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서정抒情을 이렇게 잘 살려낸 시집이 있다니
- 김일곤 시집 『휘파람새가 뽑은 가락국수』
이 승 하
(시인, 중앙대학교 교수)
김일곤 선생님께
안녕하십니까?
지금껏 2권의 시집을 낸 바 있는 김일곤 선생님의 세 번째 시집 원고를 읽으면서 이렇게 시를 잘 쓰는 분을 내가 모르고 있었다니! 내심 감탄하면서 첫 시 「꽃누르미」부터 마지막 시 「초록은 모서리가 없다」까지 읽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시인이 시집 해설을 쓰게 된 문학평론가에게 전화를 해 잘 좀 써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김일곤 선생님은 지금까지 뵌 적도 없고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시집 해설을 받아도 전화를 해주실 것 같지 않지만 저는 조금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하다가 정년퇴직한 분이라 알고 있는데 누구한테 무엇을 부탁하는 게 어색해서일 것입니다. 1948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그 인근에서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고 있다 정년퇴임을 하신 것 같습니다. 1993년에 《새교실》로 등단하긴 했지만 2014년에 심기일전해 《시산맥》을 통해 재등단하셨지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 쓰기에 매진해 《사와사람》과 《불교문예》를 통해 시집을 2권 냈고 이제 제3시집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아마도 교육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 시 쓰기에 더욱더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제일 앞에 실려 있는 시부터 한 편 한 편 거론하면서 해설 쓰는 습관을 갖고 있는데 시집의 제목이 『휘파람새가 뽑은 가락국수』이니 이 시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풍경이 8할이다.
판소리 한 대목 후리는 국숫집
절창 한 가락은 덤이니
길게 줄을 서도 괜찮다.
벚꽃 두어 점 고명 얹은 국수 한 그릇
앞에 놓으면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뜨건 바람
후후 불며 시장기부터 달랜다.
- 「휘파람새가 뽑은 가락국수」 전반부
풍경이 8할이라니 경치가 무진장 좋은 곳에 자리 잡은 국숫집이 그 동네에 있나 봅니다. 가락국수를 유독 잘하는 집인가요? 아니면 판소리 한 가락을 뽑을 줄 아는 사람이 그 식당의 주인인가요? 벚꽃 두어 줌이 고명이라니 아주 멋집니다.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뜨건 바람을 후후 불며 시장기부터 달랬나 봅니다.
고향 말 시끌벅적한 가락국수집
추억의 가성비 차고 넘친다.
-휘리릭 휘리릭 휘 휘리릭 휘리릭 휘
귀에 딱지가 앉아도 좋을
휘파람새 소리
무더기무더기 꽃 사태 지는
강 언덕길로
먼 강, 밤새 날아온
하늘색 저고리 파랑 색동의 휘파람새
보릿고개 긴 봄날처럼
길게 울다 갔다.
- 「휘파람새가 뽑은 가락국수」 후반부
판소리 한 대목 후린 이가 사람이 아니라 휘파람새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색 저고리 파랑 색동의 휘파람새가 보릿고개 긴 봄날처럼 길게 울다 갔다고 했으니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은 60년대쯤이었을까요? 아무튼 그 국숫집이 지금도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주소를 알려주십시오. 꼭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시포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 소재에 가면 꽃게 해물탕은 먹을 수 있겠지요? 일단 음식 소재 시를 일별해볼까 합니다.
밀물이 깃발처럼 돌아오네요.
나는 당신을 향해 달음질쳐 가고 있어요.
등대가 보이는 창가에
그날처럼 앉았어요.
꽃게 해물탕을 유난히 좋아했던 당신
언제 왔는지 소주잔 부딪치며 하얗게 웃고 있어요.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은
문득문득 그리운 추억 때문이고
헛 미소 지은 까닭은
눈물 놓아 드리려고 그래요.
고향 바다를 지켜야 한다고 어부가 된 당신
무슨 일이 그렇게도 급했던가요?
걱정하던 도련님은
청년회장이 되어 어촌을 이끌고 있어요.
당신의 햇살을 붙들며
우리 모자 굳건하게 살아요.
소금꽃 물방울들이
우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끓고 있어요.
꽃게가 빨간 꽃으로 피어나고
그 한때의 행복이 간을 맞추며 노을처럼 끓어요.
‘그래, 너희들은
보글보글 끓고 있는 꽃들이야,
내 사랑이야.’
