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는 표현만 쓴다면,
순우리말로 말과 글에 재미를 더하자!
우리는 매일 잠을 잔다. 하지만 잠은 매일 같지 않다. 어느 날은 한 번도 깨지 않고 깊이 잠들기도 하고, 어느 날은 자다 깨다를 반복해서 제대로 잠들지 못한 날도 있다. 또 잠깐만 눈을 붙였는데 피로가 싹 풀린 듯한 날도 있다. 이렇게 잠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저 ‘잠을 잤다’고만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는 단어가 부족해서이다. 꽃잠, 꿀잠, 노루잠, 그루잠.... 이렇게 잠을 부르는 순우리말이 여럿 있다는 걸 알았다면, 조금 다르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우리말에는 엄청나게 많은 단어가 있지만 저마다 쓰는 어휘는 한정되어 있다. 빈약한 어휘력 탓에 생각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기도 하고, 매일 똑같은 상투적인 표현만 쓸 때도 많다. 그러다 보니 소통이 어려워지고, 생각의 폭이 좁아져 논리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도 제한된다. 제대로 전달하고 다채롭게 표현하려면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한다. 단순히 단어를 많이 외운다고 어휘력이 느는 것이 아니다. 뜻을 이해하고, 말맛과 쓰임새를 파악해야 상황에 알맞게 쓸 수 있다.
사전을 아무리 읽어도 어떨 때 써야 하는지 감이 오질 않는데, 어떻게 어휘력을 키우라는 걸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다. 특히 시에는 곱고 새뜻한 표현들이 많이 담겨 있다. 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말뜻은 물론 말의 재미와 쓰임새를 저절로 익힐 수 있다.
잠든 줄도 몰랐는데/작은 소리에/깜짝 놀랐다가//다시/잠이 들었어.//꾸벅꾸벅 졸다가/나를 부르는 소리에/또/단번에 눈을 떴어.//뜀박질하는 노루처럼/내 잠이 자꾸/팔딱팔딱 뛰어.
_「깜짝 노루잠」 전문
잠들었다가 무언가에 놀라 몇 번이고 잠에서 깬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산에 사는 노루는 언제 맹수가 다가올까 경계하며 얕은 잠에 든다. 그래서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깬다. 노루처럼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자꾸 놀라 깨는 잠을 노루잠이라고 한다. 시인은 여기에 “뜀박질하는 노루처럼 내 잠이 자꾸 팔딱팔딱 뛴다”는 구절을 덧붙여 잠이 맹수에게 놀라 도망치듯 팔딱팔딱 뛰는 생동감을 더했다.
잎을 오므린 꽃처럼/입술 가만 모으고/새근새근 잠이 들었네.//꽃잎에 온몸이/포옥 싸인 것처럼/포근포근 잠이 들었네.//꽃이 피는 줄도 모르고/꽃잠이 들었네.
_「포근포근 꽃잠」 전문
꽃이 피는 줄도 모르고 꽃잠이 든 화자. 꽃잠은 아주 깊이 든 잠을 뜻한다. 온몸을 감싼 보드라운 꽃잎, 그 안에서 잠이 들면 몹시도 포근할 것이다. 새근새근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상황은 화자를 더욱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한다. 그 때문에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꽃잠을 자는 걸 테다. 동시집 『올랑올랑한 내 마음』에는 노루잠과 꽃잠 말고도 꿀잠, 단잠, 그루잠, 말뚝잠, 고주박잠이 자신을 깨워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매일 아침, 오늘의 잠이 어땠는지 순우리말로 표현해 보는 건 어떨까? “오늘은 꿀잠 잤어!” 하고 말이다.
밋밋한 표현에 질렸다면,
순우리말로 말과 글에 감칠맛을 더하자!
순우리말에는 재치 있고 달근달근한 표현이 많다. 허리를 세우고 “꼿꼿이 앉은 채 자는” 모습이 꼭 말뚝을 박아 놓은 것 같다는 ‘말뚝잠’(「꼿꼿 말뚝잠」, “밥그릇에 볼록한 산이 하나” 올라간 것 같다는 ‘감투밥’(「아빠 밥은 감투밥」, 산봉우리에 구름을 둘러 “뜨거운 볕을 피하”는 “모자를 쓴” 듯한 삿갓구름(「삿갓구름」). 단어만 보아도 그림이 그려지니 이처럼 재미있고 즐거운 표현이 어디 있을까.
초롱초롱 우리 아기/별보다 더/반짝반짝//샛별눈 깜빡이며/잠은 언제 자려는지//캄캄한 방 안에/별빛 초롱초롱.
_「샛별눈 깜박이며」 전문
샛별같이 반짝거리는 맑고 초롱초롱한 눈을 뜻하는 ‘샛별눈’. 세상이 어둠에 잠기고 방 안도 온통 캄캄해졌는데, 아기는 도통 잠들 생각이 없다. 여전히 초롱초롱한 아기의 눈이 마치 밤하늘의 샛별 같다. 눈동자가 얼마나 맑고 빛나면 샛별에 비유했을까. 조상의 표현력이, 시인의 재치가 샛별처럼 반짝인다.
쌩쌩 부는 바람에/코가 새빨개지는 날//매운 고추 먹은/바람일까?//내 얼굴도 금세/빨개진다.//정신 못 차리게/매서운 바람//온몸을/꽁꽁 얼게 한다.
_「매서운 고추바람」 전문
동시를 읽기만 했는데도 몸이 으스스 떨려온다. 얼마나 매서운 바람이면 ‘고추바람’이라고 했을까? 찬 바람이 고추바람이 되는 순간, 바람의 위력은 몇 곱절로 거세진다. 매운 고추를 먹었을 때처럼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고,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다. 매운맛이 혀를 때리듯 매서운 고추바람은 귓가를, 그리고 손끝 발끝을 때리고 꽁꽁 얼린다. 그냥 바람이라고 했으면, 이렇게까지 시리게 와닿진 않았을 거다. 이것이 바로 순우리말이 가진 말맛이며 감칠맛이다.
‘별숲, 달그림자, 곰비임비, 고상고상....’ 조금은 낯선 단어지만, 우리말은 되뇔수록 입에서 부드럽게 울리며, 쓸수록 재미가 느껴진다. 시를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 보자. 여러 번 말로 내뱉어 보고 나의 표현으로 적어 보자. 곰비임비 쌓이다 보면, 풍성한 언어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