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을 넘고 또 넘은 연결의 달인 5층 삼촌 이야기
“사탕, 월병, 과자 등 식품은 1번이고 적은 상자에 넣고 건전지, 집게, 고무줄, 머리핀, 빈침[핀], 호꾸[걸단추], 이런 잡동사니는 2번 상자에 넣어라.”
1989년 여름, 연변 용정의 5층 아파트에는 북한으로 가져갈 물건을 준비하는 일손이 분주했다. 번호 적힌 상자에 잘 담은 짐을 싣고 5층 삼촌은 민철을 데리고 이튿날 북-중 국경으로 달려간다. 약 3주 뒤 같은 상자에 가득 담아 온 북한산 해산물들은 중국 사람들과 조선족 사람들에게 불티나게 팔렸다.
경북 영천 출신으로 만주로 이주한 부모님 사이에서 흑룡강성 계서에 태어난 5층 삼촌은 타고난 싹싹함으로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고 사업 거리를 찾아 부지런히 북한을 다녔다. 어느 날은 ‘히타치’가 영문으로 적힌 컬러 TV와 ‘파나소닉’ 테이프 레코더 등 일제 가전제품을 가져오기도한다. 일본에서 출발한 북송 여객선에 실린 중고 자동차를 강을 건너 수입하는 방법은 새삼 놀랍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수입한 얼린 명태를 동네 아주머니들이 아파트에서 명태를 가공해서 돈을 버는 장면은 신기하면서 찡하다.
어느 날 5층 삼촌 아버지가 KBS 이산가족 방송을 보고 큰형님인 듯하다며 대구로 편지를 보내라고 한다. 반신반의하며 기다린 지 6개월, 백부님에게서 편지가 온다. 단둥을 통해 서울로, 대구로 가서 눈물의 가족 상봉을 한다. 이 인연이 이어져, 5층 삼촌은 사촌의 지인인 한국 선교사에게 탈북민을 연결해 주는 일도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하고, 동대문과 중국을 이어 신발과 의류를 수입, 중개하는 사업도 하게 되는데…….
20년의 세월이 흘러 30대 중반 엔지니어가 되어 중국의 회사에 다니는 민철이 서울로 출장 와서 5층 삼촌을 만난다. 5층 삼촌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관찰하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 연결하는 연결의 달인이라며 무릎을 친 두 사람은 장벽을 넘으니 사람이 연결되었다는 깨달음 그리고 마음속 장벽을 넘는 법을 밤늦도록 이야기 나눈다.
긍정적이고 강인한 조선족 동포의 역사를 새롭게 만나다
『5층 삼촌』에는 중국으로 이주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면서 강인하고 역동적으로 살아왔던 조선족의 역사와 그로 인해 생겨난 특성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가난을 피해, 또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 간도로 떠났던 이들이 바로 조선족의 기원이다. 김좌진 장군, 윤동주 시인, 문익환 목사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터전이었던 연변과 흑룡강성 등에 살았던 이들은 1949년 중국 정부가 공인한 56개 소수민족 중 하나로 대대로 역사와 글, 전통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5층 삼촌』의 삶과 조선족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유머와 긍정적인 힘과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 1990년대 초, 중국과 한국의 개방이 겹치자 먼저 무역 등 사경제 영역에 종사한 5층 삼촌 등은 무역과 사업을 더욱 활발하게 벌이기 시작했다. 말과 문화가 비슷한 한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 한국 사회로 대거 이주한 이들 대부분은 고향 연변의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 성실하고 헌신적으로 일했다. 이 놀라운 삶의 여정을 읽다 보면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편견이 스르르 사라질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선족 사회가 분화되었다는 것도 우리가 잘 몰랐던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5층 삼촌처럼 사업체를 일구며 크게 성공했다. 미국과 일본, 유럽에서 자리 잡은 사람들도 많다. 마라탕과 훠궈, 양꼬치 등 우리가 요즘 즐겨 먹는 중식들은 조선족들이 들여와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5층 삼촌 친구처럼 프랜차이즈 사업을 크게 펼치고 있기도 하다니 놀랍다. 보육, 간병, 건강 마사지 등 돌봄 분야에서 자격증을 따서 전문가로 일하고 프랜차이즈화하거나 사업체를 운영하는 이들도 많다.