- 「구시포 꽃게 해물탕」 전문
이 시의 화자는 여성입니다.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네요. 당신이 ‘도련님’이라고 불렀던 화자의 아들은 청년회장이 되어 어촌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향 바다를 지켜야 한다고 어부가 된 당신”은 “무슨 일이 그렇게도 급했던가요?”란 구절을 보니 그만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고를 듣고 헐레벌떡 고향에 내려간 화자는 “꽃게가 빨간 꽃으로 피어나고/ 그 한때의 행복이 간을 맞추며 노을처럼 끓어요.”라고 말하고 있으니 무슨 기막힌 사연이 있었나 봅니다. 화자와 당신은 친구 사이였을까요 연인 관계였을까요? 아니면 주인과 하인? 시를 통해 독자들에게 꽃게 해물탕을 맛보여 주시나 했는데 저는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구례에 제가 가면 흑산도 홍어가 들어간 삼합을 사주실 건지요? 무뚝뚝하신 분이 아니길 바라지만…….
야반도주해 왔다는 흑산도 홍어
질항아리에 숨었다.
벚꽃 활짝 피니 맞춤한 때라
언제 불려 나갈지 모른다.
질항아리 안에서 짚 한 줌 움켜잡고
게슴츠레한 눈이 되어서야
향기가 깊어 갔다.
과부 속마음 어찌 알랴마는
배꽃 피는 환한 뒤란 뒷물치고 나와
삼합 미각 한 채 입에 물린다.
하얀 꽃잎 술잔에 이녁 마음도 동동
한 순배 돌고 나면
육자배기 가락에 추임새 넣고 있는
엉덩이마다 들썩이는 봄밤이다.
홍어 축제의 밤은 무장 깊어 가고
앵두처럼 농익은 말재간들에
영산포 봄밤이 어깨춤을 춘다.
얼쑤 좋다! 얼씨구 좋다!
북 장단에 길게 술잔이 돌아간다.
- 「술 권하는 홍어」 전문
저는 영산포에서 행해지는 홍어 축제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간혹 서울에서도 삼합을 먹기는 합니다만 제대로 삭혀 눈물이 핑 도는 홍어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너무 삭히면 손님들이 외면하니까 서울 사람들 입맛에 맞춘 홍어밖에 못 먹어봤습니다. “과부 속마음 어찌 알랴마는/ 배꽃 피는 환한 뒤란 뒷물치고 나와/ 삼합 미각 한 채 입에 물린다.”는 왠지 좀 에로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과부 있으면 밤새 같이 술을 마시고 싶습니다. “한 순배 돌고 나면/ 육자배기 가락에 추임새 넣고 있는/ 엉덩이마다 들썩이는 봄밤”에 말입니다. 얼쑤 좋다! 얼씨구 좋다! 북 장단에 길게 술잔이 돌아가면 그날로 정분이 나서 저는 상경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흥겨운, 혹은 농염한 음식 소재 시도 있지만 역사의 현장으로 저를 데리고 가는 시도 있네요. 그해 5월에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쌌던 주먹밥이 있었다면서요.
소금에 간을 맞춘
한 덩어리 주먹밥
지그시 뭉쳐 피어난 밥 꽃,
밥알이 스크럼을 짜고 일어선다.
둥글둥글 몽돌이 되어
충장로로, 금남로로, 도청 앞으로
또 어디론가 굴러간다.
(……)
상처 속에서 개복숭아같이 피는 밥 꽃
또 한 개의 주먹밥이,
백 개의, 천 개의, 만 개의 주먹밥 되어
총칼을 받아내며 굴러간다.
민주의 밥이 되어
오월의 꽃이 되어
- 「주먹밥」 전문
시민들이 질서정연하게 행하고 있는 시위 현장에 왜 공수부대원을 보냈던 것일까요? 강경 진압을 통해 시민들이 분노할 것을 신군부의 그들은 노리고 있었고, 그것이 미리 짜놓은 작전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자구책 차원에서 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시민군이 되었습니다. 군인들에게는 전투식량이 나오는데 시민군의 식사는? 광주시민들이 황급히 주먹밥을 싸서 제공했습니다. 둥글둥글한 주먹밥이 몽돌이 되어 충장로로 금남로로 도청 앞으로 굴러갔다고 합니다. 이심전심이고 혼연일체였습니다. 주먹밥은 총칼을 받아내며 민주의 밥이 되어, 오월의 꽃이 되어 굴러갔습니다. 그날의 주먹밥이 이 나라 민주화의 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거문도 은갈치가 문초를 당하고 있는 치국治鞫의 현장에 가보도록 합시다.
