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690년의 파란만장한 역사, 이기환 기자의
〈히스토리텔러 이기환 記者의 톺아본 백제사 순간들〉 출간
삼국 중 가장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닌 백제의 흥망성쇠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생생하게 풀어낸 이기환 기자의 신간, 〈히스토리텔러 이기환 記者의 톺아본 백제사 순간들〉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부터 멸망 후 10년 이상 이어진 독립투쟁까지, 백제 690년 역사의 주요 순간들을 꼼꼼하게 조명한다. 저자는 삼국 중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았지만, 한성 함락과 두 번의 천도 등 좌절과 고난을 겪었던 백제의 드라마틱한 역사를 고고학 발굴 성과와 사료를 넘나들며 흥미롭게 풀어냈다.
고고학 발굴로 되살아난 백제의 "리즈 시절"과 최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으로 대표되는 백제 초기 도성 이야기다. 기적적으로 발굴된 풍납토성은 잃어버린 백제 전성기 493년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근초고왕 시기에는 도성 외곽에 "백제판 강남개발"을 이루는 등 백제인의 삶의 터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석촌동 고분군에서는 16기 이상의 돌무지무덤과 함께 완전 연소된 인골들이 발견되어 왕실의 독특한 장례 문화를 엿볼 수 있다.
1971년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고분 중 유일하게 주인을 알 수 있는 왕릉으로, 쪼그라든 국력을 회복하고 "갱위강국(다시 강국이 되었다)"을 선언했던 무령왕의 위엄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무령왕 부부의 3년상은 물론, 제사상에 올랐던 은어 3마리까지 복원되어 백제 왕실의 의례를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백제의 최후 또한 발굴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난다. 불에 타 폭삭 내려앉은 건물터들은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한 멸망의 순간을 증언한다. 하지만 저자는 660년이 끝이 아님을 강조한다. 663년 동북아 패권을 가른 백강 전투의 패배와 그 이후 672년까지 이어진 처절한 독립투쟁의 증거들이 사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가림성 사랑나무"가 그 흔적 위에 우뚝 서 있다고 이야기한다.
미스터리와 예술성, 그리고 인간미 넘치는 백제의 흔적들
이 책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 나열을 넘어, 백제와 관련된 다양한 미스터리들을 파헤친다. 공주 수촌리에서 발견된 반으로 자른 대롱옥이 묻힌 부부 무덤은 백제판 "사랑과 영혼" 스토리를 연상케 하며, 익산 왕궁리에서 확인된 백제인의 공동 화장실은 화장실 고고학이라는 이색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또한 선화공주의 무덤을 둘러싼 미스터리, 칠지도를 왜에 하사한 이가 근초고왕인지 전지왕인지에 대한 논쟁, 일본 국보 2호 인물화상경의 제작자가 무령왕인지 동성왕인지에 대한 새로운 견해 등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백제 예술의 정수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신라와 달리 24K 순금을 선호했던 무령왕 부부의 장신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산수인물화를 새긴 무늬전돌, 그리고 발굴 30년이 지나도록 수많은 논문이 발표된 금동대향로는 백제인의 뛰어난 미적 감각과 기술력을 보여준다. 특히 금동대향로에 표현된 5악사가 여성 악사였다는 최근 연구 성과는 백제 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이 밖에도 용 문양을 새긴 백제 명품 구두인 금동신발, 신라 귀족 무덤에서도 발견된 백제산 구두, 그리고 9단부터 시작하는 백제판 구구단 목간 등 흥미로운 유물들이 백제인의 삶과 문화를 엿보게 한다. 제작 과정에서 나타난 "아차 실수" 유물들, 예를 들어 금동대향로의 대충 뚫린 구멍이나 뒤틀려 폐기된 거대한 불상받침대 등은 오히려 인간미 넘치는 백제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친근함을 선사한다. 얼굴 없는 채 복원된 익산 연동리 보물 불상 이야기는 고민거리를 던지면서도 백제 문화유산의 다채로운 면모를 드러낸다.
이기환 기자는 "이 책은 밤새워 관련 논문과 사료를 읽고, 여러 연구자들을 괴롭혀가며 얻어낸 성과"라며, "연구자들의 피와 땀이 서린 연구 성과의 정수를 골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또한 "지극히 새로운 연구 성과를 공개함으로써 논쟁이 벌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독자들의 활발한 논의를 기대하고 있다.
〈히스토리텔러 이기환 記者의 톺아본 백제사 순간들〉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읽는 전문서가 아닌, 자리에 누워 편안하게 백제 역사를 즐길 수 있도록 쓰여진 책이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백제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