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애를 담은 아가페 사랑의 노래
김성구 박사
시인, 국제문학 발행인
영국의 T.S. 엘리엇도 1948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으로, 그의 대표작 황무지 (The Waste Land)는 사랑과 인간 관계의 복잡성을 다룬 시로 1922년에 발표된 현대시의 대표작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황폐한 유럽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 존재와 관계의 복잡성을 탐구한 작품이다. T.S. 엘리엇은 다양한 문학적 기법과 상징을 통해 현대 문명의 붕괴와 인간의 내적 갈등을 표현하였다.
T.S. 엘리엇의 작품에서 인간애와 아가페(기독교적 사랑)를 탐구한 대표적인 예는 그의 후기 시집 "사례 모임" (Four Quartets)이다. 이 작품은 시간, 영원성, 그리고 신앙의 문제를 중심으로 인간과 신의 관계를 깊이 탐구하면서 기독교적 사랑(아가페)을 통해 인간 존재의 구원과 영적 재생 가능성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Four Quartets의 한 부분에서는 인간의 한계와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신의 사랑과 은총을 통해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시는 단순히 개인적 사랑을 넘어, 신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무조건 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강조한다.
또한, 엘리엇의 다른 작품인 The Family Reunion에서도 인간관계와 아가페적 사랑의 상호작용을 다루며, 인간의 내적 변화(메타노이아)를 통해 진정한 사랑과 화해를 이루는 과정을 묘사한다.
엘리엇의 이러한 작품들은 단순히 사랑의 감정을 넘어, 사랑의 본질과 영적 의미를 탐구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이 시대에 인간관계와 아가페적 사랑을 시로 펼쳐가는 시인이 있다. 청음 김보현 시인의 세계는 사랑으로 펼쳐졌다.
청음 김보현 시인의 열 번째 시집 『여행하는 사랑』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앙의 감성이 어우러진 작품집이다. 시인은 목회자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사유를 하나로 엮어, 인류애적이고 아가페적인 사랑을 시의 언어로 형상화한다. 이 시집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는 삶의 계절과 감정의 흐름, 신앙의 여정,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아가페 사랑으로 인류애를 아우르는 105편의 시문학을 펼쳐 놓았다.
1. 꺼지지 않는 사랑
사랑의 지속성과 존재 이유,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타인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다. "그대를 만남으로", "꿈꾸는 감격" 등에서 볼 수 있듯 사랑은 삶의 원동력이 된다.
사랑의 불이 꺼지게 되면
의욕도 소멸하여
만사가 귀찮아지고 발병도 된다
태양을 볼 수 있다면,
남은 에너지는 있는 것이기에
피워야 할 사랑을 위해
영혼의 안테나를 다시 세우자.
- 「꺼지지 않는 사랑」 중에서 -
김보현 시인은 인류의 존재적 삶의 가치를 ‘사랑’에 두었다. 사랑이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사랑은 어디서 오는가? 시인은 꺼져가는 사랑의 불꽃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우리는 사랑의 주파수를 맞추고 ‘영혼의 안테나를 다시 세우자’. 고 외치고 있다.
2. 느낌표 인생
시인 김보현은 삶의 반짝이는 순간들, 내면의 목소리, 존재의 가치에 대해 감각적으로 서술한다. "마음의 강", "무엇으로 사는가"는 인생의 본질을 묻는다.
태어날 때부터 울음을 터트려서일까?
......................
고난의 산과 고해와 같은 강을 넘어
인류는 여기에까지 이르렀고,
그 가운데 내가 있다
................
큰마음 품으면 뭐든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감사인가!
내일도 태양은 떠오른다.
