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에서 피어나는 따스한 문장들 - 구추영 수필집 『아버지의 하늘』
누군가의 글에는 삶의 향기가 배어 있고, 그 향기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구추영 수필가의 수필집 『아버지의 하늘』은 그런 글이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을, 시간의 결을, 그리고 마음의 여백을 마주하게 된다.
이 수필집은 단순한 이야기의 나열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교직에 몸담아 순수한 아이들의 글을 통해 치유를 경험했던 저자는, 마치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듯 삶의 장면들을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백일장에서의 차상 수상’이라는 한 조각 기억에서 시작된 글쓰기는, 직장과 가정, 부모와 자식,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자라나 이제는 첫 수필집이라는 이름으로 독자 앞에 선다. 저자는 겸손하게 ‘풋내나는 물김치 맛’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글들은 오히려 담백한 깊이를 간직하고 있다.
책은 네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함께 그리는 그림」에서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일상 속 작고 소박한 행복들을 그려낸다. ‘만 원의 행복’이라는 글에서는 적은 금액이 주는 기쁨이, ‘딸의 런던 탈출기’에서는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가족의 애틋함이 담긴다. 독자는 어느새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자신만의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2부의 제목이기도 한 「아버지의 하늘」은 이 책의 정서를 대표하는 수필이자,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이다. 저자는 아버지를 기억하며, 그 하늘을 올려다보는 마음으로 삶을 되짚는다. ‘바나나에 대한 추억’, ‘못생긴 고구마의 매력’ 같은 수필들은 단순한 음식 이야기를 넘어, 세대 간의 정서와 가족 간의 따뜻한 연결을 이야기한다. 이 부는 독자에게 가장 잊기 어려운 감정의 여운을 남긴다.
3부 「미워할 수 없는 동반자」에서는 삶이라는 여정을 함께하는 존재들에 관해 이야기가 담겨 있다. 때론 추억이 되고, 때론 짐이 되기도 하는 것들 - ‘영영 버리지 못하는 물건’, ‘족쇄’, ‘로또’ 같은 수필에서 저자는 삶의 아이러니를 웃음과 뭉클함으로 풀어낸다. 그 속엔 모든 인간이 안고 살아가는 고단함과 희망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4부 「내 사랑, 양산」에서는 저자가 살아가는 공간, 그리고 그곳에 얽힌 인연과 추억이 펼쳐진다. 양산이라는 지역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저자의 정체성과 감성을 키워낸 뿌리이다. ‘섬 집 아기’, ‘첫 제자’, ‘통도사 극락암 청동 반자’에 이르기까지, 공간은 사람과 시간의 무늬로 채색된다. 특히 교육자로서의 체험이 깃든 글들은 오랜 세월 교사로 살아온 저자의 삶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진심’이다. 특별하거나 거창한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과 그것을 담담히 풀어낸 문장은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운다. 바쁜 삶 속에서 무심코 흘려보낸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고, 그 안에서 ‘함께 있음’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책을 내며 쓴 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의 게으름을 다정하게 타이르며 “이 정도라도 잘했노라고 토닥토닥해 본다”라고 말한다. 그 겸손한 고백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 각자가 가진 작고 소중한 순간들을, 조금은 더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아버지의 하늘』은 구추영 수필가가 십여 년 동안 품고 살아온 이야기들이 봄 햇살처럼 펼쳐진 결과물이다. 아직도 스스로 “물김치”라 부르며 수줍어하는 저자의 첫걸음은,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깊은 울림으로 다가갈 것이다. 그 한 걸음이 있기에, 또 누군가는 용기를 얻고, 한 줄의 글로부터 자신의 삶을 다시 쓰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삶의 따뜻한 문장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조용히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