치국장이 대왕 은갈치 죄명을 선고하였다.
은백색 광택을 펄럭이다가
편형 체위로 누워 넋을 놓다 죄명을 묻는다.
여름 밤바다 조명을 받고
바닷속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자부하는데
화형火刑이라니오, 그 연유가 무엇인가요?
첫째, 푸른 바다 자유와 평화를 막무가내로 갈구한 죄,
둘째, 거문도 수역 어류의 맛을 독차지한 죄,
셋째, 달빛을 휘감고 해저 풍광을 축적해 온 죄,
마지막으로 밤바다 강태공 눈을 현혹해 밤잠 못 자게 한 죄가 그것이다.
이제 네 죄명을 알겠는가?
- 「거문도 은갈치 구이 치국장」 전반부
하하, 거문도 근처에서 잡히는 은갈치의 죄상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은갈치가 문초를 당하는 현장에서 “여름 밤바다 조명을 받고/ 바닷속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자부하는데/ 화형이라니오, 그 연유가 무엇인가요” 하고 볼멘소리로 외치는 장면도 재미있지만 네 가지 죄명을 대는 치국장의 불호령도 재미있습니다. 결국 은갈치는 화형을 당해 겉은 노릇노릇 바삭하게, 속은 촉촉하게 익어 품격 높은 소신공양을 하게 되었습니다. 화형을 집행하고 나서 치국장은 그래도 “그래. 너희들이 아름답게 살아주었기에/ 남쪽 바다가 면을 세웠고/ 네 맛이 이리 깊게 여물었구나.” 하면서 은갈치의 공을 인정해 주네요.
김일곤 선생님은 간혹 커피도 드시나 봅니다. 그런데 시를 보니 커피가 많은 사람이 즐기는 기호식품인데 선생님께서는 ‘가진 자’로서 자기반성을 하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펄펄 끓는 커피잔
커피 가루와 설탕을 휘휘 저으면
휩쓸리어 돌던 것들이
입 안에서 웅얼거린다.
(……)
햇살이 커피 농사를 짓고
히말라야 산그늘이 커피 향을 낸다는
말레 마을 커피 농사법
먼 수출길 떠나 보석으로 돌아왔다.
열매가 커피인 줄도 모른 어둠이
빛으로 나올 수 있었다.
세상인심이 만든 작은 커피잔 속에
가진 자들이 지은 베틀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 「커피 로드」 부분
선진국에서는 커피가 일종의 ‘생활의 멋’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생산지는 대체로 가난한 나라들입니다. 히말라야 산그늘에 있는 말레 마을도 그중 하나인 모양입니다. 그곳에서 생산된 커피가 먼 수출길을 돌아 이 나라 커피점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커피의 여로road를 “열매가 커피인 줄도 모른 어둠이/ 빛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표현한 뒤에 “세상인심이 만든 작은 커피잔 속에/ 가진 자들이 지은 베틀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저의 반성도 촉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커피 마실 때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또 다른 커피 관련 시는 뜻밖에도 꽤 에로틱합니다.
커피 카페에서
우유와 커피가 끌어안았다.
혀는 설왕설래 뜨겁고
희디흰 샅
땀으로 젖을 때
그 애 빨간 빨대가
한강 철교를 놓았다.
덜커덩! 덜커덩!
기차는 침목을 치며
기적이 울었다.
깊고 푸른 숲
활활 타오른 산딸기 두 알
투명한 유리컵 속에서
우유 같은 파랑과
커피 같은 빨강이
익을 대로 무르익어서
청실홍실 봄밤을 섞는다.
- 「커피라떼」 전문
제 안목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남녀상열지사로 이 시를 읽게 됩니다. 우유와 커피가 끌어안고 있는 카페라는 곳에 대한 묘사도 그렇지만 “희디흰 샅/ 땀으로 젖을 때/ 그 애 빨간 빨대가/ 한강 철교를 놓았다.”와 산딸기 두 알이 우유 같은 파랑과 커피 같은 빨강과 익을 대로 무르익어서 청실홍실 봄밤을 섞는다(!)고 했습니다. 원래 청실홍실은 혼례에 쓰는 남색과 붉은색의 명주실 테를 가리키지요. 신랑 집에서 신부네 집으로 혼인을 청할 때 청홍靑紅의 두 끝을 따로따로 접고 그 허리에 색깔이 엇바뀌게 낍니다. 이 납체納采의 풍습은 첫날밤, 즉 남과 여가 처음으로 살을 섞는 행위와 연관이 있습니다. 이 시의 마지막 행이 “청실홍실 봄밤을 섞는다.”라니 제 가슴이 쿵쿵 뜁니다. 언제 한번 정윤천 시인이 화순에서 운영하는 카페에도 가봐야 되겠습니다.