- 「느낌표 인생」 중에서
3. 봄의 왈츠
회복과 치유의 이미지, 봄의 생명력과 같이 사랑이 일으키는 내적 부활과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잠자는 온 생명에게
더 이상 누워 있을 때가 아님을 알리는
새 기운을 힘껏 뿜는 봄기운,
땅속에서도 꿈틀거린다
나뭇가지의 잎새들도 눈을 떠
긴 호흡을 하며
봄이 왔음을 알리려는 채비로
나래 짓을 한다
처녀들 가슴은 벌써
울긋불긋한 옷으로 단장하고
벗을 만날 준비를 끝냈다
동절기를 무사히 지낸 생명들,
다가온 은총으로
축제를 위한 춤은 시작되었다.
- 「봄의 왈츠 」 전문
4. 손 한 번 더 잡으며
시인은 서로 관계의 소중과 인생 말기의 숙연함을 말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온기와 믿음을 노래하고 있다.
특히 "여기까지 왔는데", "인내"에서의 뉘앙스는 성숙한 신앙인의 목소리로 다가온다.
표정은 굳어 있지만
마음만은 아직 더 줄게 있는 듯
손짓을 하며
말을 이어가시는 어르신들,
...............
몸과 마음을 잘 운전하지 못해도
남은 날들 동안,
전해 줄 게 남아 있는 듯
따스한 피가 흐르고 있기에
손 한 번 더 잡는다.
- 「손 한 번 더 잡으며」 중에서
5. 여행하는 사랑
시인은 삶 전체를 사랑의 여정으로 보며, 그 과정에서 생긴 상처, 회복, 그리고 영혼의 자유로움을 강조한다. 이 시집의 표제가 되는 여행하는 사랑을 보자. 인생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여행자인 것이다. 시인은 그 해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줄기차게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주의 사랑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에게 그 사랑을 배반하지 말고 그 사랑을 가슴에 품고 나아가자고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잠시도 머물 수 없어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은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
생명을 살린다
그중에 제일 소중한
사람에게 심어진 사랑은
더 진실하게 하는 신비의 기운으로
영성의 문을 열개하여
온갖 지혜로 인류를 이엇다
그런데도 머물지 못하는 사랑은,
기다리며 준비된 사람에게로
여행하듯 흘러간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 「여행하는 사랑」 전문
김보현 시인의 정신은 진실성과 순전함에 있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으며,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실망 속에서도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시는 설교처럼 교훈적인 메시지로만 끝나려고 하지 않는다. 삶이 있는 체험에서 우러난 고백이며, 영혼 깊숙이에서 길어 올린 시인의 묵상이다. 삶과 신앙이 일치된 시인의 언어는 억지로 꾸며내는 조작적 감동이 아니라 삶에서 우러난 울림인 것이다.
시인이 독자를 향한 바람이 시집에서 전하고자 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희망”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에게, 세상의 부조리와 허위에 지친 이들에게, 시인은 말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그리고 "사랑은 꺼지지 않는다"고. 시인의 바람은 독자가 시를 통해 위로받고, 다시 꿈꾸며, 마음 깊은 곳의 따뜻함을 되찾기를 바라는 데 있다. 그 따뜻함은 곧 신의 사랑이요, 인간을 향한 신앙적 신뢰이다.
그는 세상의 고통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며,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지녔다. ‘정치 장사꾼’과 같은 시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도 품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선한 사회, 공동체의 회복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시인은 겨울 속에서 봄을 노래하고, 이별 속에서 만남을 꿈꾸며,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를 지켜낸다. 이는 곧 시인이 삶을 바라보는 태도이며, 시문학이 나아가야 할 윤리적 길이기도 하다.
김보현 시인의 열 번째 시집 『여행하는 사랑』은 단지 한 시인의 신앙 고백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길 위에서 경험하는 상처와 그리움, 회복과 희망의 이야기이며, 이 시대의 언어로 다시 쓴 시편(Psalm)이다. 김보현 시인의 시는 우리 모두의 삶을 향해 다정하고 조용하게 말을 건넨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여전히 사랑은 꺼지지 않는다.”
문학성과 메시지를 모두 아우르는 이 시집 『여행하는 사랑』은, 한국 현대 시문학에서 보기 드문 투명한 신앙시와 현대시를 통합한 정수로서, 널리 읽히고 기억되어야 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