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가득한 하숙집 주인에서
‘반 고흐 메이커’가 되기까지의 여정
흔히 ‘요’라고 불렸던 요하나 봉어르는 암스테르담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음악과 문학을 중시하는 분위기에서 자란 요는 영국 유학을 다녀온 후 영어 교사로 일하면서 일찍이 직업적인 발판을 다지고자 했다. 이후 20대 중반에 테오 반 고흐를 만나 결혼한 그녀는 프랑스로 이주해 미술의 세계에 진입하지만, 1890년 빈센트 반 고흐의 비극적 죽음 이후 남편인 테오마저 빈센트가 사망한 지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꿈같던 결혼생활도 미술 세계와의 조우도 끝나고 만다. 이제 겨우 스물여덟 살이 된 젊은 미망인 요에게는 큰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갓난아기와 수백 점의 반 고흐 그림, 그리고 형제가 주고받은 수백 통의 편지가 남겨졌다. 기껏해야 2년 남짓한 결혼생활을 한 요로서는 테오와의 짧은 부부의 연을 뒤로하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반 고흐 형제가 남긴 예술적 유산을 관리하고 알리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여긴 듯 남은 평생을 두 명의 빈센트에게 헌신하게 된다. 두 빈센트를 사랑했고, 무엇보다 테오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선택한 일이었다. 그 헌신은 끔찍한 충격이었던 테오의 이른 죽음을 견디고 극복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테오 사망 후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 뷔쉼에 하숙집을 차린 요는 하숙집 경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와중에 전시 기획, 작품 홍보, 편지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반 고흐 알리기에 전념한다. 20세기 초 미술계는 여전히 반 고흐 작품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1905년 요가 기획한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전시는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내며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갈수록 반 고흐의 인지도는 올라갔고 전시 요청이 쇄도했으며, 작품을 구매하려는 문의도 잇따랐다. 당시 작품을 구매하거나 전시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뷔쉼의 하숙집으로 찾아간 이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집 안은 온통 반 고흐 작품으로 가득했고 침실 벽에는 거의 남은 공간이 없었다고 전한다. 고전주의자이자 작곡가인 알폰스 디펜브록은 요의 집을 방문한 후 “집 전체가 빈센트 작품으로 가득했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요는 작품을 직접 관리하면서 네덜란드 외 독일, 파리, 런던 등 유럽 곳곳에서 열리는 반 고흐 전시회를 기획하거나 작품을 대여했고, 그 틈틈이 빈센트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필사하고 번역했다. 오랜 작업 끝에 1914년 네덜란드에서 정식으로 출간된 이 서간집은 대중에게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작품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다양한 판본으로 출간되어 현재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당시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던 문화계 리더십을 발휘하며, 전쟁과 성차별의 한복판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은 요. 그녀의 집념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반 고흐의 예술을 감상하고 향유할 기회를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선구적 여성으로서의 다면적인 삶
반고흐재단이 소장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 책은 요를 ‘반 고흐 메이커’의 공로자이자 전시 기획자, 작품을 판매한 딜러, 반 고흐 형제의 편지를 엮은 출판인, 더 나아가 새로운 여성운동에 긴밀히 참여한 신여성으로 바라보면서 선구적 여성으로서의 다면적인 삶을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저자는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춰 그녀의 생애를 서술한다.
첫째는 문학과 예술을 중시한 가정환경과 타고난 성정에서 비롯된 헌신적 태도다. 저자는 요의 일기부터 회계장부, 서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재구성해 꼼꼼하게 엮는 한편으로, 그녀가 반 고흐의 예술적 유산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홍보했는지를 면밀하게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요의 독립적이고 성실한 성정이 시대적 불합리함 속에서도 천재 화가 반 고흐의 명성을 쌓아올리는 데 근간이자 힘으로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둘째는 영어 교사이자 번역가로서의 요다. 치열한 독서를 통해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함양했던 요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에도 능했다. 여러 여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고 훗날에는 명망 있는 번역가가 되어 소설과 단편 들을 번역했으며, 더 나아가 유력 비평지에 문학 비평을 기고하기도 했다. 번역가로서 요가 평생의 소임으로 끈질기게 매달렸던 일이 있다. 바로 반 고흐 형제가 주고받은 편지를 독일어판과 영어판으로 출간하는 일이었다.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로 쓰인 편지들을 하나하나 읽고 필사하고 정리하고 번역하는 작업은 요가 파킨슨병으로 더이상 펜을 쥘 수 없게 된 말년까지 이어졌으며 종국에는 여러 언어로 출간되어 반 고흐 작품을 이해하는 자료로서 널리 읽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요의 사회참여 활동에도 주목한다. 가정교육 덕분에 일찍이 정의감이 강한 사람으로 자란 요는 사회민주노동당(SDAP)에서 활동하며 여성운동에 참여했고,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지위 향상에 앞장섰다. 이는 그녀가 단지 예술의 조력자가 아니라 당대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한 사상가이자 행동가였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활동은 지금도 네덜란드 사회에서 “귀감이 되는 비범한 여성”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요 반 고흐 봉어르가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여정을 걸었으며, 그 모든 과정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과업을 완수했는지를 세밀하게 기록한다. 책의 제목이 ‘빈센트를 위해’인 것은 그녀 인생의 두 가지 목적을 반영한 것이다. 하나는 이름이 같은 두 사람, 화가 빈센트와 아들 빈센트를 위해서다. 그리고 이 구절 뒤에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또하나의 소리가 있다. “그리고 모두 테오를 위해”. 이 책은 서양미술사에 가장 위대한 이름으로 기억되는 빈센트 반 고흐의 명성을 빚은 숨은 공로자에게 빛을 비추는 첫 책이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남성 지배적인 세상에서 자신의 세상을 가질 수 있었던 여성의 이야기다. 그리하여 “그녀는 영웅적으로 임무를 완수했고, 그 과정을 통해 지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요는 자신이 누구인지 진정으로 알고자 했으나, 결국 그 시간과 여력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녀는 자신을 낮추고 희생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들 빈센트의 어머니로서, 다른 빈센트의 수호자로서, 개인적이고도 폭넓으며 신중하게 살아낼 수 있었다. 책을 쓰고 싶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으나 일기 첫 페이지에 썼듯 “위대하거나 고귀한” 무언가는 이루어낼 수 있었다. 반 고흐의 위대함이 전 세계에서 인정받기까지 요가 한 중요한 역할에 과대평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반 고흐가 문화사에서 영원히 이어질 명예를 얻은 것은 요의 끊임없는 노력과 헌신적인 기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_5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