이들의 자녀들은 이제 중국과 연변, 한국 등에서 고등 교육을 받고 여러 나라에서 여러 전문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부모 세대의 헌신을 기억하고 여러 정체성을 한몸에 가진 이들은 분명 앞으로 우리와 세계 모두를 더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들며 활약할 것이다. 『5층 삼촌』을 읽는 독자들이 이들 중에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역동적인 현대사를 연결이라는 감각으로 바라보다
『5층 삼촌』을 읽으며 5층 삼촌이 걸어온 길을 보면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와 세계사적 변화의 흐름이 생생하고도 입체적으로 다가오고 이 변화의 흐름이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이어질까 질문해 보게 된다.
한국이 급속도로 공업화되던 1960~70년대에는 농촌을 떠나 구로동과 대림동 등 도시 중소 제조업 지역의 노동자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한국 제조업과 노동 시장이 변하면서 이 자리가 비게 되자 조선족 동포들이 와서 이 일자리를 맡았다. 1980년대부터 추진한 중국의 경제 개방과 개혁 조치가 공기업에 취직했던 사람들 해고로 이어져 이들이 한국에서 기회를 찾게 된 시점과 맞물렸던 것이다.
1990년대 중반~2000년대가 되며 중국과 세계로 한국 대기업의 각종 가전 제품이 수출되고 드라마, 노래 등 한류 바람이 불었다. Made in Korea, 동대문 등지에서 만든 신발, 의류 등이 중국에서 인기를 끄는 한편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중국으로 진출하는 한국 기업이 많아졌다. 한국 사람과 유학생이 많아지자 이들을 상대로 하는 사업도 다양해졌다. 이런 변화는 북한에서 생산된 운동복을 중국으로 가져와 Made in Korea 상표를 달아 중국과 한국으로 다시 팔기도 하는 등 5층 삼촌과 조선족 사업가들이 단동, 심양, 장춘과 하얼빈까지 무역 네트워크를 만드는 또 다른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2000년대가 되어 인터넷과 교통, 금융 체계 등이 급속히 전자화되고 발달하면서 세계는 더욱 밀착되었다. 사람들의 이동은 더 많아졌고 다양해졌다. 이런 이동과 연결은 당연히 문화와 생각의 섞임과 변화를 가져왔다. 마라탕과 훠궈 등 조선족들이 들여와 개량한 음식이 큰 인기를 끌고, 케이팝과 드라마가 세계적 인기를 끄는 한편 중국의 대중문화를 즐기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더욱 다양한 정체성들이 넘나들며 섞이며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족, 중국, 중국인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내놓고 드러내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 걱정스럽다. 오해와 편견이 더 커지는 현실을 바꾸려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박우 선생님은 조선족과 5층 삼촌에게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연결하는 감각을 배우자고 한다. 대화와 만남을 꾸준히 이어가고, 오해와 실패를 겪으면서도 화해하고 배우면서 서로를 연결하는 감각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자 하는 질문은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 쪽으로 걸어가게 할 것이라고, 다음 세대들에게는 성적보다 이것이 더 중요한 감각이라는 말이 깊이 여운을 남긴다.
너머학교 다음 세대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 5번째 책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서 핵심적인 이슈들을 십대들과 함께 생각해 보는 ‘다음 세대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로 북한의 변화한 현실을 다룬 『다음 세대를 위한 북한 안내서』, 통일 찬반론을 상세히 알아보는 『다음 세대를 위한 통일 안내서』, 지역소멸과 수도권 집중 문제를 쉽고 생생하게 이야기한 『어디에서 살까? _ 다음 세대를 위한 탈서울 안내서』, 30여 년 친환경 농사를 협동으로 지어 농부가 들려주는 『1%의 힘 농업 안내서』에 이은 5번째 책이다.