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자에 대한 오래된 침묵
성(sex)은 오랜 기간 종교와 법에 의해 감시당해왔다. 교회와 국가가 규정한 수많은 성적 죄악과 범죄 목록은 자유주의자들의 긴 투쟁 끝에 대폭 축소되었다. 하지만 혼외자에 대한 논의는 다른 전통들처럼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있다. 선진국에서 결혼제도가 점차 해체되고 혼외자 비중이 나날이 늘어가는 오늘날에도 말이다.
수백수천 년 동안 혼외자들은 재산을 상속받고 유증할 권리, 성직과 정치적 직책을 가질 권리, 법정에 설 권리 등을 박탈당한 채 자선과 원조의 대상으로 남아 있었다. 법적 차별이 아니더라도 유아살해, 유기, 빈곤, 학대 등에 시달리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특히 기독교는 아브라함에게 내쫓긴 혼외자 이스마엘의 이야기를 전례로 삼아 혼외자의 비참한 처지를 정당화해왔다. 이스마엘처럼 “사람 중에 들나귀”같이 되어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는 것이다.
■‘혼외자의 원칙’은 정말 신학적으로 올바를까
“간음을 통해 태어난 자뿐만 아니라 혼인 내에서 태어난 자도
두 번째 아담인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첫 아담의 원죄의 저주 아래 태어난 자일 뿐이다.”
_아우구스티누스
법과 신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 존 위티 주니어는 오늘날 혼외자에 대한 차별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뿌리를 밝혀낸다. 혼외자 차별은 초기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과 무관하며, 이는 가부장과 종교의 권력을 확립하기 위해 성경 구절을 잘못 해석한 결과라는 것이다.
초기 유대교와 기독교 공동체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초기 유대교 랍비들은 혼외자를 ‘유대인 공동체의 완전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였으며, 가정 내에서 고통받는 혼외자들이 법적 차별까지 부담하지 않게 했다. 랍비들은 혼외자의 정의를 축소하고 친자로 인정받는 방법을 마련했으며, 유대법에서 혼외자가 제한받는 유일한 일은 성전에서 결혼 예식을 치를 수 없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이 규정한 엄격한 성도덕은 각종 성적 죄악을 저지른 기독교인을 공동체에서 배척하도록 규정했지만 그 자녀에게 관대했다. 3세기의 교부 키프리아누스는 간음한 자의 자녀들과 어울리기를 거부하는 동료들을 질책했으며,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사람은 사생아”이므로 출생신분은 전혀 상관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불과 수십 년 전까지 체계적으로 유지된 이른바 ‘혼외자의 원칙’은 순수한 신학적 전통이라고 볼 수 없다.
■고대 로마부터 현대 미국까지, 죄를 안고 태어난 아이들의 역사
“혼외자에게 불이익을 부과하는 것은 벌이 아니다.
혹자가 왕의 아들이 아니므로 왕좌를 계승하지 않는 것을
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혼외자가 친생자에게 부여된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벌이 될 수 없다.”
_토마스 아퀴나스
서구의 혼외자법은 고대 로마에서 시작되었다. 공화정 시기부터 발달한 이 법의 목적은 아동에 대한 권한이 아버지에게 있는지 어머니에게 있는지를 판단해 재산을 올바르게 상속하는 것이었다. 혼외자는 어머니에게 양육되어 가부장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했지만 그외에는 친자와 같은 권리를 가졌다.
그런데 4세기 이후 기독교를 받아들인 로마 황제들은 로마의 혼외자법에 기독교 성도덕을 첨가했다. 그 결과 혼외자는 성적 죄악의 영원한 증거가 되었고, 부모의 죄악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신분을 부여받았으며, 도덕적으로 비난받게 됐다. 이 시기 혼외자는 부모에게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고 상속과 직업의 권리를 박탈당했다.
로마법을 이어받은 중세 이후 유럽의 신학자들과 법학자들은 혼외자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친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혼외자부터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혼외자까지 출생을 계급화한 것이다. 계몽주의가 자리 잡은 18세기에는 일부 개혁가의 꾸준한 노력으로 혼외자에 대한 불이익이 대부분 폐지되었지만, 혼외자에게 상속과 유증을 금지하는 법 등은 계속해서 유지됐다. 미국 다수의 주에서 혼외자가 친아버지에게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게 된 것은 1940-70년 사이의 일이다.
■ 진정한 가족관계는 무엇인가
저자 존 위티 주니어는 신학부터 법률 문헌과 판례, 사회제도를 아우르며 혼외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의 기원을 추적한다. 동시에 오늘날 아동의 권리와 복지를 위한 제도의 방향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 더 나은 제도, 더 나은 지원, 더 나은 법적 장치로 혼외자가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단순히 법의 역사를 진술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혼외자의 역사 속에서 억압과 차별이 어떻게 제도화되었고, 도덕과 신의 명령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정당화되었는지를 고발한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개념이 오랫동안 혼외자를 배제하고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오늘날까지도 잔존하는 혼외자 차별이 결코 자연적이고 필연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회와 법이 다른 길을 걸어올 수 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결혼 가정이야말로 아동에게 가장 좋은 장소라고 주장한다. 최근 수십 년간의 연구 결과는 결혼 가정에서 자란 아동이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훌륭한 미혼 부모가 많고, 뛰어난 위탁 가정과 기관이 있지만, 아동 권리를 진정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