨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_윤지관, 김영희, 「제인 오스틴과 에마 우드하우스」에서
■ 편집자 레터 --- 편집자 김민경
“제인 오스틴 유니버스에서 가장 깜찍하고 화끈한 악동.”
우리의 주인공 에마는 슈퍼스타의 자질을 모두 갖춘 여잡니다. "팬’과 "안티"를 둘다 미치게 할 수 있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친구죠. 자기는 결혼 따윈 하지 않겠다고 천명하며, 마을의 싱글 남녀들을 이렇게 저렇게 엮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에마. 그치만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눈치채는 재주는 없어 씩씩하게 오답을 말하는 에마. 읽는 내내 "제발 그만해!"라는 말을 속으로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에마는 조금씩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더 나아지려고 하는 친구예요. 주위 사람을 살뜰히 챙기고, 본인의 감정에도 언제나 솔직하려고 애씁니다. 자신의 과오를 따끔하게 지적한 ‘그이’의 말을 받아들여 뉘우치고 반성하죠. 제인 오스틴이 "나 이외엔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여주인공"을 만들었다고 했지만, 저도 결국엔 에마를 좋아하고 응원하게 되었어요. 여러분! 우리의 "사랑 악동" 에마를 너무 미워하진 말아 주세요. 에마의 요란하고 떠들썩한 소동이 그려 내는 알록달록 감정의 무지개들을 꼭 끝까지 즐기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