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곳에서 나는 일어난다”
불완전한 시 세계를 모험하는
사유와 쓰기의 태동
사유는 경험과 관찰을 동반한다. 대체로 관념적이며 사변적이다. 어떤 사유는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반면, 어떤 사유는 개념과 형식을 통해 이성적 결론을 도출하기도 한다. 김언 시인은 이 둘을 적절하게 조화시킨다. 끊임없이 과거를 소환하면서도 현재를 거침없이 두드린다. 그의 문법은 생존이고 생동이며 하나의 스포츠다.
“물 쓰듯이 쓰라”를 강조하며 사유의 확장과 무질서를 내세우는 그는 산문 중간중간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독자에게, 언어에게, 나에게, 세계에게. 질문의 의도와 의미에 매이지 않고 존재 자체에 초점을 둔다. “마음을 얘기하지 말고 물건을 얘기하라”의 사고로 길바닥의 돌, 담배꽁초, 흘러가는 구름 등 보편의 것들을 다르게 이야기하기. 고착된 언어를 괴롭히고 쥐어짜며 정체불명으로 만들기. 그러면서도 다시 근본과 자연으로 돌아가는 쓰기. 『사유노트』가 전하고자 하는 바다.
이번 산문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는 시와 시 창작에 관한 견해를, 2부는 시의 근원과 존재성을, 3부는 시와 생활을 잇는 쓰기에 대해 말한다. 전체적으로 시를 바탕에 둔 한 예술가의 창작론이자 사변적인 기록이지만, 각 부마다 나와 타인, 언어와 세계를 잇고자 하는 관계성을 내포하고 있다. 시라는 장르에 관한 견해와 조언을 펼치는 것에서 나아가 예술가로서, 시인으로서, 창작인으로서 살펴야 할 자질에 관한 조언을 함께 덧붙인다. “시는 이미지를 보는 작업이면서 결국에는 그것을 문장으로 듣는 작업이다”라는 말을 통해 평소 그가 생활 안과 밖의 것들을 얼마나 관찰하고 주의하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사유와 기록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며 끊임없이 반복되고, 그렇기에 그의 언어는 고집스럽고 실험적이다. 그래서 독자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계속해서 의심하게 하고 도전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실패냐 성공이냐가 아닐 것이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그 길에서 떨어지는 부산물이 중요하다.”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이어지는 글쓰기. 우리는 결국 실패의 부산물을 통해 나만의 고유한 창작 세계를 얻게 된다.
꿈틀거리는 노트 속에서
정체불명의 상태로 선명하게 존재하기
2부부터는 경험적이고 사변적인 이야기가 두드러진다. 의미와 프레임, 배역, 자화상 등의 키워드를 통해 근거리에서 시인 김언의 삶을 좀 더 관찰할 수 있다. 그는 대상의 존재 의미를 통해 나와 세계의 근본을 곱씹으며 “없는 듯이 있다”와 같은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언뜻 말장난처럼 보이는 문장의 반복을 통해 1부에서의 창작을 향한 시선과 세계는 2부에서 더욱 확장되어, 역동성과 활발성을 겸비한 언어로 반복되고 새롭게 만들어진다. 에피소드 중심의 3부는 시와 생활을 잇는, 내면 고백이 담긴 일기로 서술된다. 어릴 적 살았던 동네 이름과 아버지에 관한 기억, 어제 본 구름과 책상에 놓인 가위 등 회고와 묘사 중심의 체험적이고 경험적인 쓰기를 보인다.
1부에서 3부까지, 시로 향하는 여정을 끝마치면서 시인은 책 말머리에 시를 두고 “나에 대해서도, 시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기에, 잘 모르는 채로 튀어나오거나 쏟아지는 말을 자유로운 부산물처럼 거느릴 수밖에 없는 장르”라는 말을 덧붙인다. 시의 불확실성과 까다로움을 얘기하면서도, 시를 붙잡고 늘어졌던 초라한 순간과 무책임하게 방임했던 순간을 관조하며, 시라는 망에 걸린 수많은 불순물을 실패라고 여기지 않기를 재차 강조한다. 편애에서 애증으로,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불완전한 사유와 흠 있는 쓰기. 썼다 지우고 비공개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쓰기의 산물은 곧 한 사람의 고유한 창작 세계가 되고야 만다. 우리는 『사유노트』를 통해 언젠가의 기록을 다시 들추고 싶어질지 모른다. 연쇄적으로 빗발치는 기억과 산발적인 문장들, 그것을 가만두지 않으려는 고약한 심보와 거세게 달려드는 동물적 감각의 고백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