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에게는 어두운 면과 빛이 있고,
전체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두 가지를 모두 사랑하는 것이다.
2021년 웨인라이트상 최종 후보작
“이야기 하나하나가 슬라이드 필름처럼 반짝거리며 빛을 발하는 이미지 같다.” - 월스트리트 저널
『씨앗에서 먼지로』는 단순한 정원사의 에세이가 아니다. 계절의 흐름을 따라, 한 인간의 안팎을 조망하는 깊은 사유의 기록이다. 헤이머에게 정원일은 단지 식물을 돌보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일과 그 과정은 모두 존재의 근원을 향한 질문이며, 답을 찾아가는 성찰의 시간이다. 그는 자연과 인간, 생명과 죽음, 인간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빛과 어둠을 탐구하며 정원을 거닌다. 그에게 자연은 대상이 아니라 관계이며, 정원은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언어다.
나는 삶을 살아가듯, 정원을 거닌다.
무언가 할 일이 보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나는 한다.
할 필요가 없는 일이면 내버려둔다.
이 책은 월별로 진행되며, 그에 따라 자연과 정원일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그 흐름을 따라 저자의 과거와 현재, 캐시미어 부인과의 느슨한 교류, 아내 페기와의 충만한 삶도 잔잔히 진행된다. 해머는 정원사이자 작가로서, 정원을 가꾸는 일상을 통해 삶의 근원적 진실에 다가간다. 자연에 개입해야만 하는 것이 정원사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관객이자 목격자”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본다. 나무의 흔들림과 새들의 이동, 곤충과 동식물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자연의 리듬을 읽는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삶과 죽음이, 빛과 어둠이, 씨앗과 먼지가 각각 저마다 하나의 원을 그리고 있음을 자연히 느끼게 된다.
내가 무엇이 될 수 있거나 될 수 없다고, 혹은 내가 무엇이었고, 무엇이었을 수도 있다고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로 내 삶을 한순간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 전반에 죽음에 대한 사유가 흐르고 있지만, 그것이 생에 대한 비관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헤이머는 “끊임없이 변하는” “지금 여기”에 집중한다. 과거에 죽음을 선택하려 했으나, 오히려 죽음이 가능한 선택지였기에 살기로 결심한 저자만이 할 수 있는 진술이 도처에 있다. 그는 죽음을 친구로 두면 어떻게 삶을 기쁘게 살 수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하며, 빛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까지 포용할 때 비로소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태도를 보인다.
사랑은 단순하다.
그저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을 쏟아붓고, 자아를 죽이면 된다.
페기도 똑같이 하고, 사랑은 그렇게 움직인다.
헤이머는 더 나아가 일상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말한다. “가벼운 대화, 산책하기, 설거지하기, 밤이 내릴 때 일몰 바라보기” 같은 것이 삶의 가장 최고의 부분임을 말한다. 또한 그는 사랑을 삶의 또 다른 근간으로 삼는다. 아내 페기와 함께 보낸 시간들을 반추하고 다가올 미래를 그리며, 단순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행위로서의 사랑을 통해 빛과 어둠을 함께 살아낸다. 그의 이러한 삶의 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자연스러운 삶,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일 것, “자기답게 살고, 모두처럼 살” 것을 권한다.
『씨앗에서 먼지로』는 마크 헤이머가 가꾼 은유의 정원이다. 그는 삶을 직선이 아닌 원으로 본다. 그 원은 완결되지 않는다. “불완전한 원”을 반복해 그리는 것이 인생이며, 바로 그 반복이 우리를 충만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어떤 리듬으로 하루를 살아내는지를. 그 물음은 부드럽지만 깊숙이 파고든다. 이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정원의 흙을 쥐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빛과 어둠을 함께 사랑하는 일,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답게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