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막상 인문학 책을 펼치면 어렵다. 자신이 공부만큼은 좀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인문고전을 읽을라치면 어려운 단어에 백기를 든다. 그래서 대부분 쉬운 해설서에 만족할 뿐, 혼자 힘으로는 고전을 읽지 못한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출판되었다. 독자가 머리가 나빠서 고전을 읽지 못하는 게 아니다. 독자가 읽는 그 단어가 보통의 우리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실태를 섬세하게 보여주면서, 혼자 힘으로 인문학에 입문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
이 책은 전면 개정판이다. 초판과 비교하면 많은 변화가 있다. 주요 철학 용어에 대한 분석이 모두 2차원 좌표 평면으로 시각화되었다. 또한 accidents, canon, maxim, anticipation 등의 단어에 대한 분석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세대 사이를 방황하는 언어〉와 〈독일어 문제〉라는 제목의 글이 새롭게 추가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자의 글에서 저자는 과거의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 탓에 다음 세대에 더 좋은 번역어를 물려줘야 한다는 책무를 소홀히 했다고 반성하면서, sensitivity, understanding, perception, apperception, a priori 번역에 대한 입장을 변경한다. 각각 ‘감성’, ‘지성’, ‘감지’, ‘자의식’, ‘선천적’에서 ‘감수성’, ‘지식’, ‘포착’, ‘지각’, ‘경험 무관한’으로 변경했다.
〈독일어 문제〉에서는 한국의 철학 번역의 문제는 출발 언어(독일어)를 몰라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도착 언어(한국어)에 대한 무지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는 재반박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이번 전면 개정판에 추가된 부록은 독자에게 읽는 기쁨을 선물해 줄 것이다. 〈번역어 분석 작업 일람〉은이 책에서 분석된 40개의 번역어를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했다. 〈주요 철학 용어 풀이〉는 기존 철학 용어를 평범한 우리말로 해설함으로써 그 의미를 선명하게 나타냈다. 이 두 개의 부록을 읽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철학 책을 더 쉽게 읽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얻는다. 또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A판 머리말 전문 번역이 수록되어 있다. 독자는 평범한 우리말로 철학을 번역했을 때 드러나는 분명한 의미의 세계를 체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