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조각들로 창조한 초현실의 세계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하현주의 사진은 개별적인 이미지의 단편들이 모여 만들어낸 환상, 가상의 세계다. 이 세계는 이미 존재하는 가시적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그 경계를 넘어 낯설고 기이한 형상을 드러낸다. 하현주의 ‘메이킹 포토’는 수많은 디지털 사진들을 아날로그적으로 재구성하고 재배치하는 전략을 통해 창조된 작업이다.
작가는 자신의 방대한 이미지 데이터 아카이브에서 특정 이미지를 선택해 배치한 뒤, 또 다른 이미지를 불러와 새로운 맥락을 더하며 시간을 연장해간다. 이 시간은 이미지가 이미지를 부르고, 한 이미지가 또 다른 이미지에 이끌려 이야기를 확장해가는 긴 여정의 시간이다. 동시에, 이미지를 하나씩 연결하고 결합해가는 노동의 시간이며, 이미지 간 접속을 통해 새로운 사건과 형상을 탄생 시키는 창조의 과정이다. 이 연결과 이어짐의 과정은 대부분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하며, 초현실적 세계를 구축하는 핵심 동력이 된다.
상상력은 무(無)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내재한 것들, 혹은 선험적인 코드들에서 불가 피하게 끌어와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상상력조차 다분히 클리셰적인 이미지들로 무장되어 있다. 하현주의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클리셰를 넘어 새로운 이미지를 출현시키는 데 있다. 즉,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깨고, ‘스투디움(studium)’의 익숙함을 벗어나 상상력 을 통해 독창적이고도 초현실적인 세계를 창조하는 과정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