그곳에선 누구나
첫눈처럼 만난다.
소담하게 눈이 내리는 밤
눈발 사이로 커피 향이 흐르고
모과차 향이 흐르고
쌍화차 향도 흐르지만
첫눈 같은 첫사랑 여인을 만날 것 같아 더 좋다.
- 「예술 카페 첫눈」 앞부분
하하, 교장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남자란 다 똑같은가 봅니다. 저도 첫눈이 오면 첫사랑이 연락해 오지 않나 기다리곤 했으니까요. 저는 그 카페에서 모과차를 마시겠습니다.
이제 소개하는 시는 음식과는 무관하지만 묘사가 전부 요리와 관련이 있어서 예로 들어봅니다. 김일곤 시인의 특성이 바로 미각적 이미지를 즐겨 다루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시인이 갖고 있는 크나큰 장점이기 때문입니다.
소쇄원 대숲 길 걸으면
지난밤 빗소리로
간을 맞추고
냉장 숙성시킨 푸른 대숲 바람에
새소리 고명을 놓는다.
서울 글 친구는
어느새 대나무 이파리처럼 살랑거리는 몸짓,
별서원림을 어느 틈에 다 읽어냈는지
휘파람새 가락에
구룡폭포를 바람결에 흘리니
개울 물소리처럼 청명하다.
광풍각光風閣 앞뜰은
댓잎 칼에 잘린 치자꽃 향기가
매실 향을 희롱하듯 봄날을 토해내는데
제월당霽月堂 토방 위에서는
달맞이꽃 닮은 소녀들이
찰칵찰칵 풍경을 채 썰고 있다.
둥근 너럭바위 위에
열두 첩 바람 요리 한 상 차려낸 것은
풍류객을 위해서나 대숲 품격으로나
왜 아니 마땅치 않으랴.
- 「소쇄원의 여름 별미」 전문
전남 담양군 가사문학면 지곡리에 있는 정원인 소쇄원은 대한민국 명승 제40호입니다. 조선 중기의 선비 양산보梁山甫가 지었는데 양산보는 본래 조광조의 제자였으나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죽자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고향인 창평담양군의 일부으로 내려와서 은둔하면서 소쇄원을 지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소쇄원을 노래한 시인들이 적지 않았지만 대숲 바람에 새소리 고명을 놓는다거나 제월당 토방 위에서 달맞이꽃 닮은 소녀들이 풍경을 찰칵찰칵 채 썰고 있다느니 “열두 첩 바람 요리 한 상”이라는 표현도 그렇고, 하나하나가 감칠맛 나는 것들입니다. 소쇄원 일대를 이렇게 맛깔스럽게 그린 것은 김일곤 시인이 처음입니다. 소쇄원을 묘사한 시를 봤으니 이번에는 면앙정으로 가보겠습니다.
두루미 날아간 쪽으로
개울물이 볕을 안고 빛나는 건지
햇살이 개울물을 안고 빛나는 건지
꽃비 엎치락되치락 맞으며 간다.
이 봄날 풍류를 놓고
임 생각 어찌 잊을 건가?
들녘을 가로질러 가는
두루미 몇 마리 꽃비 속에 날고
마음의 벼리만 같았던
임은 어디 가고 면앙정 송죽만 골똘하다.
누정에 걸린 저 시 가락들
이전의, 그 이전의 시인들이 눈을 떠
시학의 꽃을 피운 게다.
두루미 보는 일처럼
면앙정가 불러도 허물이 되지 않을 터
임의 노래 읊으니
제월 들녘도 면앙정도
꽃잎 분분
- 「면앙정 가는 길」 전문
면앙정은 전남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의 제봉산 자락에 있는데 1533년중종 28에 송순宋純이 완공한 정자로 이황을 비롯한 강호제현들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길러내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추녀 끝은 4개의 활주가 받치고 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여러 차례 보수한 것으로, 1979년에는 지붕의 기와를 교체했다고 하지요. 최초의 모습은 초라한 초정草亭으로 바람과 비를 겨우 가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면앙정가」는 송순이 40대 초반 무렵에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사로 바로 이 면앙정에서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면앙정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송순 자신의 풍류 생활을 읊은 작품이지요. 딱 500년의 세월이 흘러 김일곤 선생님에 의해 다시금 면앙정 가는 길이 노래 되고 있습니다. 이 시는 그다지 길지 않음에도 남도의 가락, 정서, 풍광이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송순-김영랑-서정주-송수권으로 이어져 온 남도의 서정을 지금 이 시대의 시인 중 가장 잘 잇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제일 처음에 올린 시를 보겠습니다.
