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철학, 왜 지금 다시 읽어야 하는가?
기후위기, 전쟁, 불평등, 정치의 파편화, 공동체의 해체 등 현대사회는 우리가 익숙하게 여겼던 모든 기준과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과 초경쟁의 시대에 장자의 철학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장자는 인간이 자연과 하나 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했고, 삶의 본질을 가리는 욕망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해방의 길을 제시했다. 특히 그의 성인론은 어떤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나 자신’도 도달할 수 있는 수행의 경지로서 누구나 따라갈 수 있는 삶의 가능성이다.
『장자의 인간학』은 이처럼 오늘날의 인간에게 요구되는 실천 철학의 길로서 장자의 사유를 재구성한다. 저자는 장자의 인간관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윤리적 자각과 영적 통찰을 줄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수행으로 구현되는 철학, ‘살아 있는 성인’의 길
이 책의 중심은 장자가 말한 이상적 인간상, 곧 ‘성인’(聖人)의 철학적 재해석이다. 저자는 『논어』, 『맹자』, 『노자』에 나타난 유가 및 도가의 성인관을 비교하며, 장자만이 보여주는 독자적인 성인상의 구체성과 해방성을 밝힌다. 특히 『장자』에서 성인은 특정 계층이나 권력자가 아닌, 마음을 비우고 자연과 하나가 되기를 실천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장자의 성인은 ‘무위’와 ‘소요유’를 실현하며, 기(氣)의 순환과 취산(聚散) 속에서 생과 사조차 구속으로 보지 않는다. 이는 오늘날 무한한 자기관리와 성과주의에 내몰린 현대인에게 내면의 평정과 해방을 회복하는 철학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좌망(坐忘)과 심재(心齋)의 수행법은 단지 고전적 명상법이 아니라, 현대 심리철학과도 연결되는 통합적 수양법으로서, 몸과 마음,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중요한 실천이다.
현대 철학과의 교차 지점들
이 책의 주목할 지점 중 하나는 장자의 사유가 현대 철학, 특히 생태철학·해체주의·비판이론과도 상응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장자의 도(道)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흐름과 변화의 장(場)이며, 이질성과 다름을 포용하는 무차별적 평등성의 철학이다. 이는 레비나스의 타자철학이나 데리다의 해체주의, 가타리의 생태윤리학과도 접점을 가진다.
예컨대, 장자가 말한 ‘齊物’(만물제동)의 관점은 존재자들 간 위계를 폐기하고, 생명 있는 모든 것을 동등하게 여기는 생명윤리적 시각으로 읽히며, 오늘날 탈종 중심주의의 윤리와도 통한다. ‘무용지용’의 사유는 생산성 중심의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철학적 반기를 들며, 쓸모없음의 가치, 남겨짐과 비움의 철학을 재해석하는 사상적 기반이 된다.
구성과 내용의 특장점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는 장자의 철학을 점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1) “제1부 - 유가와 도가는 인간을 어떻게 보는가?”는 유가와 도가가 바라보는 인간의 본질과 삶의 태도를 비교한다. 공자와 맹자는 인간을 도덕적 완성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보며, 예와 인, 그리고 사회적 수양을 통해 이상적인 인간과 국가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에 비해 장자는 인간을 규범이나 역할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도(道)와 하나 되어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맡길 때 비로소 참된 자유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장자의 인간 이해는 경쟁과 성취를 강요하는 오늘날의 자기계발 패러다임을 비껴가며, 존재 자체의 평화와 내적 자유를 향한 철학적 성찰을 제안한다.
(2) “제2부 - 유가와 도가는 성인을 어떻게 보는가?”는 성인을 이상적 인간상의 구현으로 보되, 유가와 도가의 차이를 중심에 놓는다. 유가는 성인을 도덕성과 정치적 이상을 갖춘 지도자로 정의하며, 사회의 이상을 구현하는 인물로 본다. 반면 장자의 성인은 규범과 형식을 초월하여 도와 자연스럽게 합일된 존재이다. 그는 눈에 띄지 않지만, 가장 높은 경지에서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수행의 방식 또한 다르다. 장자는 좌망과 심재를 통해 마음을 비우고, 욕망을 내려놓으며, 진리를 내면화하는 수련을 강조한다. 이는 요즘 명상과 자기 성찰의 문화와도 깊이 닿아 있다.
