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그녀가 바라보는 동안
빛이 움직이고 어둠이 움직였다.
그녀는 누운 채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행복했다. 완전히 행복했다.
시간이 멈췄다.”
행복에서 기인한 기억의 미학, 말하지 못한 감정의 잔향을 맡는 순간
버지니아 울프는 일평생 정원과 자연, 내면의 흐름을 따라가는 감각적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모두의 행복-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정원을 걷다』는 울프의 자전적 회고와 함께 그가 문학 속에서 풀어낸 정원, 풍경, 자연에 대한 섬세한 정서를 엮은 산문집이다. 삶과 정원이 교차하는 상상적 풍경 속에서 『모두의 행복』은 ‘행복’이라는 단어에 깃든 투명하고도 찬란한 순간들을 비춘다. 울프의 기억은 파도의 율동처럼 되살아난다. 콘월의 백사장, 켄싱턴 가든스의 벚꽃, 애쉬햄 하우스의 사과나무 아래서 들었던 까마귀의 울음. 그 밀려드는 이미지에서 울프는 자신이 경험한 감정과 공간을 비선형적으로 구현하며, “존재보다 비존재가 더 많은 하루하루” 속에서 살아 있는 감정의 빛나는 파편을 건져 올린다. “삶의 밑바탕이 되는 기억”과 “형용할 수 없는 황홀경”을 초현실적으로 응축한 언어를 통해, 우리는 일상의 잠잠한 위대함과 자연의 내면적 진실을 담담히 응시하는 울프의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모두의 행복』은 우리가 잊고 지낸 기억의 미학, 혹은 말하지 못한 감정의 잔향을 자연의 품속에서 되짚어보게 한다. 녹음이 만개한 정원과 존재의 고요 속에서 울프는 미미하게 존재하는 것들에 만화경을 투사하듯 아름답고도 기이한 무늬로 형상화한다. 그의 기억과 환상은 산책하고 사유하는 우리에게 『모두의 행복』을 하나의 정원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울프의 정원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또 모두의 행복을 한 줌의 풀처럼 손에 그러쥘 것이다.
“과거로부터 남은 모든 것은
이 남자들과 여자들,
나무 아래 누워 있는 이 유령들……
각자의 행복,
각자의 현실이 아닐까요?”
과거의 유령 같은 순간들을 현재로 불러오는 기억의 예술
『모두의 행복』은 단순히 정원과 자연에 대한 회고가 아니다. 그것은 사라진 시간의 무늬를 되살리는 기억의 예술이다. 울프는 잊힌 감각들, 이를테면 바람이 커튼을 밀어 올릴 때의 기척, 벌이 윙윙대는 여름 오후, 사과나무 아래 어린 자아가 느꼈던 이상한 기쁨을 저마다의 색채로 엮어낸 조각보 같은 정서적 장면으로 구성해낸다. 이 정서는 과거의 유령 같은 순간들을 현재로 불러오기도 하고, 문학 작품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실존의 한 장면으로 정착시킨다. 『모두의 행복』에 발췌된 울프의 일기와 편지글에는 제1, 2차 세계대전 당시 불안정한 유럽의 역사 속에서 울려 퍼지던 포탄 소리와 불에 타버린 건초 더미 등 전쟁의 기척과 그로 인한 일상의 불안이 은근하게 흘러들어 있다. “공습경보 해제. 그리고 다시 사이렌이 울린다. 〔…〕 마치 바로 우리 위에서 누군가가 톱질을 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우리는 배를 바닥에 딱 붙이고 머리 뒤에 손을 대고 엎드렸다. 〔…〕 폭탄에 오두막의 유리창들이 덜컹거렸다. 오두막이 무너질까?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박살 난다. 나는 무無에 대해 생각한 것 같다.” 울프는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정원의 작은 움직임에서 삶의 감각을 붙잡고자 했다. 전쟁이라는 불확실성과 사회 전체를 짓누르는 재난에도 울프는 포탄 자국이 패인 산책로와 흔들리는 집 안에 스며드는 햇빛에 집중하며 ‘행복’이라는 이름의 가능성을 좇는다. 삶을 감당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감정을 나누었던 울프는 사라진 것을 불러오고, 묻혀 있던 감정을 끌어올리며, 흐릿해진 기억에 숨을 불어넣는다. 『모두의 행복』은 격양된 감정의 순간들이 우리 내면에 하나의 정원을 빚어낸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 정원은 완전하지 않고 어딘가 불완전하게 자라고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윽하고 진실하다. 이 작품은 잃어버렸던 감정과 시간을 다시 꺼내어 곁에 두게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문학적 초대이다.
나의 행복이 화강암 덩어리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
(그런데 난 은유를 너무 많이 사용해) 같아.
(그리고 이제, 그것들이 화강암 덩어리라면 지금 나의 행복은
어렸을 때 콘월에서 꺾었던 작은 장밋빛 식물인 샘파이어에 비유할 수 있어.)
-버지니아 울프가 비타 색빌웨스트에게 보낸 편지 中
울프의 정원에서 펼쳐지는 한 폭의 신비로운 시적 지도
『모두의 행복』은 다섯 장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감각이 어떻게 공간과 풍경 속에 스며들었는지를 보여준다. 1장은 유년 시절을 다룬다. 세인트 아이브스의 여름 별장에서 자연과 접촉하며 세계를 인식한 울프는 첫 기억을 중심으로 문학의 정서적 뿌리를 형성한다. 2장은 평생 가장 애정을 가졌던 집, 몽크스 하우스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서식스에 위치한 이곳에서 울프는 후기 대표작 대다수를 썼으며 이곳의 정원은 존재의 리듬을 되찾게 해준 시적 성소가 된다. 3장은 울프가 태어난 도시 런던에 관한 장면들이다. 켄싱턴 가든스의 벚꽃, 보도 위로 흐르는 인파, 도심의 그림자와 빛은 울프에게 삶의 역설과 사유의 전환점을 안겨준다. 4장에서는 문학 속 풍경들이 등장한다.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올랜도』 『파도』 등에서 자연은 정서적 장면이 되고 풍경은 인물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자 감정을 담는 그릇이 된다. 5장은 유럽 각지를 여행한 울프의 여정으로 구성된다. 스위스의 호숫가, 이탈리아의 도시들, 프랑스 시골의 이른 아침 등 울프는 낯선 공간에서 자신을 더욱 또렷이 인식하며, 제 언어의 결로 여행자의 경험을 채운다. 이처럼 『모두의 행복』은 시간과 장소, 기억과 풍경의 등고선을 따라 울프라는 존재가 어떻게 세상을 감각하고 기억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폭의 시적 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