몸속 헛물 게워 내고
꾹꾹 눌러 이별 깃 싹둑 자릅니다.
잠시 꽃 생각 지우고
여시 떨 꿈을 꾸고 있네요.
한 무리 꽃누르미로 부스스 일어나
더불어 숲이 되고
레이스 컵 받침 의자가 되고
정물화로 앉아 노는 날
딱 여시 한 마리 환생한 기분이에요.
한 몸으로 두 세상을 본다는 일은
얼마나 신명이 날까요?
- 「꽃누르미」 전반부
꽃누르미의 사전적 의미는 꽃의 수분을 제거하고 눌러 말린 평면적 장식의 꽃 예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꽃으로 변신하여 여시, 즉 여우 한 마리로 환생하고 싶어합니다. 여시 떨 생각에 말입니다. 숲이 되고, 레이스 컵 받침 의자가 되고, 정물화로 앉아 노는 날 여시 한 마리로 환생한 기분이 되니 한 몸으로 도대체 몇 개의 세상을 보는 것입니까?
나는 다시 태어나도
꽃이 된다면
새색시처럼 설레발칠래요.
반야봉 노을보다 서너 걸음 예쁜 발걸음으로
섬진강 여음餘音의 어깨에
풍류 한 가락 메어 보겠지만
쥘부채로 실리면 좀 서운할까 봐 다음엔
팔 폭 병풍 꽃밭
벌님에 나비의 생을 빌고 있어요.
이대로 잠이 들까 봐
다시 피어날 기도를 중얼중얼 외운답니다.
- 「꽃누르미」 후반부
시의 제4연, 새색시처럼 설레발치겠다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가만히 바라보거나 못 본 척하지 않고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잘 버무려 시를 빚어보겠다는 각오가 느껴집니다. 이 시는 선생님께서 “섬진강 여음餘音의 어깨에/ 풍류 한 가락 메어 보겠지만/ 쥘부채에 실리면 좀 서운할까 봐” 다음엔 “팔 폭 병풍 꽃밭/ 벌님에 나비의 생을 빌고” 있으므로 이 시대에 드문 풍류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을 즐길 줄 알고 자연을 벗할 줄 알고 자연을 노래할 줄 아는 분임을 알겠습니다.
이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시인의 아버지 어머니를 뵙도록 하겠습니다.
헛간 벽에 걸려있는
흙냄새 묻어난 낡은 못줄, 솔솔 풀어보면
고된 잠 한 짐 지고 부스스 잠이 깬 아버지
“농사는 잘 지었냐?” 묻는다.
잠자리 곁눈 같은 소몰이꾼 아버지
평생 땀으로 지켜온 회보 논, 강언덕 목화밭
올해도 농악이 울면
오산사 사성암 목어 타고 오시게요.
- 「못줄」 부분
아버지의 석방렴은
욕심부릴 것도 덜할 것도 없었다.
주는 대로 거둠이 다함이다.
큰 고깃배에 눈 돌리지 않는 어부였다.
반달 같은 반 마지기 바다를 사랑하고 아끼셨던 아버지
통증이 자라나는 무릎 나무 이끌고 나가
조차潮差를 해독하며 삶을 건져 올렸다.
- 「아버지의 바다」 부분
아버지께선 농사를 지었지만 때가 되면 석방렴石防簾, 돌담을 쌓아 만든 원시적 어로 시설로 조수 차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것을 이용해 물고기도 잡았나 봅니다. 반달 같은 반 마지기 바다를 아끼고 사랑하셨으니 배를 타고 본격적으로 조업에 나가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농한기 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고기를 잡곤 했던 거겠죠. “자연의 은덕을 아신 만큼 겸손했고/ 조그만 나눔으로 이웃과 마음을 데울” 줄 아는 분이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는 성실함과 자연 친화의 인생관을 물려받았고 어머니로부터는 성실함과 예술가적인 끼를 물려받았습니다.
