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어메이징 북셸프 선정 ★
다정하면서도 예리하게
연대와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다
배려와 공존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은 작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시 한번 이 화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이 이야기되어 온 주제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만큼 독자가 필요로 하고, 그림책에 기대하는 주제라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다고 서로를 헐뜯고 공격한다. 단순히 한쪽의 편을 들어 주거나, ‘다름’ 자체를 없애는 것만으로는 이 갈등을 끝낼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서로 다른 이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동시에 여전히 유효한 물음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여자아이와 동물들은 그늘 바깥에서 마주쳤다면 서로 쫓고 쫓기는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의 욕망과 두려움은 잠시 접어 두고, 몸을 움직여 작은 그늘 안에 다른 존재를 위한 자리를 마련한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상대가 처한 상황에 공감한 것이다. 그러므로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한 조각 그늘을 나누는 것은 단순히 어떤 공간을 함께 사용한다는 것을 넘어, 적극적인 연대의 의미를 갖는다.
이윽고 저녁이 찾아온다. 더는 그늘에 있을 필요가 없어진 여자아이와 동물들은 이제 어떻게 할까? 그저 기지개를 한 번 쭉 켜고 어둠 속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들이 앞으로도 쭉 함께일지, 얼마간 걷다 각자의 길로 나아가는지 이 책에서는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서로의 안위를 살피는 모습을 통해 그들 사이에 모종의 유대감이 생겨났음은 짐작할 수 있다. 인정하기, 받아들이기, 그리고 공감하기. 이것이 바로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제안하는 연대와 공존의 방식인 것이다.
과감한 색채, 섬세한 디테일,
‘책’의 물성에 대한 완벽한 이해
강렬한 분홍색 배경이 인상적인 표지에 작은 그늘 안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가 보인다. 아이는 왜 혼자 그늘 안에 앉아 있는 것일까? 호기심을 안은 채 표지를 넘기고, 짙은 그림자를 연상하게 하는 면지를 지나 본문의 첫 장에 도착하면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 덩그러니 놓인 바위 하나가 독자를 맞이한다. 이 바위가 만들어 낸 작은 그늘은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대피소이자, 이 책의 자그마한 무대이다.
가로로 긴 판형은 해가 뜨고 짐에 따라 길어지기도, 짧아지기도 하는 그림자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 준다. 180도로 펼칠 수 있는 노출 제본 방식을 택한 것도 그림 한 장 한 장이 가진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온전히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바로 과감한 색채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그림의 요소들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정교하게 설계된 각 장면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한낮의 땡볕을 지나 저녁이 되어 해가 지기까지 단 한 장의 배경도 같은 색을 사용하지 않았다.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함께 이동하는 배경의 음영은 태양을 그리지 않고도 그것을 표현해 낸다.
한 마리씩 동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그늘 안에 있던 모두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자세를 바꿔 가며 서로를 위한 자리를 마련한다. 그러다 해가 지고 그늘 밖으로 나오는 장면에서는 토끼가 여우를 살피고, 새가 뱀의 안부를 묻는 등 종을 초월한 배려와 연대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린다. 이토록 섬세한 디테일은 책의 내용을 더욱 깊고 풍성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