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의 재현, 우월의식, 이중성에 대하여
이 책의 3부 각각은 예외적 오리엔탈리즘의 정황을 보여주는 세 개의 다른 사례를 다루고 있다. 제1부가 식민지의 재현을 둘러싼 식민자와 피식민자 간의 긴장을 보여준다면, 제2부는 열등한 타자상의 이면에 존재했던 일본인의 타자에 대한 불안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제3부는 타자를 일종의 방법으로 삼아 내셔널리즘과 대결했던 나카노 시게하루의 문학적 저항을 조명하고 있다. 각 부의 내용을 부연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예외적 오리엔탈리즘의 표상 공간」에서는 동양에 대한 표상 행위를 독점했던 유럽과 달리 제국 일본은 타자의 표상에서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점을 기술한다. 제국 일본은 동화정책이 낳은 식민지 출신의 ‘탁월한 모방자’에게 부분적으로 표상의 권한을 허용했고, 식민지 표상의 해석을 둘러싸고도 식민지 지식인들의 반응과 항의에 응답을 요구받았다. 이처럼 근대 일본의 식민지를 둘러싼 표상 공간은 오리엔탈리즘의 논리가 통용되는 세계이기는커녕, 일본이 오리엔탈리즘의 주체가 되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재조일본인의 체험을 가진 나카지마 아쓰시의 소설, 타이완 유학생들이 쓴 일본어 소설, 그리고 장혁주가 극본을 쓰고 무라야마 도모요시가 연출한 일본어연극 <춘향전>을 다룬다.
제2부 「불온한 타자와 제국의 생명정치」에서는 근대 일본의 타자 인식이 식민지주의적 우월 의식만이 아니라 식민지적 타자에 대한 깊은 공포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점을 다룬다. 우선 야나기 무네요시가 3·1운동을 경험하면서 조선인의 ‘마음’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과정을 그의 1910년대 생명사상과의 연속성 위에서 검증할 것이다. 식민지 주민에 대한 근대 일본의 불안감을 가장 극적인 형태로 보여주는 사례로 일본의 우생학 담론을 들 수 있다. 우생학은 대표적인 타자 배제의 담론으로 알려져 있다. 우생학이 타자 배제를 주장했던 이유는 피식민자와의 혼혈이 일본인의 ‘우수한 자질’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즉 식민지 출신자의 생물학적 열등성은 일본인의 우수성을 침식할 수 있는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이처럼 우생학에게 피식민자의 열등한 자질은 이중의 의미를 띠고 있었다. 그것은 제거되어야 할 ‘질병’이자 동시에 일본의 민족적 파국을 상기시키는 공포의 원천이었다.
제3부 「나카노 시게하루와 대항의 문학」은 대표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자인 나카노 시게하루가 일본 내셔널리즘과 벌였던 사상적 대결의 이중성에 주목한다. 그는 개인을 ‘무산계급’의 일원으로 표상하는 사회주의적 상상력에 비판적이었다. 그에게 이것은 개개인을 일본 ‘민족’ 혹은 천황의 ‘신민’으로 표상하는 내셔널리즘의 논리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소설 속에 천황제 국가에 저항하는 인물들을 그리면서도, 그들의 비극과 곤란을 억압받는 집단의 비극으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내셔널리즘에 대한 그의 비판적 거리두기가 언제나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식민지 조선의 민족해방을 지지했지만, 근대 일본의 조선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또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통해 일본과 조선의 민중을 천황제 국가에 맞서는 정치적 주체로 호명했지만, 두 저항하는 집단의 관계에 대한 그의 묘사는 대등한 연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카노가 평생에 걸쳐 수행했던 근대 일본의 내셔널리즘과의 격투는 내셔널리즘을 넘어선다는 것과 대등한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대해 여전히 그 유효성을 잃지 않고 있다. 제3부는 이런 나카노문학의 가능성을 ‘대항의 문학’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