(3) “제3부 - 장자가 본 이상적 인간상은 무엇인가?”는 『장자』 속 이상적 인간상들을 총체적으로 해석한다. 지인(至人), 진인(眞人), 대인(大人), 신인(神人) 등은 각각 다른 수행 방식과 존재론적 특성을 보여주며, 인간 완성의 단일한 모델을 부정하는 장자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특히 기인(畸人)에 대한 언급은 사회적 비주류나 약자를 포용하는 장자의 사유가 오늘날의 다양성과 인권 논의에도 유효함을 시사한다. 이 부는 인간 존재의 다층성과 가능성을 긍정하며, 우리 각자가 나름의 방식으로 ‘완성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4) “제4부 - 난세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는 장자의 핵심 개념인 허기(虛己)와 무용지용(無用之用)을 통해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철학적 태도를 모색한다. 허기는 자기중심적 집착을 비우는 마음의 상태로, 타자의 시선이나 가치에 매몰되지 않는 내면의 자유를 의미한다. 무용지용은 사회적으로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것에 오히려 근원적 생존의 지혜가 깃들어 있음을 드러낸다. 이 두 개념은 경쟁과 효율성이 강요되는 현대 사회에서 ‘비움의 철학’을 통해 자기를 보존하고 회복하는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이러한 구성은 장자의 철학을 단절된 사상체계가 아니라, 인생의 구체적 국면을 안내하는 통합적 길잡이로서 제시하고 있다.
독자와 시대를 향한 제안
이 책은 특정 전공자나 전통 철학 연구자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소진과 번아웃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깊이 있는 내면 안내서이자, 자기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철학적 나침반이다. 저자는 『장자』라는 고전을 해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그것을 고전철학의 박제된 유물이 아닌, 오늘의 삶과 연결된 살아 있는 지혜로 되살려낸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독자들에게 특히 유의미하다:
(1) 자기 성찰과 수양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 현대인은 끊임없이 외부 자극에 노출되어 있고, 주어진 규범에 따라 살아가도록 교육받는다. 그러나 그런 삶이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할 때,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라는 질문 앞에 선다. 『장자의 인간학』은 그러한 독자에게, 내면의 평정을 회복하고 자신만의 삶의 축을 세울 수 있는 철학적 사유의 문을 연다. 자기 성찰을 위한 언어가 필요한 독자에게 이 책은 고요한 울림을 제공할 것이다.
(2) 명상, 치유, 수행에 대해 깊은 철학적 기반을 찾는 실천가: 명상과 수행, 마음 챙김이 유행처럼 소비되고 있지만, 그 철학적 뿌리는 종종 가벼이 여겨진다. 『장자의 인간학』은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이라는 수행 전통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며, 진정한 내면 수련이란 무엇인지 사유하게 한다. 이 책은 수행의 실천가들에게 ‘어떻게 명상하고 수양해야 하는가’라는 기술적 접근을 넘어서, ‘왜 그것이 필요한가’라는 존재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3) 경쟁과 유용성 중심 사회에 회의를 느끼는 청년과 젊은 세대: 오늘날 청년 세대는 끝없는 비교, 빠른 성과, 효율성 중심의 사회구조 속에서 소모되고 있다. 이들에게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과 허기(虛己)는, ‘쓸모없음의 쓸모’, ‘비워야 채워짐’이라는 전복적 사유를 제시한다. 무엇인가가 되어야만 인정받는 사회에서, 아무것도 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진정한 자기를 회복하라는 장자의 철학은, 탈경쟁적이고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강력한 사유의 자극이 된다.
(4) 정치·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시민과 인문사회 연구자: 장자는 끊임없이 ‘구분 짓기’를 경계한다. 옳고 그름, 선과 악, 중심과 주변-이 모든 이분법적 사유가 갈등과 폭력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그는 일찍이 꿰뚫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 세대·계층 갈등, 혐오의 확산 속에서 『장자의 인간학』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보는 시선’, ‘경청과 허심’을 회복하는 길을 제시한다. 공공 담론과 시민 윤리에 대한 철학적 기반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은 성찰과 실천의 연결고리가 되어줄 것이다.
(5) 종교적 영성의 현대적 재구성을 고민하는 종교인: 『장자』는 종교가 체계화되기 이전의 살아 있는 영성을 담고 있다. 하늘(천天)과 하나 된 삶, 도(道)와 합일된 존재로서의 성인(聖人)은, 특정 교리나 제도 이전에 내면의 영적 삶을 우선시하는 길을 보여준다. 『장자의 인간학』은 종교인들에게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제안하며, 형식화된 의례와 교리 중심의 실천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수행’과 ‘비움의 영성’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종교 간 대화와 융합 신학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통찰의 자원이 된다.
(6)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철학적 반성을 모색하는 생태운동가 및 탈성장론자: 장자의 사유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절대성을 의심하고, 자연과 생명의 순환 속에서 인간을 다시 자리매김하려는 철학이다. 이는 오늘날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력한 철학적 자극을 제공한다. 자연에 대한 경외, 비지배적 존재론, 그리고 무위(無爲)의 정치적 상상력은 생태 위기 시대의 새로운 인간상을 구축하는 데 유효하다. ‘인간 중심’의 거대한 서사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문학이 필요하다면, 이 책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