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지상주의를 신봉한 최후의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에 커다란 변혁을 도입한 위대한 작가
제임스 조이스 문학의 정수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은 작품 내적인 이야기만큼이나 그 외적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조이스는 이 책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며 이런 내용이 적힌 편지를 동봉했다. “내 의도는 우리나라 윤리사의 한 장을 쓰려는 데 있었다. 그 무대로 더블린을 택한 것은 이 도시가 마비의 중심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이었을까. 《더블린 사람들》은 당시 더블린의 생활이 얼마나 침체되어 있는지 적나라하게 폭로했다는 이유로 11년 동안 발표되지 못했다. 그러나 힘겹게 출간된 이후, 제임스 조이스가 세계적 작가로 나아가는 데 확고한 기반이 되어주었다.
더블린의 침체를 적나라하게 고발했다는 이유로
11년 동안 출간되지 못한 제임스 조이스 문학의 출발점
이 작품집에서 더블린은 정신, 정치, 문화, 사회가 모두 마비된 곳으로 그려진다. 〈자매〉는 아일랜드 가톨릭교회를 마비되어 죽어가는 늙은 사제에 비유한다. 〈애러비〉는 사춘기의 고민을 어디에도 호소하지 못하고 혼자 파멸과 자조의 쓰라림에 시달리는 소년의 모습을 담았다. 〈이블린〉과 〈진흙〉은 짓밟힌 인생의 고달픔과 애수를 그렸고, 〈구름 한 점〉과 〈분풀이〉는 침체된 생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방황하는 소시민의 생활을 그렸다. 〈10월 6일의 위원실〉은 풍자와 애수로 정치 문제를 다루고, 〈은총〉은 〈자매〉와 마찬가지로 더블린의 가톨릭 세계를 비판적으로 그린다. 〈사자(死者)〉는 어느 더블린 중산계급 가정의 크리스마스 파티 모습을 담담한 필치로 그리는데, 삶보다 죽음의 이미지가 더 도드라진다.
부패하고 타락한 도시의 삶
모든 것이 마비된 더블린에 대한 가장 첨예한 고발
이처럼 더블린의 일상생활은 불쾌하고 가엽고 품위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더블린 민중의 삶을 소년기, 사춘기, 성숙기, 노쇠기의 단계로 나누어 그리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음울하다. 소년들은 꿈과 낭만을 상실한 채 사춘기를 맞이하며, 가장들은 폭군처럼 굴기 일쑤다. 어느 여성은 가난에 찌들어 다른 곳으로 떠나고 또 다른 중년 부인은 속물근성에 젖어 있다. 젊은 남자는 하녀의 돈을 갈취하고 기성세대는 사랑과 예술조차 매물로 여긴다.
조이스는 이처럼 더할 나위 없이 깊이 가라앉은 밑바닥의 삶을 가만히 응시한다.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작품들은 아기자기한 사건과 극적인 클라이맥스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침체한 더블린의 거리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 방황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낸다. 언뜻 보기에는 담담하고 평탄한 일상생활을 자연주의적 묘사로 풀어내, 그저 마비된 삶의 일면을 포착한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평범한 주제 의식과 사실성을 강조하는 기법은 역설적으로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인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효과를 준다. 《더블린 사람들》은 훗날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학가로 거듭난 제임소 조이스 문학의 출발점이자 정수와도 같은 작품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