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일상적 반복에 갇힌 인간의 삶
무의미한 세상에서 의미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 철학이 만개한 『시지프 신화』는 양차 세계대전과 나치즘까지, 전 인류의 비극을 겪으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계’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 내린 시대에 쓰였다.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삶이 무의미하다면 자살해야 하는가? 이 작품은 이처럼 가장 근원적이고 불편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암울한 시대에 피어오른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우리 인간에게 언제까지고 절박한 과제다.
시지프는 신에 도전한 대가로 매일 산꼭대기까지 무거운 바위를 밀어 올리지만, 바위는 정상에 닿는 순간 번번이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카뮈는 시지프의 운명을 부조리한 세계에 던져진 인간 존재의 은유로 본다. 절대적 의미가 부재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이라는 형을 살아간다. 그러나 카뮈는 말한다. “우리는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야 한다”고. 그는 애초부터 주어진 의미가 없기에, 오히려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삶의 무의미함을 도피하지 말고 맞서며 살아내라, 곡절 많은 작가 카뮈의 일생을 통해 실증된 이 삶의 태도는 절망한 시지프가 어떻게 반항하고 창조하는 존재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 기록이다.
우리는 무의미한 세계에 내던져졌다!
그래서 비로소 자유롭다
지금까지 삶의 의미를 찾아내려는 시도는 수없이 되풀이되어왔다. 카뮈는 이 세계가 부조리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허무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평생을 바쳐 허무주의를 넘어 앞으로 나아갈 길이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카뮈가 부조리한 삶 앞에 제시하는 태도는 ‘반항’이다. 반항이란, 부조리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끝까지 살아내려는 자세다. 그는 인간이 부조리를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는 세 가지 방식, 스스로 삶을 저버리는 육체적 자살과 절대적 의미에 의지하려는 철학적 비약, 초월적 존재에 삶을 맡기는 종교적 희망을 비판한다. 카뮈는 어느 쪽으로도 도망치지 않고 삶의 무의미함을 직시하는 순간,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결국 인간은 무의미한 현실 속에서 반항을 통해 새로운 삶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과 우리의 삶이 교차하는 경험을 선사하다
사유의 깊이를 더할 작가 서문과 명화 수록
현대지성 클래식으로 선보이는 『시지프 신화』는 기존 판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1955년 미국판 서문’을 수록했다. 작품을 집필한 지 15년이 지나 지난날을 돌아보며 써 내려간 이 서문은, 『시지프 신화』의 맥락을 더욱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는 사유의 마중물이 되어줄 것이다. 또한 이 글은 카뮈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와 글을 쓰는 이유를 선언하는 고백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시지프 신화』 이후 줄곧 같은 방향을 추구해왔다고 밝히며, 부조리한 세계에서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하고 창조하는 인간의 철학을 담담히 펼쳐 보인다.
한편 본문 곳곳에 배치한 거장들의 명화 18점은, 우리가 무의미한 세계 앞에서 한번쯤 느껴봤을 법한 감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독자는 복잡한 철학적 사유와 직관적 이미지가 교차하는 독서를 통해, 카뮈의 철학이 자신의 삶 속에서 생생히 피어나는 경험을 맛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유기환 교수가 섬세한 번역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카뮈의 대표작을 꾸준히 번역해온 역자는, 카뮈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체를 충실히 옮겼다. 또한 장별 내용 요약, 핵심어 해설, 상세한 주석 등 독자를 위한 장치를 여럿 마련해, 카뮈를 처음 접하는 독자부터 더욱 깊이 탐구하고자 하는 독자까지 카뮈의 복잡한 사유를 온전히 따라갈 수 있도록 했다.
왜 지금 다시 『시지프 신화』인가?
부조리한 시대를 이겨낼 가장 반항적이고 가장 따뜻한 철학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무의미와 마주하고 있다. 기후위기, 팬데믹, 전쟁, 실존적 불안과 우울… 타의에 의해 저무는 생과 스스로 생을 저버리는 무수한 사람들. 그러나 숫자로 읽히는 비극은 나와 먼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카뮈는 『시지프 신화』의 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반항인』에서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개개인이 생을 대하는 방식을 통해 인간을 연결하고 의미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카뮈의 삶은 반항과 고독의 연속이었다. 시지프가 굴려 올리는 돌처럼 생의 정상에 올랐다가도 번번이 다시 곤두박질쳤다.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태어난 그는 알제리 전쟁으로 분열된 두 세계를 화해시키려 분투했으나 양쪽 모두에게 비난받았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으나 당의 명에 반발해 제명당하기도 했다.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로 단숨에 세계적 작가의 자리에 올랐지만, 실존주의자 진영과의 논쟁으로 지식인 사회 밖으로 내몰렸다. 그럼에도 그는 세계 앞에 침묵하지 않았고 끝없이 목소리 내기를 택했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웁살라대학교 강단에 오른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는 원하든 원치 않든, 항해 중인 배에 타고 있다. 그의 역할은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배에서 악취가 풍기고 감시자가 넘쳐나도,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해 노를 저어야 한다.”
이 책은 단순히 책상에 앉아 써 내려간 에세이가 아니다. 한 인간이 삶이라는 배를 저어나간 방식의 생생한 기록이자, 죽음을 거부하고 삶을 선택하겠다는 뜨거운 선언이다. 카뮈는 삶의 무의미함을 역설하면서도 언제나 삶을 열렬히 사랑했다. 그는 말한다. 절망하지 말라, 희망하지도 말라, 다만 살아내라. 서문에서 “허무주의를 넘어 앞으로 나아갈 길”이 있음을 힘주어 강조한 그의 이 반항적이지만 따뜻한 철학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존엄과 자유를 발견한다.
『시지프 신화』는 불현듯 삶의 의미를 묻고 싶어질 때 다시 꺼내 들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끝없이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도, 삶을 마주하고 버텨낼 힘을 되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