어머니가 따뜻한 옷을 지어 줄 생각으로
밤새도록 물레를 돌렸듯이 나는
어머니의 물레가 되어
한 광주리 시를 잣고 싶다.
만약 시가 위로의 한 끼 밥이 된다면
길거리에 떼 지어 다니는 그늘 같은 사람들 옆으로
가만히 다가가
허기를 씻어 줄 한 그릇 밥이 될 테니까
아니 밥이 아니더라도
호주머니 속 조약돌 같은 장난감이
되어 줄 거야 손난로가 될 거야
- 「사랑 잣을 물레 생각」 부분
어머니가 밤새도록 물레를 돌렸듯이 김일곤 시인께선 지금 위로의 한 끼 밥인 시를 써 그늘 같은 사람들의 허기를 씻어 주고 계십니다. 밥이 아니더라도 호주머니 속 조약돌 같은 장난감이, 손난로가 되어 줄 거라고 했습니다. 아아, 감동의 물살이 가슴을 적십니다. 엄마를 꼭 빼닮은 누나 얘기도 감동적입니다.
위뜸 살던 점순 누나
지 엄마 세월을 복사한 달이었다.
술지게미 먹고 학교에 간 날
반나절이나 취했다는 그녀
꽃처럼 커서
한 동네 아래 뜸으로 시집을 가더니
지 엄마, 달을 닮아 갔다.
세상 어머니들이 그랬듯이
혈육 간에 웃음꽃 피우고 사랑을 가꾸며
엄마 노릇을 했다.
2인분의 생을 산 1인분처럼
엄마 그림자까지 빼닮았다.
풍문에 들리는 미문만 듣다가
고향에 간 날
누나 마음, 절반을 몰래 접어 왔다.
간혹 달을 바라보는 날은
세상에서 가장 둥근 마음 한 소쿠리
담아 오곤 한다.
- 「데칼코마니」 전문
그대는 아버지를 빼닮았으니 부전자전인데 어머니와 누나는 모전여전이로군요. 어머니께서 언제 돌아가셨는지 모르겠는데 어머니 사후에 “엄마 그림자까지 빼닮은” 누나를 보면서 어머니 생각을 하곤 했었나 봅니다. 누나는 지금도 잘 계신지요? 누나는 “세상 어머니들이 그랬듯이/ 혈육 간에 웃음꽃 피우고 사랑을 가꾸며/ 엄마 노릇을” 잘하셨으니 그대 집안의 보름달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밝게 비추는 존재, 그 누나 같은 어머니들이 계셔서 우리는 세파를 헤치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보면서 시상을 떠올린 적이 있었지요? 그 시를 언급해볼까 합니다.
목련꽃 눈부신 오후
아이들이 운동장에 협동화를 그린다.
날랜 아이가 윤곽을 그려나가면
또 어떤 아이는 세밀한 부분을 그리고
또 어떤 아이들은 그 선 위에
백회 옷을 입혀 나갔다.
도드라진 그림을 자랑하는 재주와
꼬꼽한 흙알을 밀어 올리는 선의 예술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봄을 자랑하는 나무처럼 푸른 아이들이
꿈을 싣고 오대양 육대주를 출항할 배처럼 보였다.
- 「삶의 바다로 출항하는 시」 전반부
아이들이 세계를 무대로 하여 꿈을 펼쳐 나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비좁은 한국에서 아웅다웅 다투지 말고 봄을 자랑하는 저 나무들처럼 푸른 아이들이 꿈을 싣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기를 축원하고 계시네요.
부두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뱃머리에 태극기가 선명하다.
출항의 뱃고동 소리가 길게 울었다.
나무막대기는 붓이 되고 백회는 물감이 되는
동심들이 펼쳐놓은 꿈 잔치
다듬잇살같이 여물어 갈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될 것이다.
꿈을 실은 수만 톤의 배
거센 파도 힘차게 헤쳐 갈 것이다.
- 「삶의 바다로 출항하는 시」 후반부
그 아이들 중에는 시인도 나올 것이고 화가도 나올 것입니다. “꿈을 실은 수만 톤의 배/ 거센 파도 힘차게 헤쳐 갈” 테지요. 세계에 이름을 떨친 한강 소설가와 박수근·이응로·천경자·이중섭·김창열 같은 화가를 키워낸 사람은 초중고의 선생님이 아니었을까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학교 운동장을 떠났지만 이제 김일곤 선생님은 자신의 시세계를 펼쳐 보여주고 계십니다. 삶의 바다로 출항한 이는 어린 제자가 아니라 김일곤 선생님 자신이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선생님의 또 좀 다른 시세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만장이 적막을 뒤흔든다.
