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더딘 걸음이긴 해도 감옥의 인권개선에 의미 있는 법원 판결과 헌법재판소 결정을 끌어낸 주체는 바로 수용자들이었다. 인권을 안다는 것은 스스로 인간다운 삶의 주체가 된다는 뜻이다. 이 책이 수용자들이 감옥 내의 삶을 규정짓는 법현실을 직시하고 부당한 인권침해의 문제에 스스로 맞서 해결하는 주체적 삶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 이호중(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간의 존엄은 감옥 안에서도 유효하다
“범죄자의 인권이 피해자보다 더 중요하단 말인가?”
강력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뉴스 기사나 온라인 댓글에서 이와 같은 반문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는 피해자의 고통을 부정하거나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절절한 감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죄를 지은 이들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최소한의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는 것, 이 둘은 결코 충돌하거나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잘못된 행위의 대가를 치르는 이들이 모인 감옥이라는 공간을 따돌림과 고통의 공간이 아닌 교화와 재사회화의 공간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가장 그늘진 곳에까지 인권의 햇볕이 스며드는 사회를 이뤄냄으로써, 궁극적으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이 다른 누군가에게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는 내일을 희망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권리는 상황이나 지위에 따라 부여되는 특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권리’라는 전제를 다시 확인하는 데서부터 모든 인권 보장의 논의는 출발해야 한다.
감옥은 사회의 인권 수준을 비추는 거울
감옥은 사회로부터 가장 단절된 공간이자, 가장 취약한 이들이 밀집한 장소이다. 가난하고 병들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이 감옥 문을 더 자주 드나들게 되는 현실은 통계와 체험이 말해주는 사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감옥의 현실은 감옥 밖의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다. 다시 말해, 감옥의 인권 수준은 사회 전체의 인권 감수성의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옥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는 단지 물리적 폭력이나 자의적인 징벌에만 그치지 않는다. 의료 접근의 제한, 보호장비 사용의 남용, 접견·편지·분류처우 과정에서의 불투명한 행정, 심지어 일상적인 언어와 태도에서 나타나는 비인격적 대우까지-이는 구조화된 인권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수용자는 인터넷조차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둘러싼 규정이나 법적 근거에 접근할 수조차 없다.
이러한 폐쇄성과 고립성은 수용자가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이를 행사할 수 없게 만들며, 이로 인해 감옥은 인권의 불모지로 남는다. 그렇기에 감옥에서의 인권을 말하는 것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권리의 가능성을 회복하자는 요청이자, 법치주의의 가장 기본 단위를 확인하자는 실천이다.
스스로 권리를 찾는 ‘법률적 자력갱생’의 출발점
『수용자를 위한 감옥법령집』 제3판은 바로 그런 배경에서 기획되었다. 수용자가 자신의 처우에 근거가 되는 법령을 직접 읽고, 해석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존엄한 존재로 여기는 ‘주체적 권리 행사’의 출발점이다.
이번 제3판에는 2025년 4월 24일 기준으로 개정된 법률, 시행령, 훈령, 예규 등을 총망라한 40건의 규범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국제인권규범부터 헌법, 형의 집행에 관한 법률, 교도관 직무규칙, 분류처우와 의료지침에 이르기까지, 수용자의 일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된다. 특히 5부 ‘권리구제’에서는 정보공개청구,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고소·고발, 국가배상청구, 행정소송, 헌법소원에 관한 구체적인 구제 절차와 판례까지 담아, 실질적인 법적 대응력을 높이고자 했다.
법을 알지 못하면, 억울함을 감내하거나 침묵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법령을 숙지하고, 자신의 권리를 근거를 들어 주장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억울함을 넘어 변화의 시작이 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변화를 위해 존재한다.
감옥 밖에서, 감옥 안을 생각하는 사람들
물론 이 책은 수용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교도관, 법조인, 인권활동가, 그리고 교정행정 정책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이 책은 유용한 참고자료가 된다. 수용자의 권리를 명확하게 인식해 제도적 근거에 따라 행동하는 교정시설의 운영은 갈등을 줄이고, 행정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높인다. 수용자와 교도관 모두에게 이 책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소통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책이 법무부가 아닌 민간 인권단체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국가가 감당해야 할 역할의 공백을 시민사회가 메우고 있다는 현실을 다시금 드러낸다. “법무부가 만들어야 했을 책”이라는 일각의 평가에는 이 책의 존재 이유가 분명히 담겨 있다.
인권의 보루, 그리고 희망의 시작
이번 제3판은 감옥이라는 가장 폐쇄된 공간에서조차 인권을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지금도 전국의 구치소·교도소에서는 억울함을 느끼고, 침묵 속에 고통받는 수많은 수용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말할 수 있는 언어이고, 들을 수 있는 근거이며, 싸울 수 있는 도구이다.
『수용자를 위한 감옥법령집』은 바로 그 언어이며, 근거이며, 도구가 된다. 이것은 단순한 법령 모음집이 아니다. 이것은 권리를 지키는 최소한의 무기이고,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선언이며, 가장 낮은 곳에서 인권을 회복하려는 작지만 단단한 실천이다.
우리는 믿는다. 가장 고립된 공간에서 권리를 되찾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이 사회의 인권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