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사실주의 문학의 효시이자 절정
인간 욕망과 심리의 방대하고도 섬세한 지도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남긴 불멸의 고전!
1851년, 이집트 여행을 다녀온 서른 살 즈음의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열두 시간씩 글쓰기에 매진했고, 고된 작업 끝에 1856년 마침내 최종 원고를 탈고했다. 이 원고는 친구의 소개로 잡지 《파리 평론》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작품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풍속과 도덕, 종교를 모독하는 내용이라는 반발이 뒤따랐다. 최종 무죄 판결을 받기는 했으나 기소까지 당했다. 《보바리 부인》이 당대에 얼마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지를 가늠케 해주는 대목이다.
출간 후 풍속과 도덕, 종교를 모독했다며 기소당한 문제작이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화제작
평범한 의사 샤를 보바리의 아내 엠마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불만이다. 지겨운 시골 생활, 단조롭기 짝이 없는 일상, 무던하고 순박한 남편 등등. 엠마는 어릴 적 수도원에서 지낼 때부터 귀족의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며 자랐고, 수많은 책에서 읽은 로맨틱한 연애 관계를 꿈꿨다. 그러나 남편은 엠마의 욕망이 지향하는 세계의 존재는커녕 가능성조차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엠마가 샤를에게 실망하고 절망한 순간부터, 그녀의 삶은 참을 수 없이 따분해진다.
그런 그녀에게 레옹과 로돌프가 순차적으로 찾아온다. 두 남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엠마의 정신적, 육체적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남편 샤를이 대변하는 따분한 생활에 대한 엠마의 경멸은 점차 커져만 간다. 다른 한편, 레옹과 로들프 두 남자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엠마의 부채는 점점 커진다. 엠마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랑과 과소비에 점점 더 매달리고, 아내가 어떤 상태인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신경증이라고만 생각하는 남편은 부인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하다. 결국 엠마는 파산에 이르고, 레옹과 로돌프는 위기에 빠진 엠마를 외면한다. 이제 엠마와 샤를 부부에게 남은 건 비참한 최후뿐이다.
“보바리 부인은 나 자신이다.”_귀스타브 플로베르
책 읽고 상상하는 여자의 이름, 엠마
《보바리 부인》은 빈틈없는 조사와 치밀하고 정확한 연구, 무수히 다듬은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자, 주관을 배제한 채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플로베르의 사실주의적 지향이 가장 찬란하게 꽃피운 작품이다. 플로베르는 “가여운 보바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프랑스의 스무 개 마을에서 괴로워하며 눈물짓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는 단지 엠마를 비난하기 위해 이 작품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보바리 부인은 나 자신이다”라고까지 말하며 엠마라는 인물과 그 인물이 놓인 환경에 대한 섬세하면서도 방대한 그림을 그려냈다.
엠마는 현실감을 결여한, 망상의 세계에 머물다 파멸한 인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책을 읽고 상상하며 형성한 낭만적 감수성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한 인물이기도 하다. 엠마의 세계는 허영과 사치, 감상적 낭만주의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당시 여성의 일상에 무엇이 걸여되어 있었는지, 엠마가 왜 그런 것들을 욕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볼 것을 촉구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보바리 부인》을 책과 상상력으로 자신의 현재를 바꾸러 노력하다 파멸한 여성의 비극에 관한 작품으로도 독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건 사실주의 문학의 효시이자 절정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이 여러 해석의 갈래를 너끈히 품을 수 있을 만큼 방대한 세계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플로베르가 창조한 이 풍성한 세계에서, 엠마는 그다음 해석을 기다리며 여전히 꿈꾸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