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사랑하기에 내던지고
해방될 수 있는 자의 모험과 자유,
결코 타협하지 않는 격정의 삶!
“모든 것이 그렇게 무섭고 복잡하게 혼란한데
모든 것을 다 간단하게 만들려는 인간이 나는 싫어.”
1950년에 출간된 루이제 린저의 대표작 《생의 한가운데》는 이후 발표한 《도덕의 모험》(1957)과 함께 ‘니나 소설’로 불린다. 주인공 니나 부슈만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녹아 있는 소설이다.
니나는 지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를 지닌 여성으로 사회가 기대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에 맞서며 자신만의 삶을 모색한다. 여러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사랑, 욕망, 자유, 책임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지만, 그녀는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중심을 지키려 한다.
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니나를 사랑하는 스무 살 연상의 남자 슈타인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다. 슈타인의 일기와 편지, 니나와 그녀의 언니 마르그레트의 며칠 간의 짧은 만남과 대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을 대하는 등장인물들의 대비를 통해 작가가 지닌 삶에 대한 이해와 깊은 통찰이 드러난다.
생의 단 한 순간까지도 완벽하게 사랑했으며 자유를 향한 강렬한 의지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간 여자, 기만과 타협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니나와 그녀의 고집스러움까지 사랑한 슈타인을 통해 삶에 대한 완전한 긍정과 집중을 보여준다. 린저가 창조한 독특하고 매력적인 인물 니나 부슈만은 전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며 이른바 ‘니나 신드롬’을 일으켰다.
진정 사랑하기에 내던지고
해방될 수 있는 자의 모험과 자유,
결코 타협하지 않는 격정의 삶
독일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되고 20여 개국에서 번역된 명작 《생의 한가운데》는 1961년 ‘한 세기에 한 번 나올 법한 천재’로 격찬을 받은 작가 전혜린의 번역으로 국내 출간 당시 큰 관심과 화제를 모았다. 이후 1967년에 문예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고, 문예세계문학선 리뉴얼 시리즈로 새롭게 단장해 선보이는 《생의 한가운데》는 역자의 의도와 문체를 존중하되 정확성과 가독성을 고려해 전체적으로 문장들을 살피고 세심히 손질했다.
역자는 ‘작품 해설’에서 독특하고 입체적인 이 소설의 주인공 ‘니나’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에 주목한다. 니나는 여자이지만 남성적 명성을 지닌 소설가이자 여성적 매력으로 풍요하게 장식된 인물이다. 역자는 니나를 통해서 린저가 당시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지식인 계급에 속하는 여자가 자기의 의식 세계를 주변의 갈등과 분쟁 속에서 얼마나 지켜낼 수 있는가를 시험해 보인 것이라 평했다. 역자의 지적대로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니나가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자기 일에 대해 보이는 성실성과 대인관계에서 타협이나 자기기만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나머지 괴로움을 자처하는 태도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니나의 이러한 성실성은 연애에서도 수많은 남성과 순간에 불과한 ‘만남’만을 허용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역자 전혜린은 자신의 에세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전형되고 초월화된 또 하나의 자기를 흰 종이 위에 창조하는 과제에 온 정열과 지성을 기울이고 있는 니나에게, 남성이란 그림자와도 같이 지나가버리는 존재다”라고 분석한 바 있다.
한편 니나와는 대조적인 인물인 슈타인은 충실을 대표한다. 슈타인은 영혼과 영혼이 맞부딪치는 한순간에 불과한 매혹을 자신의 의지로 반복해서 추구하고 지속시켜 일생 동안 충실을 구현한다. ‘완전한 자의식의 화신’인 슈타인에 대칭되는 인물이 니나의 첫 번째 남편 할이다. 그는 아무런 복잡성도 영혼의 깊이도 없이 건강한 심신, 금발을 지닌 소유욕과 관능이 왕성한 청년으로, 사랑은 불가능하지만 결혼은 언제나 가능한 ‘즉자적인 존재의 화신’이다.
이외에도 이 소설에서는 여러 등장인물 사이의 갈등, 니나와 언니 마르그레트의 의견 대립 등을 통해 신, 죽음, 인간, 세계, 사랑, 결혼, 예술, 무엇보다도 ‘생’에 관한 린저의 신념이 하나의 총체를 이룬다.
전후 독일의 가장 뛰어난 산문 작가
루이제 린저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준 대표작
20세기 최초의 실존주의 문헌으로 인정받는 《실존과 객체성》(1925)의 저자이자 철학자, 비평가인 가브리엘 마르셀은 루이제 린저를 가리켜 “가장 뛰어난 현대 작가”라고 극찬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와 더불어 현대 여성 문학계의 양대 산맥으로 일컫는 작가 루이제 린저는 뮌헨대학교에서 교육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나치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자 거절하고 스스로 교사를 그만두었다.
이후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녀는 1940년 첫 작품이자 출세작인 장편소설 《유리반지》(혹은 《파문》)를 출간했다. 당시 병상에 누워 있던 헤르만 헤세가 이 작품을 읽고 친히 찬사의 편지를 보낼 정도로 열렬한 호응을 얻었으나 히틀러 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출판이 금지되었고, 작가도 체포되어 수감되었다가 이듬해 종전 후 석방되었다. 이때의 체험과 나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훗날 발표한 장편소설 《수형 일기》와 단편소설 《바르샤바에서 온 얀 로벨》 등의 작품에 반영되었다. 독일의 극작가 카를 추크마이어는 《바르샤바에서 온 얀 로벨》을 “전후 독일에서 가장 우수한 산문”이라고 평했다.
《생의 한가운데》는 린저에게 세계적인 명성과 대성공을 가져다준 작품으로 특히 그 형식의 참신성으로 매우 찬탄을 받았다. 작품 속에서 린저는 대화, 수기, 일기, 편지, 회상 그리고 주인공 니나의 창작 등 여러 형식을 서로 섞어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며 의식적이면서도 기술적인 문체 구성을 시도했다.
린저는 작가 자신이 투영된 주인공 니나를 통해서 전후 독일의 암담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참된 삶을 추구하는 여성의 한 전형을 성공적으로 보여준다. 린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침체해 있던 독일 문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삶의 의미를 부단히 추구하고 모색하는 매혹적인 인간상을 그려낸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