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만드는 것은 팔할이 음식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소설가 김민정은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실상 인간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음식이고 음식이 사람을 키운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재일교포로서 살아가며 그 사실에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싶어 하던 젊은 시절의 작가에게, 한국 음식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강력한 매체였다.
후카자와 우시오 작가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삶의 방식을 강요하던 부모님이 이끄는 가정에서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김치를 좋아해야지!”라든가 “일본에서 살면 스시를 좋아하는 게 당연하지!” 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강요에 넌더리를 내며 성장한다.
‘그냥 나는 나면 안 되는 건가?’ 하는 의문과 반항 속에 사춘기를 보내고, 연애를 하고,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당연한 선을 봐서 결혼을 했다. 엄연한 차별이 존재하던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녀의 중요한 인생 단계마다 함께하며 그녀의 인생이 되었던 음식들을 통해 들려준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늘 확인받게 했던 김치의 존재감, 심장병을 앓던 그녀의 어린 언니가 마지막으로 먹었던 스시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 엄격하고 규율을 중시했던 가정 속에서 금지되어 ‘어른의 맛’으로 선망했던 커피와의 첫 만남의 순간! 언니의 죽음과 연결된 또 하나의 음식, 컵라면에 대한 추억들은 강한 압박을 주는 재일동포 가정에서 자라나며 느낀 반항심과 혼란, 언니의 죽음에 대한 추억이 깊숙이 스며들어 외면하고 싶은 음식들에 대한 회고가 있다.
평생 다이어트를 하며 고생했던 저자가 떠올리는 에피소드들은 우리를 분개하게 한다. 처음 만난 일본인 남자친구가 아이스커피를 마신 후 얼음을 씹어 먹는 우시오에게 “얼음을 씹어 먹다니, 너 참 별난 애구나”라며 “나는 밀크티 같은 걸 먹는 애가 좋거든”이라고 말하고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는 장면이나 학교 동아리 선배가 “50킬로그램 이상 나가는 여자는 여자가 아니다”라고 단언하던 모습, 자기만의 니쿠자가(고기 감자조림)와 카레 맛을 맞춰 요리하라는 남자친구들을 향해 “도대체 왜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수많은 남성들은 니쿠자가와 카레를 여성을 판단하는 지표로 삼는 경향이 있었던 것일까?-189p)”라는 의문 등에서는 당시 일본에서도 당연시되었던 곡해된 여성의 역할과 조건에 부응하고자 부단히 애썼던 작가의 헌신적인 연애에 대한 부작용들이 드러난다.
치킨이라고 하면 무조건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인 일본에서 치킨을 먹으며 지옥 같은 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날들, 지독한 압박 속에서 고등학생 때 처음 술을 마셨지만 ‘내 출신을 들켜선 안 돼’라는 정신으로 술에 대해 각별히 조심했던 그녀의 사회생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일본에서 김대중 씨를 지원해 온 아버지가 고급 야키니쿠 가게에서 만나 늘 술잔을 기울였던 상대가 알고 보니 그를 미행했던 대사관 직원이었음을 알려주는 ‘고기를 같이 먹는 사람들’에 대한 에피소드도 뭉클한 감동을 준다.
두 개의 문화 속에서 지독하게 지켜내려 한 한국 음식에 대한 추억
일본에서는 ‘먹는다는 것은 바로 산다는 것!’이라는 격언이 있다.
작가의 가정에서는 한일 문화가 버무려져, 음식도 평생 한일음식을 오가며 살아왔다. 자신의 가족만이 아니라 평생을 일본에 뿌리를 내려 살아오면서도 지독할 만큼 고집스레 한국 음식과 문화를 고집했던 친지들의 이야기가 그들이 일본에서 먹어온 한국 음식 속에 담겨, 이 책에 소개되고 있다.
재일한국인 1세인 아버지는 일본에서 한국의 독재정권에 반대하며 갖은 고초를 겪었지만, 자신의 가정에서는 정통적인 가부장적 규율을 가정에서 강요하는 확고부동한 ‘독재자’의 위치에 있었다. 평생 정통 한국식 밥상을 꼬박 받으며 93세가 되셨고, 늘 혼자서 독상을 받았으며 아이들이 김치를 먹지 않으면 밥상을 걷어차고 해외에 나갈 때도 반드시 캐리어에 김치를 싸가는 사람이었다.
재일한국인 2세로, 올해 87세가 되신 어머니는 평생 남들에게 ‘한국인’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지만 집에서는 늘 한식을 고집하는 남편을 위해 고생을 해야 했다. 집에서는 그녀가 밖에서 마늘 냄새를 들키지 않기 위해 특별히 고안한 ‘마늘을 적게 넣어 샐러드처럼 먹는 김치’를 개발하고, 식구들이 아플 때마다 끓여 먹이는 몸에 좋은 곰탕을 만들기 위해 한국 식재료를 파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히가시우에노까지 꼬리뼈를 사러 다니곤 했다. 지금은 한류의 영향으로 김치를 비롯한 한국 음식을 어디서나 인기리에 판매하고 있어 마음 놓고 마늘을 많이 넣은 김치를 먹을 수 있고, 쉽게 꼬리뼈를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흐뭇해한다.
소학교 교사 출신인 외할아버지는 집에서도 〈고향의 봄〉 등을 연주하고, 취하면 언제나 금속 젓가락을 두드리며 〈아리랑〉을 불렀다. 작가에게도 언제나 같이 부를 것을 권했지만, 그때마다 응하지 않았던 작가는 그 순간을 크게 후회한다. 일본어를 잘하지 못해 늘 말수가 적고 노래라곤 아이들이 부르는 〈비둘기 구구〉밖에 할 줄 몰랐던, 《성경》으로 일본어를 배워 가타카나밖에 쓰지 못하던 외할머니를 비웃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뉘우치며 늘 자신의 소설 속에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친지들을 등장시킨다.
식사를 같이 하는 사이, ‘식구(食口)’가 된다는 즐거움을 아는 행복이란
작가는 ‘식구’라는 한국어를 좋아한다고 한다. 이 에세이로 독자들과 식구가 되고 싶다는 그녀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처지로, 사이에 놓여 있다는 이유로 재일코리안은 일상적으로 먹는 식사조차도 갈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에세이에 소개된 음식과 추억은 예전의 내가 가졌던 아픔과 기쁨이며 한국과 일본, 다른 나라에 갔을 때조차 국가나 민족에 휘둘려왔던 흔적이다”라고 밝혔다.
그렇게 긴장과 갈등이 일상이던 재일동포로서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작가는 깨달음을 얻었다. 무엇이 나를 규정하게 하든 ‘나는 인간으로서의 그냥 나’이며 ‘두 문화를 모두 즐기는 나’라는 것, 그리고 이제는 상대와 즐겁게 커피를 마시는 시간, 다소 호화스러운 티룸에서 따뜻한 스콘과 함께 홍차를 마시는 시간, 맛있는 초콜릿과 베이글, 자신이 개발한 방식으로 치즈를 올려먹는 김치 한 조각의 맛에 기분 좋아지는 나를 기꺼이 반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을 억누르는 온갖 종류의 차별과 갈등, 혼란을 겪어내고 이제 차분한 마음으로 ‘현재를 즐기는 나’를 만든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함께한 음식의 힘’을 느끼게 하는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