세 들어 살던 딱따구리
구상의 백골을 촛대처럼 세워놓고
온 산골 떠나갈 듯 곡을 한다.
무덤 앞에
벽소령 청풍 한 잔 따라놓고
장터목 솜사탕 안주 한 봉지 올리니
연하천 물소리 안주 집어 든다.
하얀 바람꽃 한 송이 향불을 사르고
울컥울컥 절을 한다.
천왕봉 천문天門을 걸어 잠근
구상나무 삼절은 말이 없고
묘지를 흔드는 한 모라기 바람이
풀잎 어깨를 들썩인다.
한 채씩의 적막을 짓고
죽어서도 천년을 견디어야 할 구상의 날들을
떠올리다 산길을 내려온다.
구상나무는 비구상이 되어
산도깨비처럼 서 있다.
- 「구상나무 기억제」 전문
구상나무라고 있지요.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교목으로 모양이 아름다워 관상수로 좋고 목재는 재질이 훌륭해 가구재 및 건축재 등으로 사용되고 있지요. 그런데 이 시는 한국형 나무인 구상나무의 외양을 예찬하는 시가 아니네요. 묘지에 갔더니 구상나무가 묵묵히 배례를 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 관 속에 안치되어 있는데 무덤 앞에 벽소령 청풍 한 잔 따라놓고 장터목 솜사탕 안주 한 봉지 올리니 참 허무하고 허망합니다. 연하천 물소리 안주를 집어 든다는 표현도 그렇고, 具象과 非具象 즉 추상으로 나눈 마지막 연도 절창입니다. “구상나무는 비구상이 되어/ 산도깨비처럼 서” 있으니 선생님의 구상나무 기억제는 비애를 넘어 비극으로 완성됩니다. 도대체 누가 세상을 떴는지 궁금합니다. 가족입니까 첫사랑입니까. 이번에는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생선의 죽음을 다룬 시를 한 번 보겠습니다.
붉은 도미 한 마리
손가락 총 맞고 쓰러졌다.
한 뼘 길이의 생존을 늘려 보기 위해
수족관 바닥에 엎드려 보지만
한 번의 파란波瀾이 고요를 뒤집고 간다.
강태공 영웅담이 오고 가다 멎고
둥근 백자 위에
천사채 분묘 한기 서쪽으로 기운다.
소주 맛을 어찌 알까마는
술자리 앞에 조용히 누운 그녀
천명이 다한 눈치다.
송별연 자리
다듬잇살 같은 꽃잎들 한 잎 한 잎 떠나고
순장殉葬의 길 가는
벚꽃 한 가지 선득선득하다.
그제야
엄지척 세우는 주인장
화대를 챙긴다.
- 「순장」 전문
붉은 몸의 도미 한 마리를 술자리 앞에 조용히 누운 그녀로 표현했습니다. 손가락질에 선택된 수족관 속의 도미라 어쩔 수 없이 식탁에 올라와야 하지요. 순장은 왕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살아 있는 신하나 종을 함께 묻는 고약한 옛 풍습인데 이 시에서는 도미가 신하나 종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순장의 대상이 된 불쌍한 도미, 주인은 잘 골랐다고 엄지척을 세우니 참 비정한 세상입니다. 산낙지도 그렇고 불쌍한 어류가 어디 한두 마리입니까. 이제 농사일지를 한 번 펼쳐볼까요?
푸른 서슬을 따라 내려가/ 둥근 세상 밑을 만져보면/ 천하를 휘어잡을 듯 땅바닥 불끈 끌어안은 양파/ 간절함이 매운 경계를 선다.// 세상 밑은 가볍고/ 거들먹거리는 이도 많은데/ 땅바닥 기면서도 밑 잘 가꾸었다.// 감자 밑 풍경을 달아보고/ 마늘 밑이 익은 데까지 걸린 거리 재어보고/ 뒤꿈치 높은 땅콩 철학 한 대목 밑도 생각해 보고/ 자작나무 한 땀 한 땀 가꾸어서/ 천왕봉 뻐꾹새 잘 깎아 파는/ 목각 새 공방, 공 서방 밑도 만난다.// 위를 탐하고 좋아했으나/ 텃밭을 만나고 자연에 눈 풍경 돌리면서/ 밑쪽으로 기울었다.// 세상 반찬 든든한 밑을 지켜주는/ 질긴 근성을 좋아한다./ 둥글고 푸른 서슬을 못내 흠모한다.
- 「밑의 무게 달기」 전문
밑은 땅이고 위는 지상이겠지요. 뿌리는 땅의 수분과 양분을 빨아들이므로 양파, 감자, 마늘, 땅콩 할 것 없이 잘 먹으려면 밑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위를 탐하고 좋아하면 수확이 없고 봉변당하기 십상이지요. 세상의 반찬을 만드는 든든한 밑을 지켜주는 질긴 근성을 좋아하신다니 요즈음 농사를 짓고 계시나 봅니다. 정년퇴직 후 농사에 취미를 붙인 내력이 다음 시에 더욱 자세하게 나옵니다.
정년퇴직은 뜬구름 놀이터였다.
하품이 몰려올 때면 나는
흰 구름 역 2번 출구로 나가
극락강 슬하에 하늘 텃밭을 가꾸었다.
드림 흥정하듯 허공의 이랑에 씨앗을 붓고
해와 바람과 별과 농사를 지었다.
욕망의 풀은 강물이 매고
무료의 풀은 흰 구름이 매고 갔다.
소출도 없는 농사였다.
바람의 신발 한 켤레가
다 닳은 후에야
인생 팔레트에 유채색을 채운다.
흰 구름 역 2번 출구로 나갈 때면 언제나
나를 맞아 주는 제2의 인생 텃밭
흙 속에 호미 넣고 흙냄새 맡으며
뒷귀 풍성한 텃밭을 가꾼다.
오이꽃 선반을 놓고, 깻잎을 따고
저문 저녁 씨감자 눈을 캐는
인생 텃밭 몇 평
- 「흰 구름 역 2번 출구」 전문
소출도 크게 없는 농사이니 심심파적인 게지요. 소일삼아 제2의 인생 텃밭을 가꾸니 자연이 친구요 오이와 깻잎, 감자가 자식입니다. 까불이 아이들, 눈치 빠른 선생님들, 불만 많은 학부형들을 매일 만나 뭐라 뭐라 말을 해야 했는데 이제는 자연이 선생님의 말귀를 알아듣겠네요. 저는 도시에서 자라 농촌 체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년퇴직 이후에 할 일이 없어서 벌써 걱정인데 선생님을 뵙고 조언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매일 학교에 갈 때는 산천의 초록 빛깔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텐데 지금은 자연의 품에 안겨 귀거래사를 쓰고 계시니 마냥 부럽습니다.
자기 한 몸 앉고 설 자리라면
초록을 입고 바르면서
저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축제를 연다.
아마도 나무의 정령인지
그에게서 생명의 기운을 얻는다.
기도처럼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 반긴다.
땅에서도 바위틈에서도
콘크리트 벽에서도
생명의 깃발을 흔들 때면 화양연화花樣年華다.
간이역 측백나무 울타리
어떤 모서리도 근심도 걸어두지 않는 곳
거미가 지은 집 처마에
아침 햇살이 묻은 이슬이 뽐내고
누가 놓고 갔는지
초록 향수병이 걸려있다.
나무에 기대는 날이면 저 초록들
내가 가지기에는
너무나 찬란한 빛이다.
- 「초록은 모서리가 없다」 전문
우아, 정말 자연이 놀랍습니다. 어떤 화가보다도 더 잘 색깔을 선택하고 농담濃淡을 잘 조율하고 있습니다. 나무의 생명력과 꽃의 기력이 온 세상의 색깔과 냄새를 바꿔놓고 있습니다. 보도블록 사이에서도 벽의 틈새에서도 초록색을 띤 것들이 고개를 내밉니다. 그것들이 생명의 깃발을 흔들 때면 화양연화花樣年華지요. 나무가 하는 일 중에는 산소를 내뿜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초록 향수병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산소뿐만이 아니라 신선한 향기를 우리들에게 제공합니다. 그러니 올해 연이어 일어난 산불 뉴스를 접하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자연이 선물한 초록빛을 “내가 가지기에는/ 너무나 찬란한 빛”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이 찬란한 빛을 노래하는 이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번에 출간하는 제3시집이 생의 마지막 시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 막 항구를 떠났으니 제4시집, 제5시집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는 그 성실성을 바탕으로 꾸준히 쓰고 펴내기를 바랍니다. 특히 남도의 서정과 가락을 잘 잇고 더욱 발전시키는 일에 혼신의 열정을 불태우기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빌며, 선생님께 올리는 편지 여기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2025년 5월